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분류 전체보기 (1474)
교회소개 (1)
교회약도 (1)
후원계좌 (1)
대요리문답1 (2)
하이델베르그요리문답 (4)
소요리문답 (1)
좋은글들모음 (48)
설교자료 (10)
연관 블로그 (2)
성경의 공인 (1)
홍수까지의 연표 (1)
이스라엘 분열사 (1)
10대 박해 (1)
성경숫자의 상징 (1)
-------------------- (0)
창세기새벽강해 (142)
출애굽기 새벽강해 (262)
마태복음 새벽강해 (267)
사도행전 새벽강해 (366)
로마서새벽기도 (216)
빌립보서 (0)
- 에베소교회 (1)
- 서머나교회 (1)
- 버가모교회 (1)
- 두아디라교회 (1)
- 사데교회 (0)
- 빌라델비아교회 (0)
- 라오디게아교회 (1)
성경 개관 (0)
- 에스라, 느헤미야 (1)
- 학개 개관 (1)
- 스가랴 개관 (1)
- 사도행전 (1)
- 고린도전서 (2)
- 고린도후서 (2)
- 빌레몬서 (1)
- 야고보서 (1)
기도 (1)
성경 각 권의 주제 (1)
예배순서 (4)
예화 (2)
찬양 (0)
- 온전히 (1)
- 창세기 (4)
- 출애굽기 (1)
- 레위기 (2)
- 민수기 (1)
- 신명기 (1)
- 여호수아 (1)
- 사사기 (1)
- 룻기 (1)
- 사무엘상 (1)
- 사무엘하 (1)
- 열왕기상 (1)
- 열왕기하 (1)
- 역대상 (1)
- 역대하 (1)
- 에스라 (1)
- 느헤미야 (2)
- 에스더 (1)
- 욥기 (3)
- 시편 (1)
- 잠언 (1)
- 전도서 (1)
- 아가 (1)
- 이사야 (2)
- 예레미야 (1)
- 예레미야애가 (1)
에스겔 (1)
- 다니엘 (1)
- 호세아 (1)
- 요엘 (1)
- 아모스 (1)
- 오바댜 (1)
- 요나 (1)
- 미가 (1)
- 나훔 (1)
- 하박국 (3)
- 스바냐 (1)
- 학개 (2)
- 스가랴 (1)
- 말라기 (1)
- 마태복음 (3)
- 마가복음 (7)
- 누가복음 (1)
- 요한복음 (3)
- 사도행전2 (2)
- 로마서 (1)
고린도전서 (0)
고린도후서 (0)
- 갈라디아서 (1)
에베소서 (0)
빌립보서2 (0)
골로새서 (0)
데살로니가전서 (0)
데살로니가후서 (0)
디모데전서 (1)
디모데후서 (0)
디도서 (0)
빌레몬서 (0)
히브리서 (0)
야고보서 (0)
베드로전서 (0)
베드로후서 (0)
요한일서 (0)
- 요한이서 (1)
- 요한삼서 (1)
- 유다서 (1)
- 요한계시록 (1)
붓글씨 (9)
수채화 (1)
공지사항 (0)
- 게시판 (29)
철학.인문학 (7)

RECENT ARTICLE

RECENT COMMENT

ARCHIVE

LINK



요한이 본 아들의 영광

마태복음17:1-8

 

예수님의 생애 가운데 놀라운 일 들 중 한 사건은 예수님의 변형 사건입니다.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로 더불어 말씀하는 것이 저희에게 보이거늘 베드로가 예수께 여짜와 가로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주께서 만일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제자들이 듣고 엎드리어 심히 두려워하니 예수께서 나아와 저희에게 손을 대시며 가라사대 일어나라 두려워 말라 하신대 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

 

사도요한에게 예수님의 변형 사건은 큰 인상을 주었습니다. 요한은 요한복음1:14에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한은 예수님의 변형 사건을 보면서 동시에 하나님 아들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아들의 영광을 생각할 때 몇 가지의 진리가 있는 것을 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1:14) 라고 요한이 말한 이유입니다. 그것은 단지 이 땅에 있는 사람의 영광이 아닙니다. 그것은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영광이었습니다. 며칠 전에 예수님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16:13) 고 질문하셨습니다. 그는 많은 답변을 들으셨습니다.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예레미야는 눈물의 선지자이었으며 예수님 또한 슬픔의 사람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세례요한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보다도 요한과 예수님은 정반대의 인물이었습니다. 요한은 사람들과 떨어져서 살았으나, 예수님은 무리와 어울려 살았습니다. 요한은 나실인(6/1:15)이었기에 독한 술을 마시지 아니하였으나 예수님은 결혼 잔치 집에 가셔서 물을 포도주로 만드셨습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얼마나 예수님의 인격에 대하여 오해를 하고 있었는가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에게 또 질문하시기를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15)고 하셨습니다. 베드로가 대답하여 말하기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16)라고 하였습니다. 이때에 예수님은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시지 아니하셨습니다. 일주일이 지나서야 그의 영광을 보여 주셨습니다. 제자들의 신앙고백에도 불구하고 일주일 동안 그 증거를 보지 못하였습니다. 한참이 지나서야 비로소 영광 가운데 계신 예수님을 볼 수 있었습니다.

 

요한복음의 가장 중요한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이 책(요한복음)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없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20:30,31). 하나님께서는 사도 요한을 택하여 성령의 감동으로 요한복음을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복음서에서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예수님께 붙여진 이름을 통해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예수께서는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10:36). “나는 선한 목자다”(11). “내가 문이니”(9).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6:35), 그리고 내가 참 포도나무요”(15:1)라고 말씀하셨습니 다. 주님의 영광과 신성은 그의 행하신 기적 속에서도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의 첫 번째 기적은 요한복음 2장에 기록되어 있는데 그것은 주님이 결혼잔치에 가셔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셨다는 내용입니다. 요한은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이렇게 덧붙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 영광 을 나타내시매”(1) 주님의 이름과 기적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아들이시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에 하늘에서부터 하나님께서는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하셨습니다(3:17). 변화 산에서 하나님께서는 다시 말씀하여 가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17:5)고 하셨고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다시 하늘로부터 그의 아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12:27~30).

 

베드로가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았을 때에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17:4)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이 말을 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17:5)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에게 우선권을 드린 것은 사실이었으나 그것은 절대적인 우선권은 아니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가장 첫 번째 자리에 오르게 하였으나, 모세와 엘리야를 예수님과 같은 수준에 놓았습니다. 모세는 율법을 대표합니다. 엘리야는 예언자를 대표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율법과 예언을 성취하셨습니다.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 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1:1,2).

우리는 베드로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아야 합니다. 예수님에게 단지 우선순위와 두드러진 자리를 제공하지 말고, 절대적인,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그러한 자리를 드리도록 해야 합니다. 요한은 아들의 영광을 강조하였는데 그 이유는 예수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Son of God)은 히브리적 배경에서 하나님 자체 또는 하나님과 동등한 존재로 이해하였습니다. 예수님과 동시대에 살았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할 때 이를 하나님과 동등한 존재 또는 하나님 자체라고 주장하는 것과 동일하게 간주했습니다. 예수님의 칭호로서 하나님의 아들은 절대적으로 삼위일체인 성부와 성령과 성자 예수님은 그 권위와 영광이 동등하며, 동일한 영원성을 지니며, 동질적이라는 사실을 동시대는 물론 오고 오는 세대에 증거해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셨습니다. 예수님이 변형하셨을 때 그것은 영광이 비추이는 곳에 들어가셔서 빛을 반사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이 영광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변형되사/metemorfwvqh는 다른 형상으로 바꾸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변형기사는 인지 가능한 변화의 실례였습니다. 지상적 형태에서 천상적 형태로 변형한 이 기적은 옷의 광채로 나타났습니다. 이 변형은 헬라적 의미의 변신과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변형되었다는 말은 종말론적 사상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새 세대에 의인에게 약속된 일이 이미 이 세상에서 예수님에게 일어났습니다. 그의 가장 친밀한 제자들 앞에서 예수님의 인간적 외모가 일순간에 변모된 세계에서의 천상적 존재의 모습으로 변했습니다. 이것은 종말론적 실재에 대한 예견이자 보증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인자로서 궁극적 구원의 소망을 명백히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을 통한 길의 목적이 위대한 성취자의 영광이라는 것을 깨달아야만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범죄 하였을 때, “이가봇이라는 이름을 사무엘상 4:21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 의미는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는 것이었습니다. 후에 이스라엘은 성전을 건축하였고 솔로몬은 이 성전을 봉헌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그 안에 가득하였습니다(왕상8). 그러나 그 백성이 다시 범죄 했습니다.

에스겔을 읽어보면 하나님의 영광이 이미 떠나버린 성전을 바라보는 에스겔의 모습을 발 견할 수 있습니다.

 

8:1-4 제 육년 유월 오일에 나는 집에 앉았고 유다 장로들은 내 앞에 앉았는데 주 여호와의 권능이 거기서 내게 임하기로 내가 보니 불같은 형상이 있어 그 허리 이하 모양은 불같고 허리 이상은 광채가 나서 단 쇠 같은데 그가 손 같은 것을 펴서 내 머리털 한 모숨을 잡으며 주의 신이 나를 들어 천지 사이로 올리시고 하나님의 이상 가운데 나를 이끌어 예루살렘으로 가서 안뜰로 들어가는 북향한 문에 이르시니 거기는 투기의 우상 곧 투기를 격발케 하는 우상의 자리가 있는 곳이라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거기 있는데 내가 들에서 보던 이상과 같더라

 

9:1-4 그가 또 큰 소리로 내 귀에 외쳐 가라사대 이 성읍을 관할하는 자들로 각기 살륙하는 기계를 손에 들고 나아오게 하라 하시더라 내가 본즉 여섯 사람이 북향한 윗문 길로 좇아오는데 각 사람의 손에 살륙하는 기계를 잡았고 그 중에 한 사람은 가는 베옷을 입고 허리에 서기관의 먹 그릇을 찼더라 그들이 들어 와서 놋 제단 곁에 서더라 그룹에 머물러 있던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올라 성전 문지방에 이르더니 여호와께서 그 가는 베옷을 입고 서기관의 먹 그릇을 찬 사람을 불러 이르시되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하라 하시고

 

10:1-7,18 이에 내가 보니 그룹들 머리 위 궁창에 남보석 같은 것이 나타나는데 보좌 형상 같더라 하나님이 가는 베옷 입은 사람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그룹 밑 바퀴 사이로 들어가서 그 속에서 숯불을 두 손에 가득히 움켜 가지고 성읍 위에 흩으라 하시매 그가 내 목전에 들어가더라 그 사람이 들어갈 때에 그룹들은 성전 우편에 섰고 구름은 안 뜰에 가득하며 여호와의 영광이 그룹에서 올라 성전 문지방에 임하니 구름이 성전에 가득하며 여호와의 영화로운 광채가 뜰에 가득하였고 그룹들의 날개 소리는 바깥 뜰까지 들리는데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하시는 음성 같더라 하나님이 가는 베옷 입은 자에게 명하시기를 바퀴 사이 곧 그룹들 사이에서 불을 취하라 하셨으므로 그가 들어가 바퀴 옆에 서매 한 그룹이 그룹들 사이에서 손을 내밀어 그 그룹들 사이에 있는 불을 취하여 가는 베옷 입은 자의 손에 주매 그가 받아가지고 나가는데 18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 문지방을 떠나서 그룹들 위에 머무르니

 

11:22-25 때에 그룹들이 날개를 드는데 바퀴도 그 곁에 있고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도 그 위에 덮였더니 여호와의 영광이 성읍 중에서부터 올라가서 성읍 동편 산에 머물고 주의 신이 나를 들어 하나님의 신의 이상 중에 데리고 갈대아에 있는 사로잡힌 자 중에 이르시더니 내가 보는 이상이 나를 떠난지라 내가 사로잡힌 자들에게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신 모든 일로 고하니라

 

이 영광은 이 땅에 되돌아오지 않다가 예수님의 탄생하심에서 영광이 다시 나타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 안에서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이 때문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성령이 오시지 아니하였더라면 예수님의 변형은 단지 역사적 사실이었을 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성령이 오순절에 강림하셔서 믿는 자들 속에 충만하게 거하시므로 오늘날에도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나누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17장에 나오는 우리 주님의 중보 기도를 볼 수 있습니다. 이 기도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에 대해서도 적어도 여덟 번이나 언급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기도를 시작하십니다.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시옵소서”(1). 기도의 후반부에 이르러 이렇게 기도하십니다.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22).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영광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세주로서 신뢰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이것의 의미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이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일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트럭을 운전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시험공부를 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이웃을 방문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전화를 걸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고린도전서1031절에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우리가 이 땅 위에서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기 위하여 그의 영광을 우리와 더불어 나누어 주셨습니다. 사도 요한은 아들의 영광을 기억하였고 기록하였습니다.

 

Closing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우리 안에서 하나님이 영광스럽게 되기 위하여, 우리의 삶을 통해서 그의 영광이 빛나도록 하십시다.

'- 마태복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 이름은 임마누엘  (1) 2023.05.12
역사의 주인 예수그리스도  (0) 2010.09.21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