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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족보와 기독교윤리(마1:1-16)

‘윤리’라는 말은 헬라어 “e[qo"”(에토스/관습)에서 유래했습니다. ‘윤리’란 ‘인간이 지켜야 할 도리 또는 바람직한 행동기준’입니다. 기독교적 관점에서의 윤리학이란 “성경과 기독교적 확신에 준하여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도덕은 ‘한 사람이 실제로 자신의 신념대로 살고 행동하는 것’이고, 윤리학은 이러한 행동에 대해서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윤리는 ‘하나님의 의지’에 토대를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윤리는 절대적입니다. 하나님의 계시에 토대를 두고 있습니다. 기독교윤리는 규정적입니다. 의무론적입니다.

윤리적인 관념이나 도덕적인 관념으로 볼 때에 족보에 있는 여인들은 문제가 있습니다.

다말의 남편 엘이 죽습니다. 그리하여 유대의 법으로 시동생 오난과 동침하지만 여호와의 목적에 악을 행하여 죽습니다. 다시 시동생 셀라에게 시집을 가려하나 나이가 너무 어립니다. 유다가 다말에게 셀라가 장성하기까지 기다리라고 합니다. 하지만 유다는 셀라도 죽을까 염려가 되어서 다말과 떼어 놓으려 한 말입니다. 따라서 셀라가 장성해도 k말에게 주지 않겠다는 속셈입니다. 이에 다말은 시아버지인 유다와 동침하고 임신하게 됩니다. 물론 유다는 그가 다말인지 몰랐습니다(창38:1-30).

라합(1:5)은 그 직업이 기생입니다. 유대인들은 라합의 직업을 여관주인이라고 하지만 히브리서 11:31을 보면 그 직업이 기생(povrnh)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할 때 중요한 정보제공을 합니다. 물론 자신의 가족을 살려주는 조건으로. 그래서 자신의 가족을 살립니다. 후에 라합은 예수그리스도의 족보에 자신의 이름을 올립니다.

룻(1:5)은 출신이 모압 족속입니다. 모압족속의 유래는 창19장에 있습니다. 도저히 유대에 그 이름이 오를 수 없는 여지입니다. 그런데 역시 그리스도예수의 족보에 올라있습니다.

우리야의 아내로 나오는 밧세바는 성경에서 이미 지적하였습니다. 자신의 남편을 두고서 다윗과 동침하고 그로 인해서 자신의 남편인 우리야를 죽게 한 여자였습니다. 그런데도 그 역시 족보에 올랐습니다.

기독교윤리와 이 세상의 윤리는 다릅니다. 세상의 윤리로 기독교윤리를 잣대질 하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라합이 거짓말 한 것은 세상의 윤리에는 어긋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것을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의지에 따랐기 때문입니다. 즉 윤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윤리여야 합니다. 이것을 벗어나면 세상의 윤리이지 하나님의 윤리일 수 없습니다. 신명기7:2, 16절을 보면

2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게 붙여 너로 치게 하시리니 그 때에 너는 그들을 진멸할 것이라 그들과 무슨 언약도 말 것이요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말 것이며 16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붙이신 모든 민족을 네 눈이 긍휼히 보지 말고 진멸하고 그 신을 섬기지 말라 그것이 네게 올무가 되리라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가나안을 정복할 때에 가나안 사람들을 진멸하라고 했습니다. 진멸(!~yrIj}T' !rEj}h'; haharem taharim/하하렘 타하림)으로 “바치고 또 바치라”는 말로 “죽이고 또 죽여서 바쳐라”는 말입니다. 사람의 생명은 아주 귀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한 사람도 남기지 말고 죽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모두 바치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세상윤리의 잣대로 잴수는 없습니다. 세상윤리는 이러함을 용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반드시 진멸하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로 인해서 너희들이 올무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이스라엘을 전부 신전창녀로 만들고 남자는 모두 무당이 되게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세상윤리마저 그들이 바꾸어버린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윤리와 세상윤리가 상충될 때는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윤리를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네 여인들의 윤리를 세상윤리로만 보면 안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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