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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에게 없는 죄목을 어떻게 할까?(사도행전25:13-22)

!Agrivppa"/Agrîppas/아그립바는 헤롯 아그립바 2세입니다(27-100). Agrîppa 1세와 키프로스(Cypros/헤롯대왕 형제의 아들 파사엘과 헤롯대왕의 딸 살랍프시오 사이의 딸)에서 태어난 아들입니다. Agrîppa1세가 죽었을 때에 열일곱 살이었습니다. Claudius(주전10년-주후54년)는 Agrîppa2세를 그의 아버지 후계자로 삼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큰 나라를 다스리기가 불가능하다고 주변에서 권고했습니다. 따라서 Agrîppa1세가 다스리던 지역은 총독 관할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AgrîppaⅡ세의 숙부이자 매부인 갈시스의 왕 헤롯이 죽은지 2년 후, 50년에 Claudius는 AgrîppaⅡ세를 갈시스 왕으로 삼았습니다. 53년에 Claudius는 AgrîppaⅡ세에게 갈시스의 영토 대신에 빌립의 영토인 Abilene와 드라곤 지방과 Arca를 주었습니다. Nero는 54년에 황제가 된지 얼마 안 있어 Agrîppa에게 갈릴리 지방의 도시인 디베랴와 Tarichea와 그 주변의 땅과 베뢰아 지방의 도시 Julias와 아빌라와 그 주변의 땅을 주었습니다. Nero의 호의에 감사하여, Agrîppa는 수도 가이사랴 빌립보를 확장하여 그 도시를 Neronius라고 개명했습니다. Agrîppa는 추가된 여러 영주들과 아빌레네의 세 독립 영토, 베뢰아와 Arca의 영토들과 함께 빌립의 영토를 통치했습니다.

AgrîppaⅡ세의 사생활은 문란했습니다. 그의 누이 Bernice는 숙부 갈시스 왕 헤롯이 48년에 죽은 후에 아그립바와 함께 살았습니다. 그는 그녀의 두 번째 남편이 되었습니다. 근친상간(相姦)에 관한 풍문을 가라앉히기 위해 그녀는 길리기아의 Polemo와 결혼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Bernice는 얼마 있다가 아그립바에게 돌아 왔습니다. 이 근친상간은 로마의 일반적인 화제였습니다.

66년 5월에 팔레스틴에서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Agrîppa는 폭동을 진압하지 못했습니다. 66-70년의 유대전쟁에서 그는 주저하지 않고 Roma를 지지하였습니다. 68년 6월 9일 Nero가 자살한 후 Vespasian은 Agrîppa를 동반시켜 그의 아들 Titus를 로마로 보내어 신임 황제 Galba에게 경의를 표하고자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Roma에 도착하기 전에 Galba가 암살(69.1.15일) 당했습니다는 소식을 들었으며, Titus는 팔레스틴으로 돌아갔지만 Agrîppa는 Roma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Vespasian이 애굽 군단과 수리아 군단에 의해 69년 7월1일에 황제로 추대된 후에 Agrîppa는 새 황제에게 충성을 맹세하기 위해 팔레스틴으로 돌아갔습니다. Agrîppa는 팔레스틴에서 전쟁수행을 하고 있던 티투스의 편이 되었습니다. 70년 8월 5일 예루살렘 함락 후 Agrîppa는 자기 백성을 멸망시킨 Roma의 개선식에 참석했던 사람입니다. 이에 Vespasian은 아그립바가 전에 다스린 나라의 소유권을 승인하고 등록되어 있지 않은 새로운 영토까지 추가로 주었습니다. 75년에 그와 그의 누이 Bernice는 Roma에 갔습니다. 그 곳에서 Bernice는 팔레스틴에서 했던 것과 같이 Titus의 情婦가 되었습니다.

Agrîppa의 종교에 관여한 것을 보면, 그는 그의 숙부 갈시스의 왕 헤롯처럼, 성전의 금고와 대제사장의 제복(祭服)을 관리하였고 대제사장의 임명권을 갖고 있었습니다. 로마인들은 종교문제에 관하여 Agrîppa와 상의하였습니다.

Roma의 행정관들은 황제에게 호소하는 죄수를 로마로 보낼 때는 그의 죄목을 기록한 서류를 함께 보내야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에게서 뚜렷한 범죄사실을 찾지 못했습니다. 피고가 죄가 없어서 황제에게 어떤 사실을 기록해서 보낼지 난감했습니다. 그래서 베스도는 유대의 풍습이나 전통에 지식을 가지고 있는 아그립바와 논의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논의한들 어떤 죄들을 찾지 못했습니다. 아그립바는 베스도의 말에 바울의 말을 듣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바울의 의도를 전혀 몰랐습니다. 황제에게 호소하는 진짜 이유를 몰랐습니다. 명분은 황제에게 호소한 죄수였습니다. 그러나 실은 복음의 도를 전하기 위함을 알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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