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히 왜곡된 관계(로마서8:2-16)
이 세상에는 수십억의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사람들을 분류하라고 하면 육신을 좇는 사람과 영을 좇는 사람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모든 것을 초월합니다. 지성인이든, 비지성인이든지, 문명인이든, 미개인이든 육신을 좇는 사람과 영을 좇는 사람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애초에는 육신의 사람과 영의 사람을 구분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죄로 인해서 나누인 것입니다.
따라서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생각합니다. 하지만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람들의 생각하는 바가 각각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영을 좇고 어떤 사람은 육신을 좇습니다. 육신의 생각은 땅의 생각입니다. 땅의 생각이란 것은 이 세상의 가치이고 이 세상에서만 유한 것입니다. 육신을 좇는 자들은 근본적으로 죄 된 인간성에 의하여 결정된 그들의 삶을 따르는 일들에 마음을 둡니다. 오직 그것에만 온 마음을 가집니다. 그것에만 깊은 관심을 가지고 끊임없이 이야기합니다. 끊임없이 참여합니다. 그리고 육신의 일을 자랑으로 여깁니다. 마치 육신의 일들이 최고인양 생각합니다. 그래서 육신을 좇는 자들은 육신의 일들을 위해서 목숨을 걸어버립니다.
하지만 영을 좇는 생각이란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생각입니다. 영을 좇아사는 사람들은 성령의 지시에 복종하는 자들입니다. 성령께서 기뻐하시는 것이라면 무엇이나 주의를 집중하며 깊이 관여합니다. 물론 하나님과 죄 된 인간성 사이의 갈등에서 어떤 사람은 인간성을 따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하나님 편에 섭니다. 성도이면서 인간성으로 심하게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성도들이 사회의 지탄을 받습니다. 세상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당합니다.
바울사도는 로마교회의 성도들에게 동시에 양쪽을 따르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삶의 근본적인 성향과 방향은 하나님편이거나 죄된 인간성 편이거나 둘 중 어느 하나입니다. 둘을 만족시키지는 못합니다. 만일 세속적으로 살아간다면 장차올 세상의 심판을 예상해야 합니다. 반면에 하나님과 그의 나라가 주된 관심사인 사람이 있다면 그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생명의 길을 택하였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하나님과의 감미로운 교통, 마음속에 충만한 하나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영원히 기대할 수 있습니다. 로마서2:10을 보면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라
고 했습니다. 이 선을 위해서 성도들은 인내하고 또 인내해야 합니다.
마태복음24:13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골로새서1:23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3)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군이 되었노라
히브리서3:14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한 자가 되리라
요한계시록2:10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찌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여기서 말하는 선 ajgaqov"/agathôs는 형용사와 실명사로 사용됩니다. agathôs는 사물의 중요성을 표현합니다. 인격의 탁월함을 표현했습니다. 형용사로서 agathôs는 ‘탁월한, 우수한, 좋은, 선한, 훌륭한’이라는 뜻입니다. 명사로서 agathôs는 인격의 탁월성, 사물의 질, 또는 물질적인 것이나 정신적인 것의 좋은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선이라는 것은 사람들의 눈에도 선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는 어떻든 교회만 좋으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큰 잘못입니다. 대한민국 전체가 경제생활이 바닥이라 어려운데 행정자치부장관이 자신의 고향에 38억 원 이상의 국민세금을 갖다 주고 바로 사의를 표명하는 것은 선이 아닙니다. 본인은 어떤 계산을 하고 있을지 모르나 어떻게 생각해도 어떻게 말해도 선이 아닙니다. 다른 지역은 어떻게 되어도 괜찮다는 못된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국민세금을 자신의 사욕을 위해서 갖다 쓰는 것, 절대적으로 사람들이 선하게 보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선’은 하나님의 눈에 보이는 선이어야 합니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평강이 임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습니다(요17:3). 하나님의 평강을 소유합니다(빌4:7). 따라서 죄로 인해서 심히 왜곡된 관계이지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는 늘 은혜롭게 살 수 있습니다.
'로마서새벽기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는 부르심을 입은 자들 (0) | 2021.04.19 |
---|---|
죄에서 해방됨/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1) | 2021.04.12 |
왜 사람의 모습인가? (0) | 2021.03.30 |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 (3) | 2021.03.20 |
인간 본성에서 해방됨 (0) | 2021.03.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