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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도에서 바울의 설교/회개(사도행전20:17-35) 

곧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20절).

회개는 헬라말로 마음을 바꾸는 것입니다. ‘회개’metanoevw/metanoêo란 metav/metâ/‘함께’noevw/noêo/‘지각하다’의 합성어입니다. ‘메타노에오’는 ‘후에 알아차리다’입니다. ‘메타노에오’는 ‘마음(mind)을 바꾸다, 다른 견해를 채택하거나 받아들이다’입니다. 이때 마음을 바꾸는 과정에서 이전의 견해가 어리석었거나 부적당하거나 악하였다는 인정에서 마음의 변화가 일어난다면 ‘유감으로 생각하다’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고전 헬라어에서 ‘메타노에오’ 語群(어군)은 신약성경에서의 ‘회개’까지의 단계까지는 발달되지 못하였습니다. 헬라사회는 인간의 전 삶의 철저한 변화나 회심, 돌아옴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회심의 개념’은 헬라사상에서 유래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LXX에서 ‘메타노에오’는 하나님에 관해서든지(삼상15:29/렘18:8/욜2:13-15/암7:3), 인간에 관해서든지(렘8:6,13:19) 간에 히브리어 ‘나함(!j'n:/nāham)의 니팔형’을 번역하였습니다. ‘나함의 니팔형’은 ‘어떤 일에 대해 뉘우치다’라는 의미입니다. 구약의 ‘돌아옴’은 선지자들이 설교하였습니다. 히브리어 동사 ‘슈브’(bWv/shūb)이며, 헬라어로는 ‘에피스트레포’(ejpistrevfw/epistrêpho/돌이키다)로 번역되었습니다. 돌이키라는 예언적 요구에는 백성과 하나님, 그리고 개인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반드시 인격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전제를 하고 있습니다. 죄와 배교는 이러한 인격적 관계를 방해하고 파괴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돌이킴은 전인으로서의 그 인간에게 완전히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아다는 것은 것은 악을 외면한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메타노에오’는 신약성경에서 요한계시록에 12회, 공관복음에 16회, 사도행전에 5회, 그리고 바울서신에서는 1회(고린도후서)만 나옵니다. 신약성경은 LXX역본의 용법을 따르지 않았습니다(LXX은 '슈브'를 '에피스트레포'로 번역) 신약성경은 ‘돌아오다’를 의미하는 ‘슈브’의 뜻을 표현하기 위하여 메타노에오를 사용했습니다. ‘에피스트레포/돌이키다’ 대신 ‘메타노에오’를 선택한 것은 신약성경이 ‘슈브’의 구약적 용법 속에 내포되어 있는 구체적인 것입니다. ‘슈브’는 물리적 개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생각이나 사상, 의지의 개념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 것입니다. 신약성경에서는 ‘회심하다'라는 관념으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에는 ’돌아온다‘는 全人(전인)에 의한 결단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회개라는 말을 잘못 이해하면 ‘후회한다’는 것입니다. 잘못은 했지만 ‘후회한다’는 것이기에 마음을 바꾸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메타노에오’는 마음을 완전히 바꾸는 것입니다. 이전의 삶을 완전히 청산하고 새롭게 하나님을 향해서 나아가는 것이 회개(메타노에오)입니다. 단순히 잘못했다가 후회하고 다시 또 잘못을 범하는 것이 아닌 회개가 ‘메타노에오’입니다. 회개는 항상 새롭게 시작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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