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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과 하나님의 관계(로마서 9:1-33)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은 구속의 행위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속전(그의 피 혹은 죽으심)을 지불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점이 예수님 사역의 성격을 구속적이라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많은 사람을 위하여 자기 생명을 대속물(luvtron/rûitron)로 주시려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20:28/10:45). 그리스도의 사역은 구속(救贖)으로 언급되었습니다(1:68/2:38/9:12). 데이스만(Deissmann)은 이에 대하여

1세기에 희랍어 luvtron(ransom/속전)이란 말을 들을 때에 그것은 의당히 노예를 해방시키기 위해 지불된 노예매입금으로 생각했다. 86, 100, 91년 또는 107년에 노예해방과 관련된 Oxyrhynchus에서 나온 3문헌이 다 이 말을 사용하고 있었다.

고 했습니다. 그런데 초대교회와 중세교회의 많은 교부들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하나의 속전(a random)으로서 사탄에게 지불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때에 사단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풀어주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레니우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오리겐, 바실, 두 분의 그레고리, 알렉산드리아의 시릴, 다마스커스의 존, 힐라리, 루피누스, 제롬, 어거스틴, 레오 대제와 같은 위인들, 그리고 버나드와 루터와 같은 사람들이 그렇게 주장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을 사단을 파멸시키는 일로 이해하는 이러한 견해는 성경적인 근거가 부족했습니다. 그리하여 점차 사라졌습니다. 이러한 견해는 다음과 같은 질문이 제기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과연 누구에게 속전으로 지불되었는가? 물론 그 대답은 분명합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속전으로서 하나님께 지불되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율법을 범함으로써 그의 거룩하심과 공의가 손상되었기 때문입니다. Anselm은 이와 같은 교부들의 견해에서 오류를 발견하고,

하나님께서 마귀에게 형벌하는 것 외에는 아무런 빚을 지지 않은 만큼 인간이 갚아야 할 모든 것은 하나님께 빚을 진 것이지, 마귀에게 진 것이 아니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사역은 구속의 성격상 하나님을 지향하였음을 우리가 인식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불하신 대속물은 사단에게 지불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지불한 것입니다. 상환을 요구하는 채무(債務)는 하나님의 공의의 속성에 기인된 것입니다. 사단은 죄인에게 하등의 법적요구권이 없습니다. 죄인이 석방되려고 사단에게 무엇을 지불할 필요는 전연 없다는 것입니다. Shedd하나님의 자비가 사람을 하나님의 공의에서부터 속량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사단에게도 속박되어 있음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Shedd

사단에게 포로된 것은 그리스도의 피의 구속적 효험에 관계하기보다는 성령의 역사에 관계된 것이다. 사단의 속박에서부터의 구출은 칭의 역사라기보다는 성화의 역사의 일부이다. 사탄의 포로에서의 구출은 다른 구출 뒤에 온다. 즉 구출의 성질상, 속죄의 피에 의해 공의의 주장에서 부터의 일차적언 구속이 있은 연후에야 내주(內住)하시는 성령에 의하여 죄와 사단의 포로 빛 속박에서부터의 구속이 가능한 것이다.

대체적으로 Shedd의 의견과 일치하지만, Hodge는 다수의 성경귀절이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음에 의해 율법의 형벌과 율법자체와 능력으로서의 죄와 사단과 그러고 모든 악에서부터 구속함을 받았다고 합니다. 율법의 형벌에서부터의 구속 또는 사도바울이 갈라디아서3:13절에서 말한 것처럼 율법의 저주에서 구속함을 받은 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셨기 때문입니다. 율법자체에서 구속함을 받은 것은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기 때문입니다(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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