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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과 로마(사도행전1:1-3)

이집트는 이스라엘을 품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로마는 교회의 태동을 가져왔다. 헬라는 언어를 통일하여 로마제국의 전체를 언어통일을 이루었다. 그래서 교회는 로마제국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로마는 주전753년도에 건국되었다. 주전343년동에서 272년도에 이탈리아를 정복했다. 주전264년도에서 146년에 칼타고를 점령했다. 주전 215-146년도에 헬라와 소아시아를 정복했다. 주전 133-31년에 스페인,고울, 브리튼, 튜우톤을 정복했다.

주전 146년 로마의 장군 스키파오 아프리카누스(Scipio Africanus)는 칼타고를 정복한 후 거의 저항을 받지 않고 마케도냐, 고린도(Corinth), 아가야(Achaia) 전역으로 통치권을 확장시켰고, 주전190년에는 셀류쿠스의 시리아를 굴복시키고 주전 168년에 애굽의 항복을 받았다. 계속 승리한 로마는 식민지가 넓어지면서이를 다스리는 총독들과 자주 교란이 생겼고 정치의 실권을 잡은 소수인은 평민을 압박하였다. 그러다가 주전133년에 호민관으로 선정된 티베리우스 그라쿠스는 토지 재 분배 법을 통과시켰으나 원로원의 미움을 받아 암살되었다. 주전 70 년경 폼페이(Pompey) 장군이 통령이 되었는데, 로마제국을 건설하기 위하여 동방에 왔을 때 유대의 하스몬가의 힐카누스2간의 정권다툼을 보고 유대정치에 관심을 가졌다. 때마침 힐카누스2세가 도움을 요청해 오자 주전63년 폼페이는 시리아 북쪽지역을 멸망시킨 후 다메섹에 이르렀는데 이때는 힐카누스2세와 아리스토블루스2세의 양쪽의 도움을 요청받았다. 폼페이는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아리스토블루스의 항복을 받고 반항하는 자들을 살해하였다.

주전31-주후14년까지 아우구스투스(Augustus): 이 때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셨으며, 12-37년 티베리우스(Tiberius)때에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처형당하셨다.

54-68년 네로(Nero), 그리스도인을 박해하고 바울이 처형당했다.

아우구스투구스로부터 약 200년 이상 지속된 ‘로마의 평화’(Pax Romana)는 여러 민족과 종교, 사상 등을 하나의 단일화된 법과 언어하에 묶을 수 있게 한 배경을 제공하였기에 그 배경하에서 복음이 종족과 언어 및 국가를 초월하여 어디든지 뚫고 들어갈 수 있었다. 또한 강한 군대를 내세워 여러 국토를 통일한 로마는 ‘모든 길은 로마로’라는 기치하에 동서와 남북의 벽을 뚫어 훌륭한 군사 및 교통 도로를 만들었기 때문에 복음이 이러한 rute를 통해 원활하고 신속하게 로마 제국 내 전역으로, 전 세계로 뻗어 나갈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높은 수준의 로마법과 질서 유지는 로마 시민권을 소유한 복음 전도자 바울에게 더 할 수 없는 면의를 제공해 주었다. 따라서 로마는 초대교회의 복음 사역을 위해 인류 역사상 하나님에 의해 특별히 마련된 복음의 온상이요 무대였다.

로마의 행정제도: 500년의 공화정치의 소산인 원로원제도, 집정관 제도, 민회 제도, 지방총독 제도 등은 주전 23년 Augustus에 의해 제국(帝國)시대가 시작되었을 때도 여전히 주요 행정제도로 존립했다. 원로원은 로마제국의 최고 행정기관이었다. Augustus 황제는 최고집정관, 최고원로원, 최고호민관의 직위를 겸임하였으며, 그 아래로 행정사무를 담당할 여러 관료들을 배치시켰다. 로마시(市)는 황제에 의해 직접 다스렸으며, 기타 속주(prvce)들에는 총독이 파견되거나 자치가 인정되었다. 총독으로 파견되는 자들은 대개 임기를 마친 집정관들로 구성되었으며, 원로원에 의해 임명받았다. 그리고 속주들 중에는 황제의 직접적 통치를 받았던 곳도 있었다.

로마의 군대 제도: 로마에는 상비군(常備軍) 제도가 없었으며 필요시 병사들을 소집하였다. 그러다가 마리우스(Gaius Marus/주전157-86)가 극빈계층을 직업 군인으로 편입시킴으로써 상비군 제도가 정착되었다. 그 후 로마군대는 기본적으로 용병제적(爛兵制的) 성격을 띠게 되었으며, 부대에 따라 근무 기간이 16~26년까지 각각 달랐다. 모든 군대는 황제휘하에 편성되었으며 황제 친위대와 로마시 주둔군, 군단들(legions), 보조 부대들, 민병대, 함대(fleet) 등 5개 집단으로 분류되었다. 로마제국의 군사체제는 주로 속주들을 방어한다는 차원에서 편성되었으며, 황제 친위대 및 로마시 주둔군을 제외한 거의 모든 부대가 국경 지대의 속주에 배치되었다. 그리고 군단의 병사는 입대와 함께 로마 시민권을 얻었으며 보조 부대의 병사는 제대할 때에 시민권을 받았다. 백부장은 대략 10명으로 구성된 소위 ‘백인대’(白人隊)의 지휘관인데 대개 한 보병대(步兵隊)에는 1명의 백부장이 있었고, 한 군단(軍國)에는 10명의 백부장, 한 군단에는 60명의 백부장이 있었다. 백부장은 천부장의 휘하에서 그 명령에 복종하였으나 일선 지휘관으로서 군의 뼈대가 되는 것은 역시 백부장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전투 부대로서의 한 군단의 규율과 역량을 좌우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부분의 백부장들은 말단 졸병에서부터 승진하였으므로 군대 안에서 가장 많은 경험을 축적한 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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