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와 연합된 우리/죄에 대하여 죽은 자(로마서6:1-11)
Ohmy News 2015.05.25.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대 교회와 50대 megachurch 23개를 갖고 있습니다. 1958년 가정교회에서 시작한 순복음교회는 최대치를 찍은 2010년에 신도 수가 78만 명이었습니다. megachurch에 속하는 23개의 한국 교회 중 5개는 전세계 10위권에 들어 있습니다. 명실상부한 기독교 국가답게 독실한 기독교 신자 출신 대통령도 3명이나 나왔었습니다. 이승만, 김영삼, 이명박입니다.
그러면서도 그리스도인답지 않은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세 명의 대통령이 그리스도인이었다고 하나, 그들은 존경을 받을만한 사람이 아니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그리스도인들조차 그들을 좋게 평가하지 않습니다. 대통령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정재계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포진하고 있습니다. 국회의원만해도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럼에도 고린도교인처럼 파당정치를 하느라 상대의 그리스도인들을 같은 하늘아래에 있어서는 안될 적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철천지 원수처럼 여기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죄에 대하여 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죄에 대하여 죽으시고 하나님께 대하여 살으셨다는 것은 아담 즉 인간의 방향전환(方向轉換)입니다. 방향전환이라 함은 죄와의 관계를 끊고 타락이전의 아담상태로 회복시키심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이루신 구원을 우리는 너무쉽게 받아들이는 것과 같아서 ‘난 이제 구원받았다. 그러므로 이런 것쯤은 이해하실거야’ 하면서 죄에 대하여 담대한 마음을 가지기가 쉽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사도의 교리는 권면의 형태로 바뀝니다.
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찌어다 12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노릇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14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구원이 성취된 사실을 확실히 하라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원리적으로 죄에 대하여는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하여는 산 자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우리들의 마음과 생각으로 확신에 차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확신이 우리들의 모든 사고에 적용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삶의 계획, 언사, 행동을 위한 도약점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전의 우리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전에 죄에 매여 있어서, 죄의 종노릇을 해야 한다는 것을 확실하게 떠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같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같은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루하루 살면서 새 사람이라는 사실을 늘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다른 이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리스도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주 안에서 택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창세기4장을 보면 가인의 죄악상과 가인의 후손들의 생활이 기록되었습니다. 4:26부터 셋의 후손들이 기록되었습니다. 가인의 후손들은 후손들만 기록되었습니다. 몇 살까지 살다가 자녀를 낳고 죽었다는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셋의 후손들은 기록이 되었습니다. 셋과 가인의 후손들이 구별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6장에 가면 1절과 2절에 전환점이 되는 내용이 있습니다.
1 사람이 땅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2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입니다. 여러 해석이 있지만 하나님의 아들들은 셋의 후손이요, 사람의 딸들은 가인의 후손입니다. 문제는 셋의 후손들이 가인의 후손들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아름다움 b/f/tôb 는 ‘좋은, 선한, 즐거운, 선, 이익, 번영, 복지’ 등으로 번역합니다. 때로 ‘토브’는 심미적이거나 감각적인 선함도 의미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아들들’에게 비친 ‘사람의 딸들’의 매력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사람의 딸들의 매력에 빠지니까 헤어나올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급기야는 심판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이로보건데 오늘날 우리들은 성도다운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성도들은 산위의 동네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에게 오픈되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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