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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비정상적인 성장(마태복음13:31-32)

예수님께서 계속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과 같다고 했습니다. 겨자씨는 모든 씨보다 작았습니다. 그런데 자란 후에는 나물보다 커서 나무가 되었습니다. 그 후에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인다고 했습니다.

보통 통상적으로 이 비유는 교회의 성장으로 해석했습니다. 외적으로 계속해서 영역을 넓혀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작은 씨앗이기는 하지만 자라나면 극히 커서 새들이 깃들만큼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13장의 내용을 계속 보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해서 캠벨 몰간은 “이 비유들에서 자신의 나라에대한 왕자신의 견해를 발견하게 된다. 주님께서 시작하신 세대의 역사에 국한된 천국에 대한 견해를 발견할 수 있다. 즉 이 비유들과 묘사들과 이야기들은 영원하고도 지속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왕이 세상에 오심으로 시작된 세대의 역사에 국한된 천국에 대한 왕 자신의 견해를 계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천국은 마치…같으니”라는 말은 변화와 결과라는 성격이 내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천국의 윤리문제가 아니라 현세의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인간들의 자세라는 것입니다.

두 가지 씨 뿌림의 비유에서 왕은 자신의 땅에 천국의 아들들을 뿌립니다. 그와 동시에 원수가 그 땅에 악한 자의 아들들을 뿌립니다. 겨자나무의 비유에서 천국이 겨자나무로 제시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비정상적인 성장, 즉 왕의 의도와 일치하지 않는 지상차원에서의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대 내에 나무처럼 공중의 새들에게 처소를 제공해주는 겨자의 비정상적이고 특별한 성정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가르쳤다는 것입니다. 겨자씨 비유는 천국이 이 세대 내에서 궁극적인 상태까지 성장하고 진보한다는 사실을 가르치려는 의도가 아니라, 발전을 이야기하고는 있지만 비정상적인 발전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비정상적인 성장은 정상적인 성장의 모습과 상반되는 것으로 교회 안에 우월감, 교만함, 지배의식 등등이 팽배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비정상적인 성장의 예로 콘스탄틴이 기독교를 공인한 것입니다. 이 시기는 중세시대와 더불어 교회사에서 가장 암흑의 시기였습니다. 콘스탄틴은 기독교를 정치화했습니다. 그는 기독교의 힘을 빌어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했습니다. 콘스탄틴은 기독교에 많은 이교적 요소를 주입시켰습니다. 기독교를 세속적인 권세의 위치로 격상시켰습니다. 이후로 정치의 맛을 안 기독교는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이면 모든 것을 다스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교황주의자들은 세상의 왕들과 황제들과 통치자들을 다스리고 지배하는 권세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커다란 조직과 권세로 다스릴 수 있디고 지금도 변함없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씨 뿌리는 자가 씨를 뿌릴 것이나 그중 일부만 결실할 것이라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원수가 씨 중에 가라지를 뿌릴 것을 보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그 세대가 완성될 때까지 곡식과 가라지의 발전이 계속되어야 함을 보 셨습니다. 따라서 주님께서는 생명에서 벗어난 비정상적인 성장을 교회사에서 보신다는 것입니다. 겨자씨가 자라 큰 나무가 되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둥지를 트는 것입니다.

겨자씨의 비유가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세대에 속한 사실들을 인식할 것을 요구하신 것입니다.이 비유는 너무나 자주 정직한 영혼들을 가득 채우는 기만으로부터 우리를 살려낼 것입니다. 우리는 천국의 원칙들이 승리하는 모습이 전혀 다르리라고 생각했습니다. 21세기에 접어든 교회는 그 거만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철학자들에 의해서 천국의 이상을 거부당했습니다. 잘못된 신학자들이 성경을 난도질했습니다. 성전(聖戰)을 한다고 이 땅이 피와 쓰레기와 전쟁으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다시 옛날의 영광을 되찾으려는 세속화는 하늘을 찌르고 있습니다. ‘어떤 주교들이 크냐?’하고 콘스탄틴 이후로 우위선점의 전쟁을 한 것처럼, 현재는 ‘어떤 교회가 세력이 크냐?’하고 다투고 있습니다.

이런 시점에서 우리는 하나님만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에 우리 주님께 모순된 점이 없어야 합니다. 우리들은 절대로 교만하거나 높아지고자 하는 마음들이 없어야 합니다. 그것은 예수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모순되기 때문입니다. 교만이나 세상의 위대함 들은 주님께서 뿌리시지 않았기 때문에 그릇된 것들을 초래합니다. 교회가 그릇된 것들을 용납할 경우, 부정한 새들이 계속 날아들어 교회와 우리의 삶 가운데 둥지를 틀어버립니다. 그럴 경우 천국은 왜곡되고 방해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씨 중에서 가장 작은 겨자씨가 가장 작은 씨와 같은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그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가 산을 옮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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