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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리오 총독(사도행전18:12-17)

사람들은 기회가 오면 빨리 잡으려고 합니다. 유대인들은 눈엣가시처럼 여겼던 기독교인들을 최소한 아가야에서 몰아낼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갈리오가 아가야의 총독으로 부임했기 때문입니다.

갈리오(Gallivwn/Gallîon)는 Roma 제국의 아가야 총독이었습니다(51-52/52-53). 아가야 총독관저는 고린도에 있었습니다. 갈리오는 수사학자 안네우스 세네카의 아들이며, 철학자 세네카의 형제였습니다. 갈리오는 스페인 코르도바에서 마르쿠스 안네우스 노바투스(Marcus Annaeus Novatus)라는 이름으로 태어났습니다. 갈리오는 수사학자 루시어스 주니어스 갈리오(Lucius Junius Gallio)의 양자가 되었습니다. 갈리오는 양부에게서 행정과 정치교육을 받았습니다. 갈리오는 매우 상냥하고 청렴결백하였습니다. 세네카는 그의 논문 “de vita Beata”를 그에게 헌정하였고, Naturales Quaetiones의 서문에서 그를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는 사람이라고 묘사했습니다. Delphi의 비문은 그가 로마 황제 글라우디우스로부터 26번째 대 갈채를 받은 후에 아가야 지방의 지방총독이 되었다고 기록되었습니다. 그의 재직 기간은 51-52년 혹은 52-53년이었습니다. Pliny에 의하면 아가야의 기후가 갈리오를 병들게 했다고 했습니다. 그는 재직 기간이 끝난 후 폐출혈에서 회복되기 위해 이집트로 갔습니다. 후에 로마로 돌아와 네로 통치 초기에 원로원 의원(consul suffectus)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세네카와 함께 네로를 타도하려는 음모에 연루되었고 일시적으로 용서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네로의 명령으로 자살을 강요받았습니다.

기독교 밖에서 더러 좋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갈리오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갈리오의 바울사도에 대한 결과는 갈리오가 로마의 총독이었기 때문에 아가야 지방에서만 효력이 발생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지방의 총독들에게 판례가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아가야총독이 바울사도에게 불리한 판례를 남겼더라면 다른 지방에서도 계속 바울사도에게 불리한 재판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갈리오는 그런 선례를 차단했습니다. 유대인들의 문제는 너희들의 문제이지, 내가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갈리오의 이러한 행보가 기독교진행과정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복음전하는 사람들 즉 성도들은 직장에서나 사회에서 색안경을 끼고 봅니다. 유독 성도들을 세상은 독불장군이라고 합니다. 저희들만 옳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모든 종교들은 서로를 인정하고 소위 말해서 화합하려고 하는데 기독교도들은 반대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기독교는 프로테스탄트를 표방합니다. 이래서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허사를 경영합니다. 아마도 초대교회부터 성도들이 기존의 종교들을 인정하고 그들과 같이 가려고 했다면, 박해는 없었을 것입니다. 성도들이 순교할 필요는 없었을 것입니다. 성도들이 굳이 어려움과 고통을 당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했더라면, 성경을 많이 훼손했을 것이고, 진리가 많이 훼손되어 명맥도 유지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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