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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의 공격(사도행전17:10-15)

복음이 가는 곳에는 항상 사탄도 같이 행동합니다. 비시디아 안디옥과 이고니온 유대인들이 루스드라까지 와서 소란을 피웠습니다. 지금은 사도들이 베뢰아에 있다는 소문을 들은 데살로니가의 유대인들은 사람을 보내어서 베뢰아에서도 소동을 일으켰습니다. 이들은 복음을 아주 싫어했습니다. 그들의 땅에 왕이신 하나님이 임재 하셨지만, 성경에 무지한 그들은 알아보지 못하고 주님을 배척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복음이 가는 곳마다 덫을 놓고자 했고, 소동을 일으키며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신봉하던 유대교는 바벨론 포로로부터였습니다. 유대교는 70년까지만 하더라도 구약의 사상들을 수정하거나 확장시켰습니다. 70년에 있었던 예루살렘성전 파괴 이후에 유대교의 존재가 확실해졌습니다. Roman Catholic과 마찬가지로 500년경부터 발전된 체계를 드러냈습니다. 사실 주전 7세기에 시행된 요시야의 종교개혁에 비추어보면 합법적인 희생제사는 예루살렘 성전에서만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성전예배에 참석할 수 없었던 사람들은 다른 예배중심지를 찾아야 했습니다. 포로기간에 성전이 제거됨에 따라 구약 종교를 유대교로 수정하는 일이 불가피해졌습니다. 이로써 모세가 받은 율법이 삶의 규칙을 제시하는 핵심적인 규범이 되었습니다. 에스라의 정책도 주로 이러한 맥락이었습니다. 하지만 주전 2세기경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들은 헬라적 사고방식에 동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예루살렘 제사장들도 헬라화 되었습니다. 이러다보니 성전예배는 기쁨의 예배가 아니라 의무화로 되었습니다. 지극히 형식적이었습니다. 그런 때에 바리새인들은 회당을,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오경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방편으로 격상시켰습니다. 예수님 당시 예루살렘에만 하더라도 수백 개의 회당들이 있었습니다. 회당중심은 70년에 성전이 파괴된 이후의 상황에 급속히 적응해 갈 수 있었습니다. 90년경에 유대의 다른 종교단체들은 파괴당해서 무력화되었습니다. 200년경에는 유대인으로 남기를 고집하는 자들이 엄격한 바리새적 요구에 따라야 했습니다. 유대랍비는 율법에 관한 지식을 체계적으로 습득한 사람에게 부여되는 칭호였습니다. 바리새인들에게는 율법이 하나님의 뜻을 완전하고도 최종적으로 계시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선지서들을 율법에 대한 주해로 생각하였습니다. 오직 율법을 준수함으로써 이스라엘은 그 존재의의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창세기로부터 신명기에 이르는 모세오경은 성문화된 율법일 뿐이며, 율법의 원칙들을 매일의 삶에 적용하기 위한 필요에 따라 구두율법을 발전시켰습니다. 성문율법에는 적극적인 명령 248개와 소극적인 명령 365개 등 모두 613 개의 계명이 있었습니다. 이 계명들을 일일이 준수하는 것이 바로 기본적인 계명들을 준수하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이러한 여러 계명들은 탈무드에 명확히 수록되어 있습니다. 율법주의를 추구하는 경향은 올바른 마음가짐을 강조함으로 완화되었습니다. 유대교는 원죄에 관한 기독교 교리와는 무관했습니다. 이런 관계로 자신들의 교리와 맞지 않으면 심히 배척했습니다. 바울과 실라 등 사도들을 심히 괴롭게 한 이유도 자신들이 지상에서 가장 하나님을 잘 섬기는 사람으로 착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한 것입니다. 모르면 가만히 있어야 되는데 가만히 있지 못했습니다. 한심한 노릇입니다. 유대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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