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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조물의 탄식/탄식의 3가지(로마서8:18-27)

 

18 (왜냐하면)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19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20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23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25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찌니라 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27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소위 말해서 자연재해(실제로는 자연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 이유는 모든 피조물들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이지, 스스로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다.)로 인해서 변한 지역들이 많습니다. 화산폭발이나 지진 등이 대표적입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푸르른 산이나 들판이었는데, 하루사이에 용암과 화산재로 전혀 다른 모습들이 되어 우리 앞에 파괴된 모습으로 나타난 모양들을 보면 인간의 죄들이 어느 정도라는 것을 간접적으로나마 볼 수 있습니다.

19절의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20절의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21절의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라고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다가 22절에서 (모든/pa'sa/pȃsa) 피조물로 변합니다. 모든 피조물은 어떤 것을 포함합니까? 일단 선한 천사들은 포함할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선한 천사들은 허무한 데 굴복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20절). 그들은 썩어짐의 종노릇을 하지 않았습니다(21절). 또한 사단과 그의 종들인 마귀들 역시 결코 해방될 수 없습니다(벧후2:4/유6). 그래서 모든 피조물에서 제외됩니다. 또한 결코 구원받지 못할 모든 사람들도 포함되지 않습니다(살후1:8,9). 그리고 선택된 자들도 여기서는 구별된 부류로 취급되기 때문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성경은 피조물이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을 苦待(고대)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날 때 피조물이 썩어짐의 종노릇에서 해방된다는 것입니다. 선택된 자들이 하는 일과 그들에게 일어날 일들에 대한 것은 23-25절에 묘사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4가지 부류를 모두 제외하고 나면 남는 것은 생물과 무생물입니다. 이 4가지 부류의 그 나머지에 해당되는 “모든 피조물”이 목을 빼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을 고대하고 있다고 사도바울은 서술했습니다. 즉 모든 피조물은 영광스런 그 일을 보기 위하여 목을 길게 뽑고 그 날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식하고 있어야 할 것은 생물과 무생물의 회복은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남”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이 둘은 함께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들”의 회복과 영광은 “모든 피조물”의 회복과 영광이 됩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남”이란 구절은 매우 아름답고 의미 깊습니다.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그 자녀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며 그들에게 보상하여 주심이 얼마나 풍요로울 것인지에 대해 그리스도의 재림 때까지는 공개적으로 알려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가리킵니다(마13:43,단12:3)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남이, 모든 피조물에게 대해서도 영광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것을 매우 고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이 “자기의 뜻이 아니”라는 것을 마음에 두어야 합니다. 죄를 지은 것은 비이성적인 피조물이 아니었습니다. 죄는 사람이지었습니다. 그로 인해서 피조물로 하여금 허무한 데 굴복하게 하신 이는 하나님이셨습니다. 인간의 죄 때문에 저주를 發(발)하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무엇에게 누구에게 저주를 발하셨습니까? 어떤 의미에서는 피조물에 대한 것으로 보아야 하지만, 보다 더 깊은 의미에서는 인간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창세기3:17-19절을 보면

 

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인간은 이 땅에서 결코 안식을 누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루라도 편할 날이 없다는 것입니다. 영원한 안식과 영원한 평화는 하나님의 나라에서나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땅의 피조물들이 인간들을 힘들게 하고 고통스럽게 합니다. 백번 말해도 피조물의 비참한 상태는 피조물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피조물도 인간의 회복을 기다리며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자연의 운명은 “하나님의 아들들”의 회복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남을 보기 위하여 목을 길게 늘이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 것의 이유입니다.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th'/ ga;r mataiovthti hJ ktivsi" uJpetavgh,인간의 타락으로 인하여 자연은 힘들어졌습니다. 가능성들이 무단으로 사용되고 억제되며 局限(국한)됩니다. 피조물은 그 성장이 한정되어 있습니다. 계속해서 부패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피조물은 그 자신들이 열망을 하지만 완전하지는 않습니다. 꽃을 피운다고 해서 다 열매를 맺지 않습니다. 식물이 질병의 저주를 받게 되어 수확이 늘 감소됩니다. 아무리 농약을 개발하고 생명공학을 발전시킨다고 하더라도 막을 수 없습니다. 이런 질병 저런 질병으로 식물계나 동물계에 엄청난 손실을 입힙니다.

 

이런 것은 죄로 야기된 인간의 모든 억제가 풀려야 합니다. 그래야 피조물이 자기구현에 이르러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이러한 열망을 사도바울은 피조물의 열렬한 동경과 고대함을, 해산하는 중에 있는 여인의 탄식(신음)에 비교하였습니다. ‘함께 고통하며’/sunwdivnei/쉰오디네이는 ‘그가 해산의 고통을 겪다’입니다. 그러한 탄식은 고통을 가리키지만 다른 한편으로 소망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Calvin은 이러한 탄식들은 해산의 격렬한 고통이지, 죽음의 고통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모든 피조물들이 해산의 격렬한 고통에 현재 참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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