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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콘스탄틴 황제가 왜 죽을 때 세례를 받았는가에 대하여 여러 가지 생각을 합니다. 구원을 받았느니, 못 받았느니 하는 추측으로 죽을 때에야 세례를 받은 것을 두고 콘스탄틴황제를 많이 비판하는 것을 봤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궁금증은 어거스틴의 고백록을 읽으면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어거스틴도 세례를 연기했기 때문입니다. 고백록 제1권 유아기와 소년기 제11장을 보면 세례의 연기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습니다.

11장_ 세례를 연기함

(17) 내가 아직 소년이었을 때 영생에 대한 가르침을 들었습니다. 그 영생이란 교만한 우리들에게 친히 내려오신 우리 주 하나님의 겸손을 통해서 약속된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때 당신을 굳게 믿고 있었던 어머니의 모태로부터 태어난 후 바로 십자가의 표시로 인 침을 받았고, 당신의 소금으로 간이 배어 있었습니다.

오, 주님, 내가 어렸을 때에 갑자기 배가 몹시 아파서 죽게 되었던 일을 당신은 알고 계십니다. 그때도 당신은 나를 지키시는 자였으니 내 어머니와 우리 모두의 어머니 되신 당신 교회의 경건에 감화되어 내가 얼마나 열렬한 믿음으로 내 주 하나님이신 당신의 아들인 그리스도의 세례를 받으려고 열망했는지 당신은 알고 계십니다. 내 육신의 어머니는 대단히 당황하며 당신을 믿는 경건의 마음으로 나의 영생을 낳아 주기 위해 또 산고를 치르는 것이었습니다.

주 예수여, 그리하여 내가 당신께 참회함으로 죄 사함을 받아 구원의 성례로 깨끗이 씻겨지고, 구원받은 자들의 무리에 들도록 어머니는 열심히 준비하셨습니다. 그러나 내 병은 즉시 나았습니다. 이리하여 나의 죄 씻음은 늦어졌으니 그 이유는 내가 만일 더 오래 살면 더 더럽혀질 것이 불가피한 것이었고 또한 세례를 받은 후에 지은 죄는 더 크고 위험하기 때문이었습니다.(脚註/각주 고대교회는 세례를 받은 이후의 죄를 대단히 심각하게 생각하였다. 강경파는 세례 이후의 지은 죄는 용서함을 받을 수 없다고 믿었고, 온건파는 세례를 받은 후에 지은 죄는 두 번까지는 용서해 주어야 한다고 믿기도 했다. 그래서 어떤 교인들은 세례를 의도적으로 죽을 때까지 연기하기도 했다. 그 예로서 기독교 황제였던 콘스탄틴은 337년 임종시에 유세비우스 감독에 의해 세례를 받았다.) 그때 나는 이미 믿는 자였고 아버지를 제외한 온 집안과 어머니가 다 믿었습니다. 아버지는 아직 믿지 않았어도 내 안에 있는 어머니의 경건의 영향을 넘어뜨리거나 그리스도에 대한 나의 신앙을 방해하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나의 하나님, 어머니는 온 노력을 기울여 내가 그보다 당신을 나의 아버지로 삼을 것을 원했습니다. 이 일에 있어서 당신은 어머니로 하여금 그녀의 남편을 이기게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영적으로는 아버지보다 탁월하셨으나 계속 그에게 잘 순종하였습니다. 이렇게 순종하는 것이 실은 어머니가 당신께 순종하는 것이었으니 이것을 명하신 분이 당신이었기 때문입니다.

(18) 오, 나의 하나님, 내가 당신께 묻사오니 그때 내 세례가 무슨 목적으로 연기되었는지 그것이 당신의 뜻이라면 그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그때 고삐가 늦추어져 죄를 더 짓게 한 것이 참으로 나에게 좋은 것이 되었 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늦춰지지 않았어야만 했습니까? 그렇다면 왜 지금도 사방에서 내 귀에 들리는 소리는 ‘그를 내버려두어라.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두어라. 그는 아직 세례를 받지 않았다’ 라고 합니까? 그러나 육체의 건강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도 ‘그를 내버려두어라. 더 상처를 받게 내버려두어라. 그는 아직 치료되지 않았으니 말이다’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내가 그때 만일 단번에 치료가 되고 계속 나와 내 친구의 끊임없는 노력을 통하여 당신의 보호하에 안전하게 인도되어 왔다면 얼마나 더 좋았겠습니까? 진실로 그렇게 되었더라면 나에게 훨씬 더 좋을뻔 했습니다.

그러나 얼마나 많고 큰 유혹의 (바다의 파도가 유년기 후에 나에게 닥쳐왔습니까? 이것을 미리 본 어머니는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이루어져야 할 무형의 진흙 덩어리와 같은 나를 그 파도에 맡기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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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가 불편한 현대 독자를 위한 해설서

[탐독의 시간] 메리 더글라스 <문학으로 읽는 레위기>(시대가치)

www.newsnjoy.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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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당/sunagwgê의 기원은 주전 6세기 바벨론에 포로 된 유대인들이 그들의 성전과 분리되었을 때 율법을 이행하려는 노력으로서 모세오경을 연구, 토의하기 위하여 지역적 모임을 가진 것을 그 기원으로 본다. 그러나 회당은 제사의 장소가 아니고 기도와 교육의 장소로서 생겼다. 회당은 신약 시대 유대인의 집회 장소이다. 어떤 다른 기관보다 유대인의 신앙의 특성을 보여 주는 이곳에서 백성들과 지도자들이 만났으며 율법을 배웠다. 예배와 기도를 드리는 장소였을 뿐만 아니라, 회당은 공동체 생활의 중심역할을 했다. 오늘날도 회당은 유대인의 종교 생활의 중심부를 차지하고 있다. 예루살렘에서 성전 예배를 드릴 수 없었던 출애굽 광야 시절에는, 회당이 교훈을 받고 기도를 하는 장소로 부각되었던 것 같다. 그 기원에 대한 근거는 에스겔20:1에서 찾을 수 있다. 회당의 발전사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AD 1세기경에는 유대인들이 사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회당이 세워졌다. 그런데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최소한 10명의 성인 남자들이 필요했 다. 큰 도시에는 수많은 회당이 있었으며, 전해 내려오는 한 이야기에 따르면, AD 70년에 예루살렘이 파괴될 무렵에는 회당이 394개나 있었다고 한다. 복음서는 회당을 예수님이 사역하셨던 곳(눅4:16)으로 언급하고 있으며, 사도들은 회당을 복음 전도의 출발점(행13:5,14)으로 활용했다. 회당의 건물 형태는 예루살렘 성전을 본땄던 것 같다. 율법서와 선지서 두루마리를 담고 있는 하나의 언약궤가 출구 맞은편 한쪽 끝에 있었다. 언약궤 앞과 출구와 회중 맞은편에는 종교지도자들이 앉는 최고의(혹은 주요한) 자리들(막23:6)이 마련되 어 있었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 다른 구획에 앉도록 되어있었다.

회당은 그 회원들을 훈육하고 징계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진 장로들이 다스렸다. 회당장(막5:22)은 예배를 감독했으며, 시중드는 사람들은 두루마리를 나르고(눅4:20) 율법에 어긋난 일을 한 사람들에게 징계를 내렸다. 그런 다음 통역자는 구약 말씀을 고유 언어인 아람어로 풀어 읽었다. 적법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누구나 발언할 수 있었다(눅4:16; 행13:15). 안식일 예배는 다섯 부분으로 행해졌다. 1. 쉐마를 읽었다(신6:4-9; 11:13-21; 민15:37-41); 2. 18개 간구문과 축도문을 포함한 기도문들을 암송하였다; 3. 율법서 중 한 부분을 원래는 3년 주기로 읽었다; 4. 읽는 자가 임의로 선택한(눅4:16이하) 선지서 중 한 부분을 읽었다; 5. 성경을 상세히 설명하였으며, 마지막으로 예배를 마치는 축도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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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구약성경을 보면 어디에도 회당이라는 말이 없습니다. 회당/sunagwghv/suinagogê은 지방 유대인공동체 사회의 모임 장소 또는 유대인들의 집회나 회중 자체입니다. 성전은 예루살렘에 하나 뿐입니다. 법에 의하면 열 가정이 사는 곳에는 회당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촌락마다 회당이 있어 사람들이 모여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렇게 각처에 회당이 있었고 회중 가운데 유능한 자는 회당장의 청으로 강의할 수 있었으므로, 갈릴리 사람들로부터 한 선생이나 선지자로 인정받은 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가르치는 기회를 쉽게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 회당 제도는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회당의 기원은 분명하지 않습니다. 주전 6세기 바벨론에 포로 된 유대인들이 그들의 성전과 분리되었을 때 율법을 이행하려는 노력으로서 모세오경을 연구, 토의하기 위하여 지역적 모임을 가진 것을 그 기원으로 봅니다. 회당은 제사의 장소가 아니고 기도와 교육의 장소로서 생겼습니다. 다른 기관보다 유대인의 신앙의 특성을 보여주는 이곳에서 백성들과 지도자들이 만났으며 율법을 배웠습니다. 예배와 기도를 드리는 장소였을 뿐만 아니라, 회당은 공동체 생활의 중심역할을 했습니다. 회당의 발전사는 알려지지 않지만, AD 1세기경에는 유대인들이 사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회당이 세워졌습니다. 그런데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최소한 10명의 성인 남자들이 필요했습니다. 큰 도시에는 수 많은 회당이 있었습니다. AD 70년에 예루살렘이 파괴될 무렵에는 회당이 394개나 있었다고 합니다. 복음서는 회당을 예수님이 사역하셨던 곳으로 언급하고 있으며, 사도들은 회당을 복음 전도의 출발점으로 활용했습니다. 회당의 건물 형태는 예루살렘 성전을 본 땄다고 합니다. 율법서와 선지서 두루마리를 담고 있는 하나의 언약궤가 출구 맞은편 한쪽 끝에 있었습니다. 언약궤 앞과 출구와 회중 맞은편에는 종교 지도자들이 앉는 최고의(혹은 주요한) 자리들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 다른 구획에 앉도록 했습니다. 회당은 그 회원들을 훈육하고 징계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진 장로들이 다스렸습니다. 회당장은 예배를 감독했으며, 시중드는 사람 들은 두루마리를 나르고 율법에 어긋난 일을 한 사람들에게 징계를 내렸습니다. 그런 다음 통역자는 구약 말씀을 고유 언어인 아람어로 풀어 읽었습니다. 적법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누구나 발언할 수 있었습니다. 안식일 예배는 다섯 부분으로 행해졌습니다. 1. 쉐마를 읽었습니다(신6:49; 11:13-21; 민15:37-41). 2. 18개 간구문과 축도문을 포함한 기도문들을 암 송하였습니다, 3. 율법서 중 한 부분을 원래는 3년 주기로 읽었습니다. 4. 읽는 자가 임의로 선택한(눅4:16이하) 선지서 중 한 부분을 읽었습니다. 5. 성경을 상세히 설명하였으며, 마지막으로 예배를 마치는 축도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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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 이전의 조상들

(1) 괄호 안에 있는 숫자들은 70인역의 알렉산드리아 사본의 읽기이다. 창세기11:30이하의 족보에서 사마리아 본문은 전체 생애를 제시하는 유일한 사본임.

 

 

홍수로부터 아브람의 소명까지의 조상들

두 본문(사마리아본문, 칠십인역)의 경우와 히브리 본문과의 편차는 5장에서 사마리아 본문은 히브리 본문보다 야렛이나 므두셀라 그리고 라멕의 첫 태생의 탄생을 100년 일찍이 두고 있는 반면에 70인 역은 다른 모든 조상들(노아를 제외하고)의 첫 태생의 탄생을 100년 늦게 두고 있다. 11장에서는 셈과 데라를 제외하고 모든 조상들의 경우에 두 본문에서 후자의 과정이 채택되었다. 이 결과로 아담에서 홍수까지의 간격은 히브리 본문과 비교해 볼 때 사마리아 역본에서는 349년이 짧아지고 70인 역에서는 586(Cod. Alex. 606)이 길어지고 있다. 홍수에서부터 아브람까지의 간격은 두 본문에서 다 길어지고 있는데, 사마리아 본문에서는 650년, 70인 역에서는 880년(Cod. Alex. 780)이 길어졌다. 후자에 있어서 가이난은 아르박삿과 셀라 사이에 삽입되어 130년이 첨가되었고, 나홀의 첫 태생의 나이가 히브리 본문에서보다 150년이나 후에 놓여진 반면 전자에서는 차이가 불과 50년 밖에 되지 않는다. 다른 차이에 관해서는 사마리아 본문에 있어서 야렛, 므두셀라, 라멕은 그들의 아들들이 출생한 이후 그 생애를 감소한 이유는 분명히 홍수 이전 시간 안에 그들이 죽었기 때문이다. 70인 역의 알렉산드리아 사본에 있는 대로 므두셀라의 나이는 분명히 같은 근거에 의거하여 계산되었다. 왜냐하면 바티칸 본문의 숫자에 의하면 므두셀라는 홍수 이후 14년을 살았다고 기록했기 때문이다. 히브리 본문과 이 본문과의 또 다른 차이에 있어서 명확한 목적을 찾을 수 없다. 동시에 그것들은 두 가지 경향을 충분히 나타내 보여주고 있는데, 그 하나는 홍수로부터 아브람까지의 간격을 길게 하고 있는 것과 또 하나는 모두가 일치하게 첫 태생의 탄생시의 나이를 줄이고 있다는 것, 또한 셋이 날 때에 아담의 나이가 특히 홍수 이전의 다른 어떤 족장의 나이보다 넘지 않았음을 유의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결과를 가져오기 위하여 70인 역은 홍수 전후의 모든 조상들의 나이에 100년을 첨가하고 있는데, 그들의 아들들은 그들이 100살 되기 이전에 탄생되었다. 한편 사마리아 본문은 단지 홍수 이후에 살았던 조상들의 경우에 이렇게 하고 있으며 아담과 셋보다 그들의 생애의 후기 시대에 첫 태생을 낳았던 모든 조상들의 나이에서는 100년을 세고 있다. 노아의 나이만이 변경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는데, 이는 임의적으로 본문을 변경하는 것을 방지한 홍수와 관련된 다른 재료가 있었기 때문이다.

히브리 본문과 두 본문 사이의 중요한 차이는 역대기적인 이론이나 순환기에 근거된 고의적인 변화였다는 것은 그것들의 내적인 성격 즉 그 진술의 개연성에 비추어 볼 때 매우 명확한 사실은 홍수 이후의 평균 수명이 이전보다 약 절반이었고 조상들이 홍수 이후에 그들의 첫 태생을 낳았던 시기가 늦어졌으며 또한 사마리아 본문에 의하면 일반적으로 그것이 이전에 있었던 것보다 늦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도는 많은 히브리 본문에서 찾아볼 수 없다. 결과적으로 그 수적인 진술들의 역사적 성격을 공격하는 모든 노력들은 전적으로 실패하였으며 또한 그것들의 정확성에 대항하여 어떠한 신빙성 있는 주장도 할 수 없었다. 이곳에 기록되어 있는 장수가 현존하는 인성의 상태에 의해 상상할 수 없는 것이라는 반대 의견은 만일 우리가 “옛 세상에 세상의 모든 기념물들이 거대한 능력을 증거 해주고 있으며 기후나 날씨 그 밖의 자연적인 조건들이 홍수 이후와는 달랐으며 생활이 보다 단순하고 평범했고 또한 낙원에서의 사람의 상태의 여파가 즉각적으로 소멸되지 않았다”(Delitzsch)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그 모든 기세는 꺾인다. 더욱이 장수는 필연적으로 인류의 증가에 크게 공헌하였으며 또한 아이들이 비교적 성숙된 시기까지 즉 부모들의 신체적, 정신적 발달이 완전히 완성될 때까지 태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은 필연적으로 힘 있는 종족의 출생을 뒷받침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두 상항으로부터 종족의 발전은 선과 악에 있어서 똑같이 특별한 에너지에 의해 분명히 특징지어졌다. 따라서 경건한 종족들에 있어서 조상들의 전통들은 아버지에게서 아들에게로 신실하게 그리고 불순물 없이 전달되었을 뿐만 아니라 가족의 특성, 경건, 훈계 그리고 도덕들이 깊이 뿌리를 박는 한편 불경건한 종족에서는 죄가 수많은 형태로 큰 세력을 가지고 자체를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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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세 성전

 

이스라엘은 역사 이래 세 차례에 걸쳐 성전 건축이 있었다. 제1성전은 솔로몬성전이고, 제2성전은 스룹바벨 성전이며, 제3성전은 헤롯성전이다. 솔로몬성전은 처음성전이고, 스룹바벨성전은 바벨론 포로 후에 페르시아 시대 때 페르시아 왕의 허락으로 귀환해서 건축했으며, 헤롯성전은 예수님 당시에 존재했던 성전이다.

 

제1성전-솔로몬 성전

성전건축

솔로몬성전은 솔로몬 재위 5년째에 시작되어 7년간의 공사기간을 거쳐 재위 11년에 준공되었다(왕상6:37-38). 예루살렘의 모리아 산 구릉에 세워진 솔로몬 성전은 원래 다윗 왕 때 계획되었다. 그러나 왕국 통일을 위해 너무 많은 전쟁을 치르며 피를 홀린 다윗은 성전을 건축하지 못한 채 성전건축을 준비하는 것으로 그의 역할을 마쳐야 했다. 성전건축을 위해 다윗과 솔로몬은 두로 왕 히람으로부터 자재와 기술 원조를 받았고, 많은 이스라엘 백성이 일꾼으로 동원되었다. 그러나 이 성전은 남 유다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 의해 멸망 당하던 B.C.586년에 파괴되고 성물은 모두 약탈되었다(왕하25:13-17,렘52:13).

 

성전 구조

가. 본체

성전 본체는 길이 약 27m(60규빗. 넓이9m(20규빗. 높이 약 13.5m(30규빗)의 크기로 이루어졌다. 이 중 지성소는 길이 약9m(20규빗)이며, 성소의 길이는 약 18m(40규빗)이었다(왕상6-7장 대하3-4장).

 

나. 낭실

성소 앞의 현관을 말한다. 길이는 약9m(20규빗)이며, 높이는 약54m(120규빗)이다.

 

다. 야긴과 보아스

낭실 좌우에 있는 두개의 청동 기둥으로 높이는 15.8m(35규빗)이며 기둥머리는 2.3m(5규빗)로 백합화 꽃모양을 했다.

 

라. 뜰

a. 바다

큰 물두멍. 솔로몬 성전에서는 성전 좌우에 각 5개씩 도합 10개의 바다가 있었다 직경이 약 4.5m(10규빗)이며, 높이 약 2.25m(5규빗)로 아래는 12마리 황소가 바치고 있는 형상이었다.

b. 번제단

높이 약 4.5m(10규빗)로 성막 뜰에 있던 번제단보다 무려 3.1m(7규빗)나높았다(대하4:1).

 

2성전-스룹바벨 성전

 

건축동기

유다왕국의 멸망은 곧 성전파괴와 몰락으로 이어졌다 이후 예루살렘은 70년 동안 폐허가 되면서 성전도 같은 처지에 놓였다. 그러나 70년 만에 바벨론에서 포로 귀환이 이루어지면서 성전재건은 활기를 얻게 되었다 본토로 돌아온 1차포로 귀환 인솔자 스룹바벨은 제일 먼저 성전재건에 착수하였다. 이것이 제2성전인데 스룹바벨의 주도하에 이루어졌다하여 스룹바벨 성전으로도 불린다.

 

건축과정

페르시아 왕의 허락 하에 재건된 성전 건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가나안 원주민과 암몬 등 주변국의 지속적인 방해로 작업은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또 귀환 초기 어려운 생활고와 식어진 신앙열기도 성전재건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었다. 이때 이스라엘 백성의 믿음을 격려하며 성전재건 역사를 독려한 선지자가 학개와 스가랴다. 그리하여 B.C.515년에 성전은 재건되었다.

 

건축 결과

스룹바벨 성전은 솔로몬 성전과 비교할 때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탈무드에 의하면 지성소에는 언약궤와 속죄소도 없었고, 현관의 우림과 둠밈도 없었다고 전한다. 하지만 이 성전은 포로에서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의 믿음생활에 중심역할을 하기에 충분하였고. 디아스포라유대인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건축 이후

2성전은 이후 B.C.169년 수리아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에 의해 더럽혀졌다 유대를 헬라화시키려는 의도에서 수리아 왕은 성전 번제단 자리에 제우스 신상을 세우고, 성전을 더럽혔다. 이런 일련의 성전모독 행위들은 곧이어 일어난 마카비 혁명으로 중단되고 마카비 가문은 성전 외벽을 쌓는 등 성전을 정화시켰다. 하지만 B.C.63년경 로마 장군 폼페이우스(Pompeius,B.C.106-48)에 의해 제2성전은 파괴되었다.

 

3성전-헤롯 성전

 

건축시작

파괴된 제2성전을 개축한 사람은 헤롯대왕이다. 그는 재위 18년째 되던 해(B.C.20년경) 성전개축을 시작하였다.

 

건축과정

헤롯은 공사시작 18개월 만에 본체를 15층 규모로 개축하고 B.C. 9년 경에 제단을 비롯한 주요 시설들을 모두 완성하였다. 하지만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헤롯은 성전 뜰, 성전 담, 성전 문등 외곽을 매우 아름답고 화려하게 꾸몄는데이 공사는 헤롯 시후 A.D. 64년까지 지속되었다. 이 성전공사는 1000 명의 제사장들을 포함하여 무려 20,000명이 동원되는 어마어마한 대역사였다. 이때 사용된 돌의 크기나 대리석의 아름다움은 당시 건축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대리석의 높이는 평균 90-120나 되었고, 어떤 것은 돌 하나의 길이가 12m이고, 무게가 100t이나 되는 것도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성전을 본 자는 누구나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13:1), 유대 랍비들은 이 성전을 보지 못한 자는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고까지 극찬하였다고 한다.

 

건축이후

3성전은 이런 외적 규모나 아름다움과는 달리 본연의 모습을 많이 훼손하였다. 이미 로마의 지배 하에서 정치적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던 대제사장은 왕이나 총독에 의해 임명되는 경우가 많았다. 또 절기 때 예루살렘을 순례하는 많은 유대인들은 성전을 거점으로 하여 로마에 항거하고 폭동을 일으켰다. 그래서 성전은 열심당원들의 본거지처럼 활용되었다. 결국 A.D.70년 로마의 장군 Titus (디도)는 예루살렘을 함락시키면서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을 정도로 성전을 철저하게 파괴시켰다. 성전 완공 6년 뒤의 일이었다.

 

성전 파괴 이후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Hadrianus. 117-138)는 파괴된 성전 터에 로마식 신전을 세웠고, 7세기 경에는 바위의 돔(Dome of the rock)으로 불리는 이슬람식 사원이 세워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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