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해야 할 이유(로마서8:18-25)
18 (왜냐하면)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왜냐하면(gavr)이란 앞 절을 확대해석하는 역할을 합니다. 즉 앞 절에서 언급된 영광에 대한 자세한 해석과 확대임을 말하는 접속사입니다. 사도바울은 ‘생각 한다’고 했습니다. 이 말의 원뜻은 ‘나는 확신한다.’입니다. 이 단어 logivzomai/logîzomai는 일반 헬라어 문헌의 용법에서 ‘계산하다’라는 뜻입니다. William Hendriksen은 이 구절을 해석하면서 사도바울의 손에 저울이나 천칭을 들고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천칭은 가운데의 줄 사이로 양쪽에 접시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울사도는 한쪽 접시에는 “현재의 고난”을 놓고 다른 쪽에는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을 놓았습니다. 우리가 고난을 받는 이유는 죄의 결과입니다. 죄가 없었다면 인간은 고난을 겪을 이유가 없습니다(창3:16-19). 그런데 저울의 다른 쪽은 은혜의 결과인 영광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서 있어서 고난은 일시적이고 영광은 끝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고난을 인내해야 할 당위성이 여기에 있습니다. 사실 우리들의 일상사가 고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사도가 생각하는 고난은 좀 다릅니다. 우리와 그리스도와 맺은 관계의 결과로서 겪게 되는 것들입니다. 19-23,28,38,39절처럼 다른 환란들이 포함되어 있기도 합니다. 바울사도는 성도들이 당하는 고난을 일반적인 의미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당하는 고통으로 질병, 실망, 실업, 빈곤, 좌절 등을 포함했습니다. 이것은 그가 “현재의 고난”, 즉 “현 세대”의 고난일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재림까지 연장되는 고난입니다. 사실 고난은 누구든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몸과 마음이 피폐(疲弊)되기 때문입니다.
현재 소형교회들의 목회자들은 엄청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건물 임대금, 공공요금 등도 제대로 낼 수 없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면 누가 목사를 하라고 했느냐고 비판합니다. 사실 메가 처치를 인수받은 사람들은 고통을 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아버지가 이룬 교회를 물려받았기 때문입니다. 소위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신의 직장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어찌 소형교회의 목사를 알겠습니까? 그런데도 목사가 힘들다고 하면 뭣하러 목사를 했느냐고 빈정댑니다. 그러나 목사를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직장에 잘 다니고, 내 일에 열심인데 어느 날 갑자기 sign이 오면 잘나가는 사업, 괜찮은 직장을 정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셨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신학교에 가야되고 교회를 개척해야 합니다. 교회를 개척하는데 좋다고 하는 자리들은 이미 다른 사람들이 모두 차지해버렸습니다. 가까스로 비집고 들어가 교회를 개척합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하나 오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개척교회에 들어가면 힘이 든다는 것입니다. 상당히 많은 신자들이 신앙생활을 편하고 고생스럽지 않게 하려고 합니다. 그러니 소형교회의 목회자들은 당연히 힘이 듭니다. 어떤 사람을 전도하려고 3년을 그를 위해서 애를 썼습니다. 이런 일 저런 일들을 하면서 그를 전도하려고 많은 애를 썼습니다. 거의 교회에 나오려고 할 때에 어떤 사람이 다른데서 살다가 이사를 오면서 전도한 그 사람을 그 교회에 나가지 말고 큰 교회로 나가자고 못나가게 한 것입니다. 작은 교회 가봤자 별 볼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소식을 들은 목사는 망연자실했습니다. 큰 교회는 예수님이 계시고, 작은 교회는 예수님이 안 계시는 것처럼 대접을 받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이 고난입니다. 견딜 수 없는 고통입니다. 작은 교회의 목회자들 정말 큰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바울사도가 말하는 영광이란 어떤 것입니까? 사도바울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그리고 “우리 몸의 구속(영광스런 부활)의” 때 즉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에 나타날 일에 대하여 언급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바울사도가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이 아니라 “우리 안에 나타날 영광”(th;n mevllousan dovxan ajpokalufqh'nai eij" hJma'")이라고 했습니다. 즉 이 영광은 우리에게 와서, 우리에게 들어온 후, 우리를 가득 채우고 우리를 둘러쌈으로 우리 안에 나타날 영광입니다. 우리는 친히 이 영광의 일부가 될 것이며 구원받은 이들이 서로의 안에서 그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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