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불신앙(출애굽기14:10-14)
이스라엘은 애굽 군이 쫓아오는 것을 보고 매우 두려워했습니다.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 죽어야 할 처지였습니다. 그들은 애굽이 보았을 때 길 잃은 노예였고, 이스라엘이 보았을 때는 죽어야 할 처지였습니다. 동편으로는 바다였습니다. 남쪽과 서쪽으로는 높은 산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뒤에는 애굽의 군대가 가로막혀 있었습니다. 그들은 거기에 아무런 군대의 武裝이 없었습니다. 이제는 風前燈火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나 그 부르짖음은 신뢰가 없는 부르짖음이었습니다. 모세에게 하는 말투로 보아서 그렇습니다.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그들은 죽음을 앞에 두고 모세에게 못할 말이 없었습니다. 할 말을 다해버렸습니다. “차라리 우리가 너희더러 애굽을 섬긴다 하지 않았느냐” 무엇 때문에 끌어내어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를 버려두라는 것이었습니다.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낫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죽음보다는 훨씬 낫겠다는 그들의 말이었습니다. 이후로부터 이스라엘은 끝없이 불평을 합니다. 하나님의 이적을 보았어도 도무지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않았습니다. 430년간의 노예생활이 지긋지긋했지만 차라리 노예생활이 낫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불신은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는 것입니다.
음은 대상을 가집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가 대상입니다. 그러나 신뢰의 대상이 되는 사람에 관한 지식이 없이는 신뢰란 있을 수 없습니다. 그 사람에 관한 어떤 것을 알지 못하면 믿지 못합니다. 특히 그 사람에 대한 우리의 신뢰의 근거가 되는 것을 알지 못하고서는, 우리는 어떤 사람을 신뢰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경우에 지식은 삶과 죽음, 현세와 내세의 문제들과 연계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가 그러한 신뢰를 받을 만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에 관한 교리의 중요성이 있습니다.
삼위 되신 하나님을 믿지 못할 때 우리들은 불평하게 됩니다. 이적과 기사란 인간의 상상을 뛰어넘는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자연의 법칙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것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들입니다. 티끌을 날리는데 독종이 되고 같은 지역에서 애굽은 재앙이 일어나고 있는데 이스라엘은 멀쩡합니다. 그러한 이적을 베푸시는 분이 모세에게 작전지시를 하였습니다. 이제 충분한 이적과 기사를 보았으면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오늘 하나님의 하신 일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하신 일을 믿지 못하면 우리의 인생이 어렵게 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계신대도 믿지 못하면 그것처럼 어리석은 일이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계획을 믿고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는 순종만 할 따름입니다. 이스라엘처럼 사사건건 물고 늘어지는 불순종을 우리 마음에서 제거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