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우리를 송사할까?(로마서8:33)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송사하리요’ ejgkalevsei/engkallêsei는 ‘고소하다’ejgkalevw/engkallêo의 미래동사 능동형 3인 단수형으로 ‘그가 능히 송사할 수 없다’입니다. ejgkalevw는 고전 Hella어 문헌에서의 최초의 의미는 ‘마땅히 해야할’이란 뜻이었습니다. 즉 당연하게 요구거나 청할 권리로서 ‘요구하다’라는 의미였습니다. 그러다가 후에 ‘주장하다’라는 의미로도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을 고발(고소)하다’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대개 실제적이거나 위협적인 법적인 소송절차를 나타내는 문맥에 나옵니다. 초대교회 당시 재판은 주로 시장에서 사도바울이 왜 세상법정에 소송을 제기한 그들을 신랄하게 말합니까? 당시의 로마 법정은 가난한 사람들은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평민들은 쉽게 갈 수 없었습니다. 낮은 지위를 가진 자로서 법정에서 판결을 받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또한 로마의 법정은 agora의 중심부에서 열렸습니다. agora는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 시민의 정치, 경제에 관련된 생활의 중심이 되었던 곳입니다. 아고라는 광장으로 시민총회나 공개재판의 관행이 일찍부터 있었던 그리스 도시국가(폴리스) 특유의 공공시설입니다. 시장 특히 불신자들이 많이 있는 곳에서 재판이 열렸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로서는 큰 수치였습니다. 재판을 한 교회는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로마시대에는 부자와 권력자들만 상대를 법정에 세울 수 있었습니다. 낮은 계급이 높은 계급을 고소할 수가 없었습니다. 살림이 망하기 때문입니다. 당시에는 높은 계급을 가진 사람들이 사회적 약자들을 수탈할 목적으로 재판을 했습니다.
따라서 성도들에게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성도들을 완전히 제거할 목적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그랬고, 초대교회를 싫어하는 무리들이 그랬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고발자는 사탄입니다. 사탄은 우리들을 항상 각을 세워서 고발하려고 합니다. 스가랴3:1-4을 보면
1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사자 앞에 섰고 사단은 그의 우편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시니라 2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 하실 때에 3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섰는지라 4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과를 제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여호와 앞에 섰습니다. 그때 사단도 그 우편에 섰습니다. 사탄이 여호와께 고소할 거리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여호와 앞에 섰습니다. 드디어 고소거리를 찾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바로 여호와께서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옷을 갈아 입혔습니다. 스가랴는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환상을 보았습니다. 사단은 가만히 있지 아니하고 여호수아를 대적했습니다. 그 모습을 여호와께서 스가랴에게 보이셨습니다(1절). 그때 여호와께서 사단을 책망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께서 사단을 책망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단 앞에서 이스라엘이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라고 하셨습니다(2절). 그때에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서있었습니다(3절). 그 모습을 보신 여호와께서 대제사장의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죄과를 제하여 버렸다고 했습니다. 다음에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셨습니다(4절). 그때 스가랴가 정한 관을 그(여호수아) 머리에 씌우소서 소원하니까 여호수아의 머리에 씌웠습니다(5절).
사실 대제사장은 정결해야 했습니다. 백성보다 정결해야 했습니다. 레위사람들보다 더 정결해야 했습니다. 성소 안에 있는 사람들보다 정결해야 했습니다. 제사장들보다 더 정결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여호와 앞에 섰습니다. 이것은 말도 안 되는 말입니다. 수치와 비난거리의 죄로 용서받을 수 없는 죄였습니다. 더러운 옷은 !yaiXoh'(하초임/그 더러운 옷)으로서 가장 간악하고 혐오스러운 성격의 더러음을 표현하는 강력한 히브리어입니다. 그런데 이 더러운 오물이 묻은 옷을 대제사장이 입었습니다. 스가랴는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대제사장이 이러한 옷을 입고 있음에 놀랐습니다. 거기에 이스라엘을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라 하셨습니다. 이것을 보고 사단은 대제사장을 하나님 앞에서 강력하게 힐난하였습니다. 그리고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벌을 주어야 마땅하다고 참소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대제사장의 옷을 갈아입히라고 했습니다. 죄를 깨끗이 제하셨습니다. 바로 단호하게 사단의 입을 막아버리셨습니다. 불은 Babylon의 포로를 상징합니다.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로 말한 것은 포로에서 이스라엘을 구출한 것입니다. ‘더러운 옷’을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입었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부정함을 상징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부정한 이스라엘과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연회장에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Red Carpet을 밟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옷을 말끔하게 갈아입히셨습니다. 조금전까지만 해도 몸이 부정했습니다.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였습니다. 예식적으로도 정결하지 못한 심히 더러운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몸과 예식적으로 완전한 대제사장으로 거듭났습니다. 원고는 있는데 피고가 없어졌습니다. 원고인 사단은 어마어마한 law firm을 꾸려 이스라엘을 고소했는데, 피고가 사라졌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으로 이스라엘이 용서받은 것입니다.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의롭다 하셨는데 누가 우리를 고소하겠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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