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악한 이리들/영지주의(사도행전20:17-35)
내가 떠난 후에 흉악한 이리가 너희에게 들어와서 그 양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너희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좇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니(29-30절)
영지주의는 1세기에 초대교회를 집요하게 공격했던 이단들입니다. 영지주의/Gnosticism/Gnosis는 지식을 뜻하는 헬라어 gnw'si"/gnȏsis에서 파생되었습니다. 오늘날에 영지주의란 이원론과 비밀스런 지식의 소유를 강조하는 종교적인 신념을 일컫습니다. 이들은 소위 지식이 있다고 믿는 Hellenism 종교사상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영지주의에 대한 두 용어 Gnosis와 Gnosticism가 있는데, 2세기이후의 체계화된 영지주의를 말할 때는 Gnosticism, 체계화되기 이전의 시대까지 포함해서 폭넓은 범위를 말할때는 Gnosis를 사용하였습니다.
이들의 기본신앙은 피조세계는 악하며, 그 어떤 것도 비교할 수 없는 광채 가운데 물질세계와는 관계없이 거하시는 지존하신 하나님이 계신 영적세계와 피조세계는 완전히 분리되며 배치된다는 것이 영지주의 신앙의 기초입니다. 물질 세계는 하나님보다 열등한 존재인 데미우르고스(Dermiurgos)에 의해 만들어지며, 그는 부관 아르곤(Archons)과 더불어 인류를 육체에 감금시켰다고 합니다. 만일 신적섬광과 영혼을 소유한 사람들이 그노시스 즉 지식의 교회를 받아들이면, 그들만이 물질적 존재의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황당한 주장을 했습니다. 대부분의 영지주의 체계에서 이런 교화는, 영적세계에서 변장하고 내려온 신적 구원자의 사역에 속하였으며 이 신적 구원자는 예수그리스도와 동일시했습니다. 영지주의자는 이런 신화론적 구조 속에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발견하려고 노력했는데, 정신의학자 구스타프 융은 이러한 요인을 인식하고 고대 영지주의에 대한 이해에 기초하여 자신의 이론을 심화시켰습니다.
영지주의는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사건을 평가절하 시켰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의 중요성을 부인했습니다. 결국 그들의 구원은 죄로부터 구출이라기보다는 자기실현에 달려 있었습니다(IVP 성경사전).
2세기 중엽은 영지주의의 시대였습니다. 135년 예루살렘의 2차함락, 193년 세베르 왕조의 즉위의 두 세대 동안에 교회는 점진적인 헬라화의 과정을 겪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나타났던 이단 가운데 하나가 영지주의였습니다. 130년에서 180년 사이에 주로 Alexandria에서 활동하고 있던 교사들이 기독교의 지적생활을 지배하면서 그들의 영향력은 이탈리아, 로마, 소아시아, 심지어 론 벨리(Rhone Valley)에 있는 기독교인들에게까지 확장되었습니다. 그들은 실재에 대한 이원론적 해석과 금욕주의적 윤리, 그리스도에 대한 색다른 이해, 죽음의 망각으로부터 구원해주는 능력으로서 지식의 강조 등을 그 특징으로 했기 때문에 초대교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Harnack은 성경이 영지주의 영향을 받아 “예수의 참된 가르침”과 헬라주의화 된 영지주의 사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성경에서 예수의 가르침을 찾기 위해 신학의 비신화화가 있어야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영지주의가 2세기 동안 만만찮은 세력을 형성하였던 것은 기독교가 그 영향력을 증대시켜 나가면서 영지주의에 대한 헬라 지식인들의 관심이 점증했기 때문입니다. 구원에 관한 문제, 그리스도-구세주에 관한 문제, 우주의 기원과 발달에 관한 문제 등은 그들이 해명하고자 하였던 중요한 주제였습니다. 신약성경에는 영지주의적 특징을 반영하는 성경 귀절들이 여러 곳 나타납니다(골2:22-23). 영지주의 사상이 교회 안에 강하게 일면서 건전한 기독교를 위협하기 시작한 것은 2세기 초지만 이미 1세기 초부터 영지주의 경향들은 교회 내에 존재했습니다. 초대교회 지도자들은 마술사 시몬을 모든 이단의 원천으로 보았습니다. 1세기 말경 시리아의 안디옥에서 가르쳤던 메난더는 시몬의 추종자였습니다. 또한 Saturninus, Cerinthus, Basilides, Valeentinus 등입니다(초대교회사/박용규).
영지주의(Gnostics)는 초기 기독교시대의 다양한 종교적 운동을 추종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 운동은 사람이 신비한 지식(gnw'si"/gnȏsis)을 통해서 구원받을 수 있음을 강조하였습니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2세기의 기독교 저작들에서 영지주의적인 다양한 저작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성경과 기독교를 심하게 왜곡했습니다. 노스틱 사상에는 철저한 이원론이 존재합니다. 그들은 무지한 조물주(종종 이 표현은 구약의 하나님에 대한 풍자)위에 초월적인 하나님을 설정했습니다. 어떤 노스틱스트들은 창조된 세계가 소피아 즉 “지혜”의 타락의 결과라고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영지주의자들은 물질적 창조를 악한 것으로 간주하였습니다. 그러나 神性(신성)의 광채들이 구원받기로 예정된 어떤 “영적인” 개인들의 몸 안에 주입되었다고 했습니다. 이 “영적인” 자들은 자신의 천적기원(天的起源)을 알지 뭇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한 구속자를 보내 주셨다고 했습니다. 그 구속자는 그들에게 그들 자신과 그들의 기원과 운명에 대한 비밀한 지식의 형태로 구원을 가져다준다고 가르쳤습니다. 이와 같이 영적인 잠에서 깨어나 “영적인 자들”은 죽음에서 그들의 육체의 감옥으로부터 탈출하여 악마가 지배하는 이 세상의 영역을 안전하게 통과함으로써 하나님과 재결합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구원이 오로지 개인의 “영적인” 본질에 대한 지식에 의존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어떤 영지주의자들은 극도로 방탕했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외부의 진흙에 의해 더러워질 수 없는 “진주들”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어떤 행동을 해도 전혀 더러워질 수 없는 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카르포크라테스(Carpocrates)는 그의 추종자들이 죄를 짓도록 강요했습니다. 또한 그의 아들 에피파네스(Epiphanes)는 난잡한 성관계가 신의 율법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가인파(Cainites)는 사악하게 가인과 구약의 악한들을 숭배했습니다. 오피트파(Ophites)는 아담과 하와에게 “지식”을 가져다 준 뱀을 숭배했습니다. 그러나 대개의 노스틱파는 성과 결혼에 대해 극단적으로 금욕주의적 태도를 취했습니다. 인간은 본래 단성이며 여자를 창조한 것은 악의 원천이고, 자녀출산은 단순히 어둠의 세력에 속박당하는 영혼들을 증가시켰다고 생각했습니다.
영지주의는 고대 세계에서 특히 기독교의 주변에서 큰 성공을 누렸습니다. 그것은 세계의 악과 혼란을 설명해 주었고 인간이 그의 영적본향으로 돌아가는 도피의 길을 제시하였기 때문입니다(교회사핸드북/생명의말씀사).
19세기까지 노스틱파에 대한 교회의 지식은 이레니우스, 히폴리투스, 오리겐, 터툴리안 그리고 에피파니우스(Epiphanius) 같은 그리스도인들의 저작에 전적으로 의존했습니다. 그 가운데 어떤 저작은 노스틱파의 문서로부터 발췌한 인용문들을 보존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기록의 대부분은 반대를 위한 논증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학자들은 이 기록이 어느 정도 정확한 것인지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했습니다. 나그 하마디 본문(Nag Hammadi texts) 같은 최근의 발견은 그 기록 가운데 일부를 확인해 주었습니다.
영지주의자들은 사람들의 몸의 부활을 부인합니다(고전 15:35).죽은 자들의 부활을 부인합니다(고전15:12). 영지주의는 이원론자들로서 자유를 남용합니다(고전6:12-18). 그들은 지식이 있다하나 거짓되이 일컫는 지식을 가졌습니다(딤전6:20). 신화와 족보에 착념했습니다(딤전1:4). 이들은 부활을 영적으로 해석했습니다(딤후2:18). 극단적인 금욕주의자들이었습니다(딤전4:3). 그러면서도 성적으로 방종했습니다(딤후3:6). 가현적이며 환상적인 그리스도를 말했습니다(요일4:1-3).
성경은 2세기 이후의 체계화된 영지주의를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영지주의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사상들은 있었습니다. 바울은 영지적 색채를 띈 자들을 거짓 교사라고 하여 그들을 논박했습니다. 영지주의는 구원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서 또는 구원자체의 형태로서 지식에 대한 강조와 이 지식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이 공통된 특질입니다. 영지주의 연구의 대표 학자인 Hans Jonas는 영지주의를 “반세상적 종말론적 이원론”(Anti-cosmic and eschatdlogical dualism)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영지주의는 혼합주의이고 이원론이고 신비적 경향을 띄고 있는 종교사상입니다.
영지주의의 신관 영지주의적 사상은 철저한 이원론이기 때문에 신과 세계의 관계, 또는 인간과 세계의 관계가 모두 이원론의 지배하에 있었습니다. 신은 빛과 참의 세계에서 자기충족 상태에 있고 이 세상은 신과는 멀리 떨어져 대립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은 저속한 통치자들이 판을 치는 곳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권력자들도 본래는 신의 세계에서 보냄을 받았으나 이제는 참 하나님을 모르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세상을 통치하는 권세욕에 눈이 어두워서 참 신을 알 수 없고, 더욱 신의 백성의 눈을 가로막고 서서 방해하는 방해물 노릇만 한다고 했습니다. 이들 저속한 통치자들과 세상을 포함한 하나님 이외의 모든 존재질서의 기원은 영지적 사변의 주요주제입니다. 초월한 하나님 자신은 모든 피조물로 부터 감추어져 있고 자연적 개념에 의해서는 알 수 없습니다. 그에 대한 지식은 초자연적 계시나 조명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우주관/ 통치자들의 영역인 우주는 광대한 감옥과 같은 곳이고, 지구는 그 가운데 가장 깊숙한 토굴 감옥이며, 이곳이 바로 인생살이의 현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우주는 마치 한 기점인 지구를 중심으로 해서 위로 뻗어나간 소라껍질과 같은데, 고정된 7개의 별이 지구를 둘러싸고 7층천을 이루고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이런 우주적 구조의 종교적 의미는 이 세상과 초월계 사이의 모든 것이 인간과 하나님을 분리시키려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7층천을 다스리고 있는 7통치자는 바벨론의 범신론에서 빌려온 7신입니다. 이 통치자들의 이름이 구약성서에서는 유일하신 하나님의 여러 가지 칭호(Iao, Sabaoth, Adonnai, Elohim, El Shaddai)로 사용되는데 이 이름들이 열등한 악마적 존재들에 대한 이름으로 바꾸어졌다는 것은 영지주의가 일반적으로 고대의 전승, 특히 유대전승에 의거하여 구약의 하나님을 경멸한 것입니다. 창조된 이 세계는 영지주의자에게는 하나의 감옥이었습니다. 그들은 극단적으로 생각한 나머지 그 자신의 감각기능들의 움직임과 충동. 욕정과 의욕들은 인간을 세계에 예속시키기 때문에 적대적인 것으로 간주했습니다.
인간관/ 인간은 감각적 정열에 의해 지배되는 육체와 정신적 기능의 중심부인 혼, 그리고 프뉴마로 구성했습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이 세상과 초월계라고 하는 두개의 영역에 관계된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인간은 그 육체와 혼 때문에 이 세상에 속했고 그래서 이 세상의 저속한 통치자에게 굴복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어떤 것에도 예속되지 않은 것이 있는데 그것은 프뉴마(영, 혹은 섬광이라고도 불림)입니다. 프뉴마는 그보다 낮은 차원의 혼과 육신 안에 갇혀있습니다. 조물주가 혼과 육의 인간을 만든 까닭은 프뉴마를 감금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감금에서 깨어나 자유하게 되는 것은 영지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인간 자신의 힘으로는 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늘에서 온 신의 세계의 사자(구세주, 구속자)만이 이 속박의 굴레를 풀어 놓을 수 있었습니다. 영지를 통해서 영지주의자의 내부에 있는 영적불꽃이 점화되고 내적 영이 해방되며 인간은 자신의 참된 본질을 깨닫게 된다고 했습니다.
구원관/ 영지주의자들의 구원관은 철저한 이원론적 성격을 띄고 있었습니다. 인간이 영지에 이르려고 하는 목적은 이 세상의 속박에서 내적인간을 해방시켜서 빛과 참과 생명의 세계로 돌아가게 한다고 했습니다. 모든 악은 멸망으로 운명져 있는 세계 혹은 역사로 부터 나온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역사와 세계를 탈출할 때만이 인간을 위한 구원이 있다고 했습니다. 여기에 대한 필수조건은 세상을 초월해 있는 하나님과 자기 자신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곧 자신의 신적기원과 현재의 비참한 상태를 알고 또 이 세상의 본성이 인간상황을 이렇게 만들었다는 것을 아는 것(gnosis)입니다.
윤리관/ 교회를 괴롭혔던 영지주의자들은 스스로 영적지식(gnosis)을 가진 ‘영적인 사람들’(pneumutics)이라고 해서 그들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구별했습니다. 그들은 지식에 있어서도 월등하고 행위에 있어서도 자유권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들 원리에서 두개의 극단적인 윤리사상이 대두되었는데 그중 하나가 금욕주의파요, 다른 하나가 방탕스런 자유주의파입니다. 전자는 자기들이 영적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 나머지, 그 이상 더 더러운 세상에 물들지 않기 위하여 온갖 세상의 의무를 피하는 태도를 취하며 가능한한 세상과 접촉을 피했습니다. 또한 자유주의파는 영적지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절대적인 자유를 향유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특히 자유주의가 금욕주의보다 월씬 우세하게 나타났는데 이들은 특히 제멋대로 행동한다고 해서 거룩한 본성이 더럽혀 질 수도 없고, 또 저속한 통치자들의 보복을 두려워 할 이유가 없다고 보았습니다. 영적인 사람은 적극적인 자유행동을 해야 하는데 이는 조물주의 법도를 고의적으로 범함으로써 저속한 통치자들의 계획을 훼방 놀아서 뒤집어 놓을 수도 있고 그 결과로 역설적이긴 하지만 구원사업에 공헌하게 된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갈수록 이단들은 극성을 부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따르고 있습니다. 이들이 교회를 잠식하려하고 성도들을 미혹해서 멸망의 길로 끌고 가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거기에 빠져드는 영혼 참으로 불쌍합니다. 그러나 사람을 미혹하는 자들은 악하고 또 악하며 그리고 또 악합니다. 이들은 교회를 파괴하고, 사회를 파괴하며 가정을 파괴하는 흉악한 이리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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