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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온 사람들을 고치신 예수님

마가복음1:32-34

 

대학병원이나 대형병원의 응급실은 흡사 전쟁터와 같습니다. 각종 사고 난 사람들이나 병으로 위독한 환자들이 모여드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의사와 간호사들은 그들을 치료하려고 매우 분주하게 움직입니다. 응급실은 첨단장비들과 우수한 인력들이 항상 대기하고 있습니다. 응급요원들이 응급처치해서 각 과에 보내어 생명을 연장하게 합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다 생명을 연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응급실에서 또는 수술실에서, 치료실에서 유명을 달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병원에서 치료하지 못하는 것은 의술의 부족이 아닙니다. 인간의 한계 때문입니다. 현재까지의 의술이 병에 따라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이것은 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 그럴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생명을 연장하려고 생명공학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들이 생명을 연장하려고 하지만 어쩔 수 없이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적이 일어나야만 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상상의 기적만 생각합니다. 기적은 이 세상에서 일어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베푸신 기적을 모두 기록하지는 않았습니다. 사복음서에는 예수그리스도께서 베푸신 각각 다른 기적이 35회가량 기록되어 있습니다(20/18/20/28). 마태복음에만도 주님께서 기적을 행하셨던 상황을 12번이나 암시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기적들은 수많은 기적 중에서 기록자 자신의 저술 동기에 적합한 것만을 일부 선정하여 기록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일일이 기록했다면 기적만 따로 기록한 책이 별도로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만큼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들이 많다는 말씀입니다.

 

말라기4:6을 보면

 

개역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바른성경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 자녀의 마음을 아버지에게 돌이킬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와서 이 땅을 진멸함으로 칠 것이다.

 

구약성경의 마지막 말씀은 저주, 멸망 !reje/hērēm입니다. 여기에서 저주는 우리가 보통 생각하고 있는 저주가 아닙니다. 우리가 보통 생각하고 있는 저주는 신명기28:20입니다.

 

신명기28:20 네가 악을 행하여 그를 잊으므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여호와께서 저주와 공구와 견책을 내리사 망하며 속히 파멸케 하실 것이며

 

신명기28:20의 저주 hr:aem]/mĕ’ērâ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고 있는 저주입니다. 하지만 말라기4:6의 저주는 다른 뜻이 있습니다. 저주를 헤렘으로 기록했습니다. 헤렘은 금지라는 뜻입니다. 여호수아6:16-19을 보면

 

16 일곱번째에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외치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 성을 주셨느니라 17 이 성과 그 가운데 모든 물건은 여호와께 바치되 기생 라합과 무릇 그 집에 동거하는 자는 살리라 이는 그가 우리의 보낸 사자를 숨겼음이니라 18 너희는 바칠 물건을 스스로 삼가라 너희가 그것을 바친 후에 그 바친 어느 것이든지 취하면 이스라엘 진으로 바침이 되어 화를 당케 할까 두려워하노라 19 은금과 동철 기구들은 다 여호와께 구별될 것이니 그것을 여호와의 곳간에 들일찌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첫 성인 여리고를 주시면서 이스라엘에게 신신당부하십니다. 절대로 가나안의 모든 재물을 착복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착복했습니다. 그 결과 조그만 아이 성에서 크게 패하게 됩니다. 이유는 아간이 하나님의 곳간에 넣어야 할 재물에 손을 댄 것입니다. 이것을 헤렘을 범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것을 착복했다.”입니다.

 

말라기4:6의 저주가 곧 헤렘입니다. 여기에서는 하나님께서 복을 금지하셨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앞으로 올 엘리야 곧 세례요한이 선포한 메시지를 믿지 않으면 복을 금지하신다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께서 복을 막으시기에 저주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로부터 침묵의 400년이 지난 후 예수그리스도의 족보가 나옵니다.

 

마태복음1:1 다윗과 아브라함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신약성경을 첫 번째로 열면서 예수그리스도를 소개합니다. 구약성경에서는 저주를 선포하였는데, 신약성경 초입에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저주와 그리스도. 어떤 관계입니까? 그리스도께서는 사람들의 저주를 해제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람들의 저주를 없애십니다. 저주란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이 불순종하여 생긴 결과입니다.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3:10). 누구든지에 모든 사람이 포함됩니다. 모든 사람이 저주 아래 있습니다. 저주 아래 있다는 말은 죽어야 하고, 죽는다는 말은 영원한 죽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계산하기에 따라 영원한 죽음을 맞게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성경대로, 약속된 대로 그리스도께서는 그 저주를 폐기하고 인간을 죽음에서 구해내시려고 오셨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 여자의 후손 그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우리를 저주에서 구원해 내신 것입니다. 이것이 기적입니다. 예수님께서 여자의 몸에서 태어나 율법 아래 오셨다는 사실이 기적입니다. Campbell Morgan유대인의 계통에서는 도저히 그런 분이 나올 수 없다. 그는 그 계통을 완성하시고 또 그것을 바꾸기 위해서 오셨다. 그래서 만왕의 왕으로 오셨지만, 그의 이름은 예수라고 불렸다. 왜냐하면, 그 왕국은 죄로 인해 해체되어 붕괴하였으며, 국토는 유린당했기 때문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로부터 구원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했다.”이것이 기적이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기적을 바라지만, 기적을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기적이 일어나도 자연 현상으로 설명하려고 매우 노력해 왔습니다. 홍해가 갈라졌다고 해도 많은 사람이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홍해라는 이름은 #Ws !y: /yâm sûp입니다. 갈대 바다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이 얕은 갈대 바다를 건넜기 때문에 기적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어떤 바다라도 바닷가에는 갈대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건넌 홍해는 넓고 깊은 바다였습니다. 만일에 갈대숲의 바다라면 어떻게 이스라엘은 건너고, 말을 탄 애굽 군인들이 수장되었을까요? 이럼에도 아직 그것을 규명해보겠다고 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성경에는 초자연적인 기적들이 두루두루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혜택을 받은 사람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그래도 현대인들은 성경의 기적을 역사적인 것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성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홍해가 갈라질 수 없습니다. 우리의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요단강이 갈라질 수 없습니다. 사람들의 생각으로는 일어날 수 없는 일들입니다. 그러므로 fact인데 fiction으로 생각합니다. 육안으로만 세상을 헤아리기 때문입니다. 육안이 아닌 영안으로 봐야 제대로 보입니다.

 

32 저물어 해 질 때에 모든 병자와 귀신들린 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33 온 동네가 문 앞에 모였더라 34 예수께서 각색 병든 많은 사람을 고치시며 많은 귀신을 내어 쫓으시되 귀신이 자기를 알므로 그 말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시니라

 

저물어 해 질 때에 사람들이 나왔습니다. 왜 해가 떠 있을 때 좀 더 일찍 나와서 고침을 받지 않았습니까? 병자들의 상황은 일각이 여삼추였습니다. 그런데 저물어 해 질 때에야 나왔습니다. 그 이유는 이날이 안식일이었기 때문입니다(21). 오늘날로 말하면 토요일 오후 해 질 때입니다. 해가 지면 안식일이 종료됩니다. 히브리어 표현에 따르면 두 종류의 저녁이 있습니다. 출애굽기12:6의 원문을 보면, 해질 때를 히브리인들은 두 저녁 사이라고 읽습니다. 일몰과 어두움 사이로, 빛이 아직 있는 상태의 그 중간 시간을 가리킵니다. 안식일이 끝나자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었습니다. 그들의 입장은 안식일을 범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귀신 축출이나 병을 치료하시는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으셨습니다.

복음서에 제시된 구체적인 기적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수많은 기적 중 지극히 제한 된 몇몇 예일 뿐입니다. 모든 병자와 귀신들린 자, 온 동네, 각색 병든 많은 사람, 많은 귀신 등과 같은 표현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들이 얼마나 많고 다양하였는가를 말하는 것입니다. 기적을 얼마나 폭넓게 행하셨는가를 말하는 것입니다.

모든 병든 자, 다음에 바로 귀신들린 자가 덧붙여 기록되었습니다. 귀신은 들리지 않았으나 육체적으로 병든 자들과 육체적으로는 병들지 않았으나 귀신이 들린 자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괴로움이 무엇이었든지 간에 다 고쳐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병 고치는 능력은 결코 모자람이 없었습니다. 찾아온 사람들 모두 고쳐주셨습니다. 이병은 되고, 저 병은 안 되고가 없었습니다. 모두 고쳐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동정의 손길은 결코 중단되는 일이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귀신들린 사람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실 때 귀신이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하고 소리쳤습니다. 귀신들의 그 소리에 재갈을 물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귀신들을 꾸짖으시고 더 이 일에 대해 말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어 이 세상에 어떻게 오셨습니까? 정말 귀하게 오셨습니다. 그런데 귀신들이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을 망치려 했습니다. 아직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시지 않으려고 하셨는데 이 귀신은 그것을 까발리고자 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수난과 부활을 통하여 자신에게 속한 사람들을 구원하고자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반대하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너무나 빨리 메시야로 알려지면 안 되었습니다. 그래서 귀신들을 꾸짖으신 것입니다.

 

아테네인들이 델피의 신전에서 신탁을 받고자 했습니다. “아테네에서 누가 제일 지혜로운 사람인가?”하고 물었습니다. 그때 신탁을 하는 무녀 PhythiaSwkravth"라고 했습니다. 이 말이 아테네에 두루 퍼졌습니다. Swkravth"는 이상했습니다. 자신이 생각할 때 자신은 지혜로운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에서 지혜롭다 한 사람들을 일일이 찾아서 물었습니다. 찾아서 물어보고 시험해보니 엉터리라고 생각했습니다. Swkravth"자신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테네의 소위 지성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알지도 못하면서 지성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無知라고 합니다. 난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는 것을 아는데, 저들은 아는 것이 없는데도 지혜롭다고 스스로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기적이 없다고 믿는 사람들이 無知입니다. 더 나아가서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무지의 지입니다. 병을 치료받은 사람이 있는데. 귀신들림에서 자유로워진 사람이 있는데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무지의 지입니다. 예수님께 왜 사람들이 모였습니까? 예수님께서 무엇인가 할 수 있는 것을 사람들이 알았기 때문입니다. 기다리고 있다가 안식일이 끝나자마자 바로 찾아왔던 것입니다. 기적을 베푸시는 예수님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Closing 제가 만든 것은 제가 고칠 수 있습니다. 제가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들은 하나님께서 고치실 수 있습니다. 우리의 선장이신 예수님께서는 주무시다가 풍파를 안정시키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배는 가장 안전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면 어둠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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