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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당장 소스데네(사도행전18:12-17)

소스데네(Swsqevnh"/Sosthênes)는 고린도에서 그리스보의 개종 후에 그리스보의 후임이었습니다(행18:8). 회당장인 소스데네는 회당을 나오자마자 갈리오의 재판자리 앞에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맞았습니다. 갈리오는 이 일을 상관치 않았습니다. 소스데네를 때린 사람들은 유대인들이 아니었습니다. 이방인들이었습니다. 로마제국내에서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은 항상 맞서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더 잘났다. 아니다, 우리가 더 위대하다’고 하면서 늘 맞섰습니다. 헬라인들은 반유대적인 새로운 총독 갈리오가 유대사회의 지도자에게 매정한 대접을 하자 군중들이 갑자기 무고죄로 소스데네를 때린 것입니다. 갈리오는 유대인들의 종교에 대하여 로마법이 허가한 보호조치를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도 함께 누리도록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갈리오는 반유대적인 감정을 이방인들이 표출해도 못본체 한 것입니다. 로마는 초기에 기독교에 우호적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네로 때에 갑자기 반기독교적인 정책을 썼습니다. 유대인들이나 로마인들 그리고 이방인들은 항상 복음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교황권의 전성시대인 12세기 초에 프랑스 Lyons에 Peter Waldo는 1170년경에 4복음서와 성경의 일부 책들을 라틴어에서 프랑스어로 번역하고자 한 사제를 고용했습니다. Waldo는 말씀으로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오직 성경만이 믿음의 토대가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Waldo는 이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을 ‘왈도파’라 불렀습니다. 왈도파들은 행상처럼 가장하여 각 지방을 다니면서 자질구레한 장신구들을 팔았습니다. 그러나 방문히는 집집마다 반드시 “값비싼 진주"(복음)를 소개하였습니다. 그들은 남부 프랑스의 각 지역을 방문했습니다. 스위스와 이태리 북쪽에까지 침투했습니다. 그들의 복음은 대개 환대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따로 모여 예배를 드렸습니다. 각 가정들을 방문하여 말씀을 전파하였습니다. 그리고 항상 번역된 성경책들과 경건 서적들을 보급하였습니다. 처음 로마-카톨릭은 이들에 대하여 관대했으나 그 운동이 자기들에게 위협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는 왈도파의 전도를 법으로 금했습니다. 그리고 1229년에 발렌시아 회의(The Council of Valencia)에서 사제가 아닌 사람들은 라틴어로든지 각 나라 언어로든지 성경을 읽지 못하도록 금하였습니다. 성경이 금서(禁書)목록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곧 왈도파에 대한 박해가 이어졌는데, 종교재판으로 수 년 동안 수천 명을 죽였습니다. 임산부를 돌에 깔아 죽이기도 하였고, 동굴에 피신한 400여명의 사람들을 불을 질러서 죽였습니다. 이때가 교황 그레고리 9세(Gregory IX 1227-1241) 때 일입니다(Sidney M. Houghton, 1988, 108-110).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은 항상 박해를 감수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고, 사도들이 몸소 체험했으며, 초대교회 이후 모든 성도들이 그렇게 했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려면 박해를 감수할 각오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성령께서 같이 하심을 항상 인식하고 있어야 합니다. 성령께서 함께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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