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진 돌판(출애굽기32:15-20)
모세는 산에서 내려왔습니다. 그는 시내산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계명을 받느라고 40주야를 산에 있었습니다(출24:18). 이제 계명을 받고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이스라엘의 패역함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진멸하시겠다는 뜻을 모세의 중재로 돌이키신 은혜로운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산에서 내려오는 모세의 양 손에는 증거판이 있었습니다. 그 증거판은 두개였습니다. 그 판의 양면에는 글씨가 써 있었습니다(15). 그 판은 하나님이 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돌판에 새기신 것입니다. 돌판을 가지고 이미 약속을 어긴 이스라엘을 향해서 내려오는 중입니다. 내려오다가 모세는 여호수아를 만났습니다. 여호수아는 모세가 내려올 때까지 산에 있었습니다. 여호수아는 무리와 떨어져 있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영문을 모르기 때문에 모세에게 싸우는 소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모세는 이미 하나나님께로부터 말씀을 받았기 때문에 소리에 대한 진실을 알고 있었습니다(18). 싸우는 소리도 아니고, 승전가도 아니며, 노래하는 소리라 하였습니다.
모세는 그들을 보기 전에는 몰랐었는데 그들을 보자 사태의 심각성을 알았습니다. 진에 가까이 이르러 송아지와 그 춤추는 것을 보자 눈이 뒤집힐 정도였습니다. 그리하여 십계명의 판들을 산 아래로 던져버렸습니다. 당연히 그 돌판은 깨졌습니다(20). 모세는 그들이 만든 송아지를 불살라버렸습니다. 그리고 가루를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물에 뿌렸습니다. 다음에 이스라엘 자손에게 그 물을 마시게 하였습니다(21). 모세의 이렇게 함을 카일·델리취는 주석하기를 “그 의도는 눈에 보이는 방법으로 죄와 그 결과를 분명히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죄가 물과 함께 그들의 내장 속으로 부어졌는데 그것은 마치 간음의 혐의가 있는 여인이 저주의 물을 마셔야 했던 것과 같다(민5:24). 그들이 그 죄를 담당해야 하는 상징적인 표현이다”라고 했습니다.
죄는 오염성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전체가 금송아지의 회오리에 휩쓸렸습니다. 또한 죄는 신속성이 있습니다. 금방 진 전체에 퍼졌습니다. 죄는 짓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죄책감이 문제였습니다. 아담이 죄를 지어 나무 뒤에 숨는 것처럼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서 어디론가 숨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숨을 곳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죄값을 받아야 했습니다. 모세가 없고 하나님께서 나타나지 않으면 기다려야 했습니다. 아니면 물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묻지 않고 자기소견에 옳은 대로 행한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만들면 그것은 자력의 종교가 됩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하나님을 만들 줄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을 보이는 형상으로 이방같이 만들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이방의 신들처럼 하나님을 취급하였습니다. 이것이 그들의 죄였습니다. 인간의 타락은 끝이 없습니다. 인간의 타락은 멈출줄을 모르고 앞으로 나아가기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