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주의적 예정견해(로마서 9:6-13)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우리는 현재 이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오는 세상을 맞이해야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 세상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살고 있습니다. 사람이라고 하면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두고 떠나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도 많지 않은 날에 그렇게 해야 합니다. 생명이 있는 것들은 반드시 이 세상에서 끝을 계산해야 합니다. 아무리 그 생명이 길다고 하더라도 이 세상에서는 반드시 끝이 있습니다. 1년을 365.2422일로 정확하게 계산해서 50년을 살았다면, 1,8262일입니다. 100년을 산다고 가정했을 때는 3,6524일입니다. 많은 것 같아도 그리 많지 않은 것이 인생입니다. 길다고 생각하면 길고, 짧다고 생각하면 짧은 인생을,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살기도 하고, 뒤틀려 살기도 합니다. 옛 학창시절에 유명하다고 생각했던 문인들이 상당수 친일파라는 사실을 알고 경악을 금치 못하였습니다. 종교계에서도 적극적으로 친일파였던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노래와 그림과 글 그리고 가르침들이 이어지고 있는 사회가 어이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가르침을 주어야 할 사료들이나 자료들을 없애버렷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들은 아무렇지 않은 일처럼 여기며 살아왔습니다.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일까, 알기도 전에 친일했던 사람들을 위인으로, 또는 애국자로 바꾸어 가르침으로 인해서 그 피해가 크다는 것입니다. 제2차세계대전이 일어날 때 일본교회와 독일교회는 히틀러와 일본의 군국주의자들을 적극 지지했습니다. 그들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그들의 승리를 기원했습니다. 얼마나 잘못된 일입니까? 사람을 국가별로 살해하는 계획을 세운 사람들을 교회가 축복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에서 지울 수 없는 영원한 상혼(傷魂)으로 남아 있을 뿐입니다.
예정에 관한 예지적 견해와는 대조적으로 개혁주의적 견해에서는 구원에 대한 궁극적 결정권이 인간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 결정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천명합니다. 개혁주의적 견해에서는 영원 전부터 하나님께서 일부 사람들의 생활가운데 개입하셔서 그들을 구원에 이르는 믿음으로 인도하시기로 하셨지만,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는 그렇게 하지 않기로 하셨다고 주장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행위를 미리 내다보시지 않고서도 영원 전부터 어떤 사람들은 선택하기로 하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유기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각 개인의 궁극적 운명은 태어나기도 전에 인간의 선택에 전혀 근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에 의해 결정되었습니다. 물론 인간의 선택은 자유롭게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그러한 선택이 이루어지는 것은 먼저 하나님께서 택한 자들로 하여금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영향을 미치시기로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선택의 근거는 인간 안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기쁘신 뜻 가운데 있습니다. 예정에 대한 개혁주의적 견해에서는 하나님의 선택이 인간의 선택보다 앞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선택한 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선택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생각에는 우리가 하나님을 선택한 것 같이 생각되지만. 하나님의 예정이나 하나님의 내적 부르심이 없이는 아무도 그리스도를 선택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그토록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괴롭히는 예정에 관한 하나의 견해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자유의지와 하나님의 공정함에 관한 심각한 질문들을 일으키는 견해입니다. 이것은 그토록 많은 분노의 반응을 일으키고 숙명론의 도전 결정론의 도전 등을 유발시키는 견해입니다. 예정에 관한 개혁주의적 견해에서는 황금사슬을(롬8:29,30) 영원 전부터 하나님은 자신이 택하신 자들을 아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창조하시기도 전에 마음속에 그들의 정체에 대하여 생각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개인적 정체에 대하여 미리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셨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먼저 사랑하셨다는 의미에서 그들을 알고 계셨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안다”고 말할 때 이 표현이 종종 단순히 사람에 대한 정신적 인식과 깊고 밀접한 사랑 사이를 구별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냥 안면정도 알고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 더 진보해서 단위별로 교제하는 정도의 앎이 아닙니다. 대단히 깊이 아는 앎의 정도를 말합니다. 개혁주의적 견해에서는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미리 아신 자들을 모두 내적으로 부르시기로 예정하시고, 그들을 의롭다 하시며, 영화롭게 하시기로 예정하셨다고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주권적으로 그분의 택함 받은 자, 오직 택함 받은 자들만의 구원을 이루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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