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에도 불구하고/요한 후스(사도행전21:7-14)
역사는 항상 정의와 싸워왔습니다. 역사는 정의와의 싸움입니다. 그런데도 정의는 실제로 대접을 받지 못합니다. 만일에 정의대로 사람들이 산다면 국가와 사회가 이렇게까지 추락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같은 법을 가지고 어떤 사람들은 10년징역형을 받고 교도소에 갑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그보다 더한 범법을 저지르고도 법무장관을 하며, 대법원장을 하고, 대법관을 하겠다고 하는 모습을 보면 참 아이러니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정의가 죽고, 불의가 살면 역사는 후퇴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정의를 지켜야 합니다.
요한 후스(John Hus/1374-1415)는 체코에서 순교를 당했습니다. 위클리프는 영국에서 왈도파는 프랑스에서 순교를 당했습니다. Hus는 1401년 사제로 임명되었습니다. 프라하의 찰스 대학에서 가르치고, 찰스대학 가까이에 있는 베들레헴 예배당에서 설교했습니다. Hus는 저술과 설교에서 삶의 개인적 경건과 순결을 강조했습니다. Hus가 이렇게 한 이유는 위클리프의 사상을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Hus는 교회내의 권위로서 교황이 아니라 성경을 강조하였습니다. 설교를 교회 예배에서 중요한 위치로 끌어올렸습니다. Hus의 주저 교회론(On the Church)에서 그리스도를 유일한 머리로 한,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교회를 정의하였습니다. 그는 성직자의 전통적 권위를 옹호하였지만, 오직 하나님만이 죄 사함을 줄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Hus는 어떤 교황이나 추기경도 성경에 어긋나는 교리를 만들 수 없으며, 어떤 그리스도인도 잘못된 자들의 명령에 복종해서는 안 된다고 믿었습니다. 그는 성직자의 부패를 신랄하게 비난했습니다. 하였고 사람들이 彫像(조상)을 예배하고 거짓된 기적을 믿으며 “미신적 순례 여행”을 하는 것을 비평했습니다. Hus는 성찬식에서 잔을 평신도에게 허락하지 않는 교회를 비판하였습니다. 면죄부 판매를 비난하였습니다.
이에 프라그의 대주교는 Hus의 입장을 강력하게 반대했습니다. 위클리프의 저서도 그는 배격했습니다. 프라그의 대주교는 이들의 책들을 스스로 모아다가 같이 참석한 사제들이 부르는 Te Deum(하나님이여 당신을 찬양하나이다)의 찬송가가 울려 퍼질 때 자신의 마당에서 책들을 불에 태웠습니다. 미친 개 같은 짓을 한 것입니다.
사실 중세시대의 Roman-Catholic은 교회가 아니고 교회를 빙자한 거대한 세력이었습니다. 그들을 건드리는 것은 곧 죽음이었습니다. Hus는 프라하에서 오랜 악전고투 가운데 있었습니다. Roman-Catholic이 Hus를 가만둘 리 없었습니다. 곧 그의 문제는 로마에 회부되었습니다. 1415년에 후스는 그의 신앙을 변호하기 위해 콘스탄스 공의회(Council of Constance)에 참석하였습니다. Hus는 황제의 안전 통행증을 가지고 여행하였습니다. 그러나 Hus는 그의 견해를 설명할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한 불법재판을 받고 화형선고를 받았습니다. Hus가 말하려고 하면 사방에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Hus의 말이 들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일방적인 재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죽음으로 인해서 체코인의 민족감정이 일어났습니다. 체코인은 합스부르크(Hapsburg)家가 1620년 정복하여 Roman-Catholic교회를 회복할 때까지 보헤미아에 Hus파 교회를 세웠습니다. Hus의 개혁은 독일의 지배에 대한 체고인의 저항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습니다.
많은 Hus주의자들이 그들의 믿음을 지켰습니다. 그들은 다볼파(Taborites)라고 불리다가 보헤미아 형제단, 모리비안 형제단(the Moravian Brethren)으로 알려졌습니다. Hus는 순교를 당했지만, 그의 사상과 신앙은 오늘의 바른 교회에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순교자들에게 빚을 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출처: 기독교회사,중세교회사,교회사핸드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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