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과 교회(사도행전1:1-3)
예수님은 복음서에서 앞으로 있을 교회에 대해서 가르쳤습니다(마16:17 18:17). 교회의 모든 일들을 사도들에게 맡기고 예수님은 부활 승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열두제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유대에서 사마리아에서 땅 끝까지 선교하여 교회를 세우는 일들이 사도행전에 기록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교회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 포괄적으로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교회를 사도들은 전하는 주체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루신 일들을 사도들은 부지런히 전했습니다. 스데반이나 야고보는 이 교회를 전하다가 순교하기도 했지만,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교회는 든든히 서갔습니다.
사도행전에 교회라는 용어는 행5:11, 7:38, 8:1, 8:3, 9:31입니다. 8:1은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ejkklhsiva/엑클레시아)에 대해 말합니다. 7:38은 모세가 광야에서 인도한 이스라엘 백성을 에클레시아로 부르고 있습니다. 9:31은 예루살렘 공동체뿐만 아니라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의 공동체를 말합니다.
사도행전9:31은 교회가 단수(ejkklhsiva)로 써졌습니다. 그러나 15:41에서는 교회가 복수로(ejkklhsiva") 16:5에서도 복수입니다. 11:22, 12:1, 12:5, 15:4, 15:22에 예루살렘에 있는 공동체, 행 13:1 행 11:26 행 14:27 행 15:3의 시리아 안디옥에 있는 공동체, 18:22의 가이사랴에 있는 공동체, 20:17-18 20:28의 에베소에 있는 공동체는 단수로 표기되었지만, 복수개념으로 말한 것입니다.
신약의 교회나 공동체에 대한 개념의 특징은 지금과는 달랐습니다. 지금은 도시교회와 농촌교회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서열을 자꾸 가리려고 합니다. 그러나 초대교회는 서열이나 상호관계의 문제없이 단순히 교회로 불렀습니다. 지역관계는 무시되었습니다. 단수(ejkklhsiva)와 복수(ejkklhsivai)가 무차별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에클레시아(ejkklhsiva)가 에클레시아이(ejkklhsivai)로 나누어지지 않았습니다. 엑클레시아의 총화가 엑클레시아를 만든다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나의 엑클레시아는 언급된 여러 지역에 존재하며, 이것이 서로 나란히 있는 엑클레시아에 대한 언급으로 영향을 받지도 않았습니다. ‘회중’과 ‘회중들’이든 ‘교회’와 ‘교회들’이 항상 서로 이해하고 도왔습니다.
오늘날의 교회는 확연히 구분되었습니다. 회중이 많은 교회와 적은 교회로 구분되었습니다. 세속적 에클레시아는 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세력으로 판가름을 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의 집회는 크기는 고려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교회의 특징입니다. 그리고 상호보완적이고 상호 서로 돕는 관계입니다. 예루살렘교회가 안디옥교회를 주관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서로 독립적이었고, 공동체적이었습니다. 초대교회는 온전히 하나님의 교회로서의 모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초대교회와 오늘날의 교회는 너무나 많이 달라졌습니다. 따라서 오늘날의 교회는 초대교회로 다시 가야 합니다. 잃어버린 순수성과 거룩성, 그리고 충성성을 찾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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