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에서의 소동(사도행전19:23-41)
에베소에서 바울은 2년6개월 동안을 체류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여러 곳에 복음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기적이 나타났고, 사람들이 두려워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믿었습니다. 우상을 섬겼던 사람들이 돌아왔고, 마술하던 사람들이 마술서를 불태웠습니다. 복음이 잘 전도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에베소에서 복음으로 인한 큰 소동이 있었습니다. 문제는 데메드리오라는 사람이 일으켰습니다. 데메드리오는 에베소의 보석세공인이었습니다. 데메드리오는 은으로 아데미상을 만드는가 하면 아데미 신전도 축소해서 만들었습니다. 데메드리오의 이 사업은 돈이 되는 사업이었습니다. 24절과 25절을 보면
즉 데메드리오라 하는 어떤 은장색이 아데미의 은감실을 만들어 직공들로 적지 않은 벌이를 하게 하더니 그가 그 직공들과 이러한 영업하는 자들을 모아 이르되 여러분도 알거니와 우리의 유족한 생활이 이 업에 있는데
그런데 바울이 전한 복음이 문제라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이 가져온 복음으로 인해서 아데미 신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길이 막혀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같은 업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을 모아서 소요를 일으켰습니다. 그대로 있다가는 자신들의 영업이 천하여질 위기에 처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데메드리오는 소요를 일으키기로 작정했습니다.
#Artemi"/rtemis/Diana/아데미는 Greece의 여신입니다. 고전신화의 로마의 여신 다이아나와 동일시입니다. 아데미는 헬라 세계에서 보편적으로 숭배했던 여신이었으나 헬라문화가 퍼지기 이전부터 아시아 사람들이 숭배했습니다. 에베소의 아데미는 동양적인 풍요를 주장하는 여신으로 숭배되었습니다. 아데미라는 이름은 원시 Greece어이며, 어원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아데미 여신의 기능은 경작되지 않는 땅과 산림지역 및 언덕지대를 주장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데미는 처음 그리스 문화에서 야생동물의 여왕이요 보호자로 나옵니다. 그리스 의식에서 그녀는 제우스의 딸이며 아폴로의 쌍둥이 자매로 경배를 받았습니다. 그녀를 낳을 때 겪었던 그녀의 어머니의 고통에 대한 공포로 그녀는 결혼을 싫어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달과 사냥의 여신이며 개들이 시중들고 있는 여자 사냥꾼으로 묘사됩니다. 시인 호머는 아데미 여신에게 ‘사나운 것들의 여자’라는 명칭을 부여했는데 활과 화살을 갖추어 무장한 여자(처녀) 사냥꾼이라는 의미입니다.
에베소에 있는 아데미의 신전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입니다. 여기에서 처녀 여신에게 행하는 예배는 소아시아의 모-여신의 다산 제의와 혼돈되어 있습니다. 신전은 부피가 큰 100개의 기둥으로 지지되었는데 그 중 몇 개는 조각되어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그녀의 상이 하늘로부터 거기에 떨어졌다고 하는데(행19:35), 이것은 별똥별의 한 돌입니다. 플리니(Pliny)는 출입구 위에 있는 큰 돌에 대하여 다이아나 자신이 거기에 옮겨 놓았다고 말합니다. 그녀에 대한 숭배의식은 메가비조이(megabyzoi)라고 불리는 거세된 제사장들이 집행했습니다. 소아시아 지방의 女兵들인 여장부들이 에베소의 아데미 제사 의식을 창시한 것으로 전하여 오며, 아데미 신전에서 섬기던 여자들은 소아시아의 여걸과 여신 아데미의 형태를 따라 한쪽 가슴을 완전히 드러낸 채 짧은 스커트를 입고 있었습니다. 주화나 남아 있는 아데미 신상들은 에베소의 아데미가 가슴을 많이 노출한 모습인 것으로 그려 놓은 것 같으나 다수의 돌출한 부분들은 풍요의 상징들로서 포도나무 가지나 또는 무화과나무 가지를 양식화시켜 표현하였습니다. 에베소의 아데미 신전은 아주 매력적인 관광 명소로서의 성격을 띠게 되어 에베소 성의 상업적 교역 활동이 쇠퇴하던 시대 때에는 경제적인 자산적 수입원이 되었었습니다.
사도행전19:23-20:1의 에베소의 은장색들은 이 아데미 신전의 모형을 만들어 관광객들과 순례자들에게 팔아서 재미를 보고 있었습니다.
데메드리오의 선동이 그들에게 먹혀들어갔습니다. 그들은 있는 성질을 모두 부렸습니다. 그리고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라고 외쳤습니다. 이로 인해서 온성이 소란해졌습니다. 그리고 바울사도와 같이 다니던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붙들고 일제히 연극장으로 달려 들어갔습니다.
복음은 이토록 어디서나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왜 부딪힙니까? 복음은 다른 종교들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다른 종교들은 구원이 없습니다. 그래서 되도록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합니다.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지지를 받고 싶어서 화합을 부르짖습니다. 도덕과 윤리와 행함에 치중합니다. 그래도 구원은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이 세상에 있을 때 뿐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연합해서 복음을 핍박하고 교회를 공격합니다.
'사도행전 새벽강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대인/유대그리스도인 (0) | 2015.12.26 |
---|---|
데메드리오의 계획 (0) | 2015.12.24 |
바울의 로마계획 (0) | 2015.12.18 |
복음과 함께 하는 능력 (0) | 2015.12.15 |
악령들의 활동 (0) | 2015.12.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