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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1.08
율법을 세우는 믿음(로마서3:24-31)
27 그렇다면 자랑할 것이 어디 있느냐? 있을 수 없다. 어떤 율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다. 오직 믿음의 법으로이다. 28 사람은 율법의 행위와는 상관없이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고 우리는 인정한다. 29 하나님께서 유대인의 하나님이시냐? 또한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냐? 진정으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신다. 30 할례자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한 무할례자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31 그러면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냐? 결코 그럴 수 없으니, 오히려 율법을 굳게 세운다.«바른성경»
유대인들은 전술한 바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앞에서의 인간입지를 손익평가로 생각합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회계장부에서 매일 대차계정을 따집니다. 즉 하나님과 자신과의 수지균형평가를 계산합니다. 만일 차액 균형이 대변(貸邊/선행)으로 기울면 그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을 받습니다. 그러나 만일 차변(借邊/악행)으로 기울면 그 사람은 정죄를 당합니다. 따라서 유대인들은 균형의 헤아림에 따라 판단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인간계정의 대변으로 균형이 기울게 하는 선한 행위들은 토라연구, 자선, 자비의 행위 등입니다.
이런 유대인들에게 믿음으로 이방인들이나 불경건한 자들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바울사도가 말한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라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이나 불경건한 자들이 받아야 할 대우라면 정죄를 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유대사람들은 재판관이 악인을 의롭다고 하거나 사면한다면 불의한 재판관이라고 했습니다.
이토록 유대인들은 성경을 읽어도 차변에서 대변으로 나가기 위한 행위 즉 공적의 행위로 나가기 때문에 율법을 구원의 행위로 간주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종교들이 구원을 위한 공덕을 쌓기에 급급합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구원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그들에게 율법은 심히 왜곡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애초에 율법은 유대인의 구원을 위한 수단으로 준 것이 아닙니다. 모세의 율법은 시내 산에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율법은 어떤 하자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약성경은 율법을 긍정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부정적으로 말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러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율법이 잘못되었다는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나 바울사도가 Text에서 율법을 말할 때, 오경에서 말하는 율법이 아니었습니다. 1세기경의 율법은 원 율법을 쪼개고 쪼갰습니다. 더하고 붙이고 빼어서 율법조문은 아무런 역량이 없었습니다. 예를 들면 안식일에는 병자를 더 낫지 않게 유지는 하되 낫도록 고쳐서는 안 될 정도였습니다. 안식일에 노동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탈무드를 보면 거룩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손을 씻으라고 했습니다. 손을 씻으면 거룩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안식일전에 불을 피웠다가 안식일에 이르러서는 어떤 방법으로든지 불을 끄거나 줄여서는 안 되었습니다. 이렇게 율법을 심히 왜곡했기 때문에 율법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가 팽배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떨어지지 아니하고 반드시 다 이루어진다고 하셨습니다. 율법의 일점일획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히브리어는 점과 획으로 글자가 형성됩니다. 그 중에서 ‘일점’의 ‘점’은 ijw'ta/iȏta/이오타입니다. iȏta는 히브리어 알파벳에서 가장 작은 문자인 요드(')입니다. ‘일획’의 ‘획’은 keraiva/keraîa/케라이아입니다. 이것은 작은 뿔이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어 알파벳 b/베이트와 k/를 구분 짓는 것은 ‘베이트’ 오른쪽 밑의 작은 돌출부입니다. 이것이 ‘베이트’와 ‘카프’를 구분 짓습니다. 즉 작은 것 하나라도 하나님의 율법은 모두 이루신다는 말씀입니다. 1세기나 2세기의 심히 변조된 율법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원 율법입니다. 소위 예루살렘의 종교지도자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율법을 폐하시는 것 같이 보였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그들의 잘못된 유전, 그러나 그들의 조상들이 변조한 율법을 지키시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폐하러 오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완전무결함을 재 확증하신 것입니다. 성취되는 말씀은 구약성경의 지극히 작은 부분이라 하더라도 결코 성취되지 않고 넘어가는 법이 없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모든 예표(豫表)들은 원형(原型)으로 대치될 것입니다. 모든 예언들이 모두 실현될 것입니다. 율법의 요구가 완전히 이루어질 것입니다. 성육신과 같은 부분들과, 부활, 승천, 오순절의 사건 등이 모두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오순절이후의 일들은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이루질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바울사도의 논지는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다는 것입니다(3:20). 그리고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다는 것입니다(3:21). 그 결과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가치를 박탈하고, 율법을 폐하느냐? 절대로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인하여 구원을 얻는 교리와 하나님의 율법은 유효하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율법을 통하여 죄를 의식하고, 이 의식이 성령을 통하여 거룩하여질 때 바로 이 의식은 도움과 구원을 간구하는 원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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