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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러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

마가복음1:1-8

사람들은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자신의 의지로 오지 않습니다.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도 자신의 의지로 오지 않았습니다. 요새 우상화 되어서 신격화된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의지로 이 세상에 오지 않았습니다. 그냥 태어나진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입을 다물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태어나심은 다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할 때부터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시기로 약속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예수님의 오실 시기와 장소를 예언했었습니다. 이미 장소는 유대 땅 베들레헴으로 확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시기가 묘연했습니다. 언제인지 확실히 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세상의 왕들이 그의 길을 닦았습니다. 주전 334년부터 동방원정을 시작했던 알렉산더는 페르시아제국, 중앙아시아, 인도 북서부에 이르는 광대한 세계제국을 건설하여 언어를 통일했습니다. 그가 정복한 모든 나라들은 헬라어를 쓰게 했습니다. 또한 로마는 길을 전문적으로 냈습니다. 도로공사에 대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습니다. 그리스가 언어를 통일하고 로마는 길을 냈는데 그들은 이것이 그리스도와 무슨 관련이 있는지를 몰랐습니다. 후에 알고 보니 복음이신 예수그리스도의 터를 이들이 닦아놓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때가 예수님을 보낼 시기라고 생각하셨습니다. 1절을 보면 보내실 예수에 대해서 신분을 밝히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jArch; tou' eujaggelivou jIhsou' Cristou', uiJou' qeou':

I. 복음의 시작인 예수그리스도(1).

세계에서 신들이 가장 많은 나라가 인도의 힌두교인들입니다. 그들의 신들은 무려 4억8천만이나 된다고 합니다. 다음으로 많은 나라가 일본입니다. 약 800만이나 된다고 합니다. 다음으로 많았던 나라가 과거의 로마입니다. 거의 집집마다 신들이 하나 이상 있었다고 합니다. 이들이 왜 그렇게 많은 신들을 섬깁니까? 그들이 믿는 신은 사람하고 거의 같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들이 많으면 좋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로마인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자기들도 굉장히 강한 민족이라고 자부하면서도, 신들의 도움이 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도 신들을 많이 두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성경은 읽어야 할 대상이 있습니다. 마태복음은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썼습니다. 고린도전후서는 고린도에 있는 교회들에게 썼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마가복음은 로마인을 대상으로 썼습니다. 로마기독교인들을 위해서 썼습니다. 따라서 로마인들에게 쓰는 만큼, 예수님의 기적을 많이 기록했습니다. 로마인들에게 있어서 이론적으로 예수님에 대해서 말해봐야 관심 밖이었습니다. 세계를 제패하고 있는 사람들이라 힘으로,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믿었습니다. 로마인들은 위대한 인간들은 보통 인간과 다르게 보았습니다. 로마인들로서 유대인인 예수그리스도는 연구해볼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는 사람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마가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들을 많이 기록하였습니다.

마가는 그의 복음서를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jArch; tou' eujaggelivou 복음의 시작이라”우리가 복음, 복음 하면서도 복음의 진정한 뜻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교회이름도 복음교회라고 이름을 붙이지만, 복음의 참뜻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너도나도 복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에 대해서 정확하게 무엇인지 모릅니다. 안다고 해도 복음은 복음이 요구하는 것을 충족시켜야 합니다.

Greece의 필디피데스는 Greece가 Marathon 평야에서 Persia와 싸워 승리한 소식을 전하기 위해 먼 거리를 단숨에 뛰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겼다’는 승전소식을 전하고 죽었습니다. 후에 그 병사가 뛴 거리를 재어보니 42.195km였습니다. 이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마라톤 경기가 생겼습니다. 이 병사가 Greece에 전한 것은 ‘Greece가 Persia를 이겼다는 말’이었습니다. 이것이 좋은 소식입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좋은 소식을 듣기 원하고 있습니다. 요새 우리들에게 좋은 소식이라고 하면, 휘발유 1리터에 500원한다면 좋은 소식일 것입니다. 또 전주시의 가장 좋은 땅을 평당 1,0000원에 준다고 하면 역시 좋은 소식입니다. 전주시의 가장 좋은 아파트를 1000만원에 준다고 해도 역시 좋은 소식입니다. 요새 서울에 문제가 되고 있는 뉴타운(new town; new city)을 300평씩 평당 5000원에 준다고 하면 좋은 소식입니다. 그러나 복음(eujaggevlion)은 아닙니다.

종교적으로도 좋은 말을 하는 종교들이 많습니다. 사람들을 사랑하고, 자연친화적으로 살며, 남에게 잘하라고 합니다. 자기를 비우라고 합니다. 도덕적으로 살며, 특히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면 좋은 곳에 갈수 있다고 말합니다. 좋은 곳에 가서 죽지 않고 영원히 살수 있다고 말합니다. 좋은 소식이기는 한데 복음(eujaggevlion)은 아닙니다. 복음의 조건에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eujaggevlion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사람들에게 내려지는 것입니다. 복음은 구원에 대한 좋은 소식입니다(막1:14). 복음은 여인의 후손에서 나와야 합니다. 남자의 후손인 자의 어떤 것도 복음일 수는 없습니다. 복음은 아브라함에게 이미 말해진 것입니다(갈3:8). 복음은 선지자들이 약속한 것입니다(롬1:2). 1절을 보면 “복음의 시작,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라 했습니다. 즉 복음은 하나님의 아들로부터 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eujaggevlion은 예수그리스도 안에 모두 요약되어 있습니다. 이 복음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 복음으로 앞으로도 사람들이 구원을 받습니다. 이 복음으로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John Owen은 ‘세상에 종교는 많지만 복음은 하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복음을 우리가 꼭 믿어야 할 이유는 하나님과 개인적인 교제에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 성도들이 이 복음대로 살기를 원합니다. 복음을 사람들이 믿어야 영원히 살 수 있습니다. 복음을 믿어야 우리들의 삶이 영육간에 윤택해집니다. 복음을 믿어야 우리들에게 미래가 있습니다. 복음을 믿어야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가서 왕노릇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말씀을 듣는 우리 성도들이 복음으로 살 것을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복음의 시작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로부터 옵니다. 2절에서 8절을 보면

2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저가 네 길을 예비하리라 3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4 세례요한이 이르러 광야에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5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 6 요한은 약대 털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더라 7 그가 전파하여 가로되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8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거니와 그는 성령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시리라

마가복음의 첫 서두에서 세례요한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두 번째로

II. 복음을 위한 예비자 세례요한(2-8절).

마가는 이사야 40:3을 인용했습니다. 그러나 그 전에 말라기 3:1절을 인용합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 또 너희의 구하는바 주가 홀연히 그 전에 임하리니 곧 너희의 사모하는바 언약의 사자가 임할 것이라(말3:1)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사40:3)

왜 세례요한이 꼭 등장해야 합니까? 왜 세례요한은 광야에서 외쳐야 합니까(3절)? 외치는 자란 무엇 하는 사람입니까? 외치는 자는 왕의 마종(馬從)입니다. 왕이 지나는 길을 잘 정돈하는 왕의 시종입니다. 여기에서 왕은 예수그리스도입니다. 따라서 세례요한은 예수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는 사람입니다. 왜 하필 왕이 대로로 오지않고 사막으로 옵니까?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출하실 때 사막을 통해서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왕이신 예수그리스도께서 직접 임하시면 되는데 왜 세례요한을 등장시킵니까? 율법과 선지자가 그와 더불어 끝나기 때문입니다. 말라기 선지자 이후에 400년간 침묵하다가 세례요한이 갑자기 등장합니다. 이 세례요한의 출현이 구약시대와 신약시대를 갈라놓습니다. 세례요한의 출현과 더불어 구약시대는 지나가고 신약시대가 펼쳐졌습니다. 세례요한의 활동이 구약시대를 마감하고 신약시대의 선구자가 되었습니다. 세례요한은 율법을 은혜로 바꾸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라기까지 유대의 율법을 굳게 지키도록 권고하셨습니다. 그러다가 요한을 보냄으로 새 시대가 열리게 하셨습니다. 율법의 폐기와 복음의 시작이 요한의 전도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보다 길잡이로 요한이 먼저 온 것입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의 길잡이 그 이하도 그 이상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공적인 사역을 하였을 때 그는 미련 없이 갔습니다(막6:27,28). 그는 예수님의 길을 닦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세례요한은 사막 같은 황량한 때에 나타나 광야에서 회개하라고 외쳤습니다. 세례요한의 외침은 메아리로 유대 온 땅에 퍼졌습니다. 세례요한은 그들에게 회개하라고 외쳤습니다.모든 사람은 회개해야 된다고 외쳤습니다. 그의 외침은 사람들에게 울림이 되었습니다. 세례요한은 회개(metanoiva")하고 죄 사함을 받으라고(eij" a[fesin aJmartiw'n) 선포(khruvssw)했습니다. 그리고 회개한 자에게 세례(bavptisma)를 베풀었습니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나아와서 자기 죄를 시인했습니다(ejxomologevw). 그리고 그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세례요한은 일약 stardom에 올랐습니다. 인기가 하늘을 찌를 듯 했습니다. 예수님은 사역을 시작도 안했는데 세례요한은 대형교회로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 대한 인기관리를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인기관리에 신경을 썼습니다. 어디까지나 그는 예수그리스도의 종으로서 사역을 마치려 했습니다. 그는 자신을 예수님 앞에 한없이 낮추었습니다. 나는 그의 종일뿐이라 했습니다. 신발끈을 푸는 것은 주로 노예들이 했습니다. 따라서 나는 예수님의 신발끈을 푸는 일조차 할 수 없다고 자신을 낮추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세례와 예수님의 세례를 비교했습니다. 자신은 회개케 하는 물세례를 베풀지만, 예수님은 성령세례를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세례는 죄를 회개케 하는 세례지만, 예수님은 구원의 세례를 베푸신다고 하였습니다. 세례요한은 철저하게 예수님을 드러내는 삶을 살고자 했습니다. 왜냐하면 복음이신 구원자가 오심을 예비하는 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세례와 예수님의 세례를 비교하여 성령세례를 말했습니다.

성령세례가 무엇입니까? 성도가 예수님을 영접했을 때 주신 선물로 성령의 임재하심입니다. 성령세례는 예수님이 받으셨습니다. 제자들도 받았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받았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성령세례를 받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많은 news를 접하고 있습니다. news는 좋은 news도 있고 슬픈 news, 나쁜 news도 있습니다. 즉 우리에게 유익한 news도 있는 반면에 우리에게 유익하지 못하고 오히려 해를 끼치는 news도 있습니다. 그러나 좋은 news라고 해도 어디까지나 육신을 위한 news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거의 육신을 위한 것들입니다. 사람들이 개발하는 모든 것들이 육신을 위한 것들입니다. 우리나라 한 사람이 지구밖에 갔다 오는데 그 비용이 310억 원이었습니다. 이것도 육신을 위한 것입니다. 영적으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인 모든 것들이 육신적인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들은 육신적인 것을 생각하지, 영적인 것에는 투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전에 요한은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선포했습니다. 어쩌면 이 세상 사람들이 관심 없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때 가장 관심 있는 내용은 ‘로마로부터의 해방’이었습니다.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아니었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이 가장 관심 있는 것은 IMF이전의 삶이었습니다. 오늘 사람들의 삶의 관심은 삶의 질을 높이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극히 육신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심은 ‘삶의 질도 문제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영적인 것에 관심을 더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일하러 오셨습니다. 사람이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영원히 죽게 되어있습니다. 죄(aJmartiva)는 인간의 하나님에 대한 결정적인 약점입니다. 이것을 누구도 제거하지 못합니다. 오직 복음이신 예수그리스도께서 보완하십니다. 우리는 어떤 신들이 구원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어떤 신들이 지켜주지 못합니다. 복음이 되기 위해서는 사람들을 영원히 구원할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단지 이 세상에 있을 때 사람들의 마음만 좋은 소리로 다독거려서는 안 됩니다. 또한 구원할 수도 없는데 구원한다고 말해서도 안 됩니다. 그것은 사람의 영혼을 담보로 큰 사기를 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은 하나님의 요구조건에 맞아 떨어져야 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어야 합니다. 반드시 길을 닦는 자 요한이 앞에 와야 합니다. 그리고 동정녀에게서 탄생해야 합니다. 십자가의 대속적인 죽음이 있어야 합니다. 사흘 만에 성경대로 부활해야 합니다. 하늘에 승천하셔서 다시 이 땅에 오셔야 복음입니다.

이 복음은 하나님의 특별한 능력이 있습니다. 죽음에서 부활하신 복음의 메시지에는 일회적인 과거 사건으로 제한되지 않습니다. 현재 우리에게 충만한 능력으로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복음은 거듭남과 새 생명을 낳으며, 평화를 가져옵니다. 구원을 주십니다. 그리고 고통과 환난을 이길 힘을 얻게 하십니다. 복음으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 가까우며 실제적입니다. 사랑과 능력으로 우리를 도와주시기를 원하신다는 현실성이 곧 복음의 내용이며 핵심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기뻐할 때에 우리의 신앙과 삶이 새롭게 시작됩니다. 우리는 이 복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해서 전도를 해야 합니다. 가족이 예수를 믿지 않는다는 것은 치명적입니다. 현재는 가족으로 있지만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영원히 만날 수 없는 곳으로 가게 됩니다. 우리는 천국으로, 믿지 않는 내 부모형제는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제일먼저 점검해야 할 것이 구원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죄 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복음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때문에 먼저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복음의 증인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굳센 믿음을 가지기를 바랍니다. 믿음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으로 복음의 참된 증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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