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berius와 유대인(사도행전25:6-12)
Tiberius는 유대민족의 특수성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Syria 총독 Kurêvios를 계속 중용한 것도,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여러 가지 타협책을 취한 것도 Tiberius가 유대인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반면에 유대인을 이해했기 때문에 특수한 유대민족이 보편을 지향하는 Roma제국에 가져올 위험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여호와의 법을 따르는 유대인과 인간의 법에 따라 다스리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까? 동방에서는 연중행사처럼 일어나는 Greece 주민과 유대계 주민의 충돌이 자주 일어났습니다. 그 이유는 Greece인들은 다신교였습니다. 그래서 Greece 사람들은 Roma와 친숙할 수 있었습니다. Roma인과의 동화에 별다른 저항감을 갖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유대인들은 그러지를 못했습니다. 다신교와 일신교를 믿는 사람들이 도저히 섞일 수 없었습니다.
Tiberius에게는 Alexandria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Tiberius 당시에 Alexandria의 인구는 100만 명이었습니다. Alexandria의 주민은 5개 지구에 나누어 살고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3개 지구에는 Greece계 주민이 살고 있었고, 나머지 2개 지구에는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비율로 봐서 Alexandria에 유대인이 최소한 40만 명은 넘었을 것입니다. Antioch도 비슷할 것으로 추정합니다. 하지만 Roma에서는 14개의 행정구역 가운데 1개 지구에만 유대인 거주가 허용되었습니다. Roma에는 유대인들이 2만 명 정도였습니다. Tiberius는 Augustus가 예루살렘의 유대인에게 허용한 사법권을 동방의 여러 도시에 있는 유대인 에게 공식적으로 인정해주었습니다. 예루살렘과 같이 사형집행만은 Roma의 총독이나 장관의 허가를 받아야 하지만 동방의 유대인들은 율법에 따라 재판을 받는 것이 허용되었습니다. 또한 Tiberius는 토요일마다 안식일을 갖고 싶어 하는 유대인의 의식을 인정해주었습니다. 종교의 자유도 이주의 자유도 인정하고 유대교 특유의 관습도 인정해주었습니다.
주후19년에 유대에서 Kurêvios총독이 유연하게 진행하고 있을 때 Roma에서는 유대인들이 사회불안을 일으켰다는 이유로 Tiberius는 Roma에 사는 유대인들을 모조리 이탈리아에서 추방했습니다. Tiberius는 유대인이 많이 사는 동방에서 Caesar와 Augustus의 정책을 계승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자칫하면 격렬해지는 Greece계 주민들과 유대계 주민들에 대해서 Roma는 중재자역할을 함이었습니다. 이리하여 Roma제국의 동방은 Greece인과 유대인 없이는 존속하지 못했습니다.
Tiberius는 예루살렘과 유대를 헤롯 아그립바에게 맡길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유능하지만 책임감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유대를 시리아 총독에게 맡긴 것입니다. Tiberius는 죽을 때까지 Roma인과 유대인의 관계를 위와 같은 정책으로 일관했습니다. 유대 쪽으로 볼 때 Caesar와 Augustus, Tiberius의 때에는 그런대로 만족한 관계였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참고: 로마인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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