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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와 연합된 우리/동정녀탄생의 목적(로마서6:1-11)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중보자는 오직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 어느 누구도 중보자가 될 수 없습니다. fashion show는 fashion designer가 Fashion week의 기간에 있을 일련의 옷들을 공개하는 행사입니다. 전형적인 fashion show에서는, fashion model이 designer가 만들어낸 옷을 입고 무대를 걷습니다. 이때 fashion model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옷이 fashion model보다 더 중요합니다. 마찬가지로 동정녀 마리아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마리아의 몸을 빌린 것일 뿐 마리아는 실상 인간으로서 종에 불과합니다(눅1:38). 그러므로 마리아는 사람들이 숭배해야 할 대상이 아닙니다. 만일에 마리아를 숭배한다면 엄청난 우상숭배입니다.

동정녀 탄생의 기사에서 예수님의 마리아 동정녀 잉태를 그의 신성의 작용인(作用因/efficient cause)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Geerhardus Vos는 “주님의 동정녀 탄생과 주님의 신성(神性) 사이에 아주 긴밀한 관련성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 사실을 그의 신격의 궁극적 근거나 출처로 연장해서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신성에 대한 개념 자체를 아주 낮게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죄 있는 육신의 부모로서 하나님이신 후손을 생산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 부모들의 한계를 벗어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순전한 동정녀라도 이러한 일은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에 대해서 동정녀 잉태라는 사실보다 뛰어나게 또 그것과는 아주 별도로 온전히 그리고 진실 되게 하나님 곧 성자 하나님이 되신다는 이 사실을 지속해서 믿기 위해서는 어떠한 다른 근거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동정녀 잉태로 인해 혼합종 즉 하나의 신(성령)과 한 인간 어머니 사이의 연합으로 생기는 후손인 일종의 반인반신(伴人半神)이 생겨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반인반신이라면 단지 반인반신 일뿐 아니라 온전한 신도 아니고 온전한 인간도 못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은 조금도 성경적 근거를 갖지 못하는 한갓 신화에 지나지 않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 목적에는 마리아가 성령의 능력으로 동정녀의 몸으로 예수를 잉태함은 예수님의 죄 없으심에 대한 작용인입니다(고후5:21/히4:15) 대체적으로 “원죄”는 ‘남성’ 계열을 따라 전이됩니다. 그러나 여성도 인간의 죄를 공유하고 그로 인해 부패하게 되며, 또 이러한 만연하는 죄가 마리아를 오염시켜, 그녀도 죄성의 소유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마리아라고 해서 신격마리아가 아닙니다. 죄를 지은 자요, 구세주가 필요한 사람입니다(눅1:47). 생물학적 증거는 말할 것도 없고, 성경의 모든 증거에 의하면 자연적 출생을 통해서 태어나는 자녀의 신체적, 영적, 심리적인 면 전체를 구성함에 여자도 똑같이 기여합니다(시51:5). 다윗의 회개의 시에서 그가 자신의 죄악 된 행실의 원인을 추적하면서 자신의 모친을 언급한 것은 매우 주목할 만한 일입니다. ‘내 어머니가 죄 있는 채로 나를 임신하였으매’ 따라서 동정녀 잉태자체의 일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보존의 사역이 없었더라면 마리아는 그녀의 장자에게 죄성으로 기울어진 인간성을 전이했을 것입니다. Calvin은 “그리스도가 모든 오염에 물들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그가 그의 어머니로부터 남자와의 성관계 없이 태어난 때문이 아니요, 성령에 의해서 거룩하게 구별됨으로써 그 출생이 순결하게 그리고 마치 아담의 타락 이전처럼 오염이 없는 출생이었기 때문이라고 우리는 믿는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동정녀 잉태의 최고의 목적을 논하기 전에 비록 그 본질상 동정녀의 잉태이지만 바로 그 육신의 어머니의 태안에서 정상적으로 발육된 것과, 예수님의 육신의 어머니의 자궁 안에 잉태되신 사실과 또 마태와 누가가 모두 기록한 대로 그 인간 자궁 안에서부터 세상에 출생하기까지 지극히 정상적인 과정을 거쳤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예수님은 완전히 사람이셨다는 사실을 확실히 해주고 또 보증해 주는 그의 인성(人性)의 기원의 특질들이라는 점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완전하시며 참되신 인성이 그의 동정녀 탄생이라는 이적으로 인해 전혀 위협받거나 손상 받는 면이 없다는 점을 아주 확고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반대로 한 인간 모친에 의한 잉태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와 같은 인간성을 “공유하였고…(히2:14), 또 모든 점에서 우리와 ‘같으셨다’(히2:17)는 점을 말하고 있습니다. 두 복음서 기자는 의도적으로 우리로 하여금 그 동정녀 잉태에 의해서 그 밖의 모든 일 전에 “(선재하신)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요1:14)는 사실을 이해시켰다는 것입니다. 마리아의 동정녀 잉태는 하나님이 사람이 되시는 수단 즉,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시는’(고후8:9) 수단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는 신인(God-man)이심을 들을 때 자연스럽게 생기는 질문인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을까?’라는 그 질문에 대한 성경의 답변입니다. 동정녀 잉태는 “임마누엘 사건”(사 7:14/마1:22-23)을 가능케 한 수단으로서, 하나님의 아들을 사람의 인격에 결합시키지 않은 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 사람(man with us)이 되게 하셨습니다. 마리아의 동정녀 잉태로 말미암아 성자 하나님은 본래의 삼위 하나님의 제 2위이시오, 영원한 아들이시며, 하나님의 말씀이신 그분이 아니신 일이 없이 성자(聖子)의 신격(神格) 안에 있는 신성(神性)과 우리의 인성(人性)을 연합함으로써 “임마누엘”로서 “우리와 함께”하게 되셨습니다. 예수님의 동정녀 잉태에 대한 또 다른 목적이 진리를 설사 담고 있다 할지라도, 임마누엘 사건의 영광스런 빛에 가리워 별다른 의미를 갖지 못합니다. 따라서 이 점을 분명하게 이해하게 되면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마태와 누가의 기록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과 고전적(古典的) 성육신(成肉身/incarnation) 기독론(基督論) 교리(敎理)를 위한 신약의 모든 다른 증거들과 함께 그것들의 정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그리스도는 동정녀를 통해서 이 세상에 들어오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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