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수가 본 바울과 실라(사도행전16:25-34)
27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줄 생각하고 검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28 바울이 크게 소리질러 가로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29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부복하고
간수가 자다가 깨었습니다. 그런데 감옥문이 열려 있었습니다. 틀림없이 죄수들이 도망갔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간수는 칼을 빼었습니다. 그리고 자결하려 했습니다. 지금도 교도소에서 죄수들이 달아나면 간수들이 책임을 집니다. 해임을 당하든지, 파면을 당하든지 합니다. 따라서 2000년 전에 로마법은 더 엄했습니다. 12:19을 보면 베드로가 성령의 은혜로 감옥을 탈출했을 때 헤롯이 간수를 심문하고 죽였습니다. 따라서 엄하게 지키라고 했기 때문에 그 도는 더했습니다. 할 수 없이 자결을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Matthew Henry는 간수가 생각한 처참한 죽음과 대단히 굴욕적인 죽음을 미리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간수의 책임은 죄수를 도망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감옥문이 열려 있었습니다. 100% 감옥문이 열려 있다는 것은 탈옥을 했다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안에 죄수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자결을 택한 것입니다. 곧 이어 행정장관의 추궁이 있을 것이고, 그 다음은 뻔했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철학자들도 자살을 인정했습니다. seneca도 자살은 절망에 빠진 사람들이 의지할 수 있는 마지막치료라고 말했습니다. 따라서 간수는 자결을 하면 모든 것이 끝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바울이 그의 행위를 제지했습니다. ‘네 몸을 상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간수가 자결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죄수들이 하나도 도망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감옥 안이 너무나 어두웠기 때문에 확인할 수 없어서 자결하려고 했지만,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간수를 살리는 소리였습니다. 간수의 입장에서 감옥문이 열리고 착고가 풀어졌는데도 죄수들이 도망하지 않은 이상한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물론 성령의 역사였습니다. 다른 죄수들도 바울과 실라의 기도로 감옥문이 열리고 착고가 풀어졌으나 바울과 실라가 움직이지 않으면 그들 역시 움직이지 않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어떤 힘에 압도를 당한 것입니다. 간수는 같은 동료들에게 등불을 달라고 해서 뛰어 들어갔습니다. 바울과 실라 앞에 두려워 떨면서 엎드렸습니다.
성도들과 일반 사람들이 다른 점은 무엇입니까? 일반인들은 교회를 가지 않고 우리들은 교회에 가는 것입니까? 교회를 가고 안 가고의 차이는 별로 차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보이지 않는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시민권이 하늘에 있기 때문에 이 세상을 초월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세상 사람들보다 더 이 세상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2000년 전과 현대사이의 아이러니한 교회의 현주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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