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들과 예수그리스도(마태복음1:1-16)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3절),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5절), “···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5절),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6절)
예수님의 족보에 다윗과 아브라함이 들어가는 것은 이해가 갑니다. 그런데 여자들이 등장 하는 것은 획기적인 일입니다. 더구나 여기에 등장하는 여자들은 정상유대인들이 아닙니다. 다말은 가나안사람입니다(창38:1-20). 유다의 며느리입니다. 라합은 역시 가나안의 여리고사람입니다. 직업이 기생입니다(수2:1-21). 룻은 모압사람입니다(룻1:4). 창세기에 보면 모압은 근친상간의 족속이었습니다(창19:30-38).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는 부정한 여인입니다(삼하11:1-5). 이러한 여인들이 거룩하신 예수님의 족보에 올랐습니다.
유다 때에 가서는 아들이 모두 죽었습니다. 이것을 다말이 이어주었습니다. 라합은 가나안에 살다가 이스라엘을 적극 도왔습니다. 룻 역시 보아스를 만나 오벳을 낳았습니다. 밧세바는 솔로몬을 낳습니다. 그런데 어떤 종교보다 거룩함의 종교인 그리스도의 족보에 이러한 여인들이 등장한다는 것은 그 뜻을 모른다면 다른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Calvin은 마태복음1:3을 이렇게 주석했습니다. ‘이것이 바울이 말하는 자기비하(exinanitio)의 시작이다(빌2:7).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는 족보를 티끌만한 범죄나 수치의 자국이 없이 깨끗하게 보존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가 자기를 낮추고 종의 형태를 취하여 사람도 아닌 벌레, 세상 사람들의 조롱거리(시22:7)가 되시며 마침내에는 십자가에서 저주 받은 죽음을 당하기 위해 세상에 들어오실 때에 당시의 족보에서 부정한 출생의 사람도 조상으로 삼는 것을 거절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미인을 찾고, 순수를 찾으며, 정의를 찾고, 깨끗함을 찾아도 사람은 깨끗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 어떤 사람도 정의로운 사람은 없습니다. 모두 더러운 사람들뿐입니다. 어쩌면 위의 부정한 여인들보다 더럽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때로는 왕의 모습으로, 때로는 이스라엘의 처음조상의 모습으로 그리고 비하적인 모습으로 오기 위해서 연약할 뿐만 아니라 더러운 모습의 사람들을 조상으로 둔 것입니다. 우리같이 더럽고 나쁜 사람들을 위해서 천한 인간의 조상으로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는 그의 아들을 더러운 자리에 던져버릴 뿐만 아니라 그 아들을 아낌없이 죽이는 자리에까지 내주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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