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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0.19
구속으로 말미암아(로마서3:24-31)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24절),
그의 피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25절),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26절),
오직 믿음의 법으로(27절),
믿음으로(28절),
할례자도 무 할례자도 믿음으로(30절),
믿음으로 말미암아(31절).
법정에서는 원고(原告)와 피고(被告)가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피고에게 원고가 어떤 죄가 있다고 확신하기에 소송을 한 것입니다. 원고와 피고는 법에 명시된 대로의 법정심리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죄가 있으면 형 집행을 하고, 없으면 석방이 될 것입니다. 그것이 법정입니다. 소(訴)를 제기(提起)하면 법정에서는 헌법에 규정된 조항에 의해서 심리를 할 것입니다.
우리 인간들은 모두 하나님의 법정에서 실제로 죽을죄를 지은 피고입니다. 영원히 죽어야 할 중범죄를 지은 자들입니다. 죄가 너무나 크기 때문에 어떻게 빠져나올 방법이 없습니다. 그야말로 인간의 노력으로는 절대로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의 법정처럼 로비도 없습니다. 어떤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어떤 것을 대입시킨다 하더라도 중형을 면할 수가 없습니다. 당연히 영원한 엄벌에 처해져야 합니다. 辯護할 수도, 釋放시킬 수도, 保釋金을 내고 나올 수도, 어떤 사람도 減刑시킬 수도 없습니다. 무능한 채로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최후심판의 하늘법정의 모습입니다.
‘의로 여기다’ dikaivoun에서 어미가 –oun으로 끝나는 동사는 누구를 무엇으로 ‘만든다’것이 아닙니다. 누구를 무엇으로 ‘취급하다’ ‘인정한다’ ‘간주하다’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법정에 서있는 우리를 ‘의로 여긴다’는 것은 이생과 내생에서 영원한 징역형을 받아야 할 우리를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무죄한 사람으로 여겨주신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예수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그렇습니다.
속량/ajpolutrwvsew"/아폴뤼트로세오스는 ajpoluvtrwsi"/아폴뤼트로시스(구속/redemption, 구조/deliverance, 해방/release의 여성, 단수, 속격명사로서 헬라어문헌에서는 ‘속전을 받고서 놓아주다’에서 유래했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결코 값싼 구원이 아닙니다. 우리의 구원은 fiction이 아닙니다. 우리의 구원은 fact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어떤 어려움도, 어떤 괴로움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구원은 실재이고, 그것도 하나님의 자비로 얻은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우리의 공로는 전연 없는데도, 우리는 시커멓게 죄를 뒤집어쓰고 있는데도 무죄함으로 인정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가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의 공로를 내세우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는 것이요 패역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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