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유라굴로(사도행전27:14)
얼마 못되어 섬 가운데로서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대작하니
‘얼마 못되어’ met j ouj polu;/‘길지 않은 후에’ 섬 가운데서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일어났습니다. 순한 남풍이 부는 듯 하더니 갑자기 맹렬한 북동풍의 태풍이 몰아쳤습니다. 격렬한 북동풍이 발생해서 Ida산을 타고 내려와 그들에게 돌진한 것입니다. 이유는 반대방향의 두 기류가 맞부딪혀서 구름과 바다가 소용돌이치게 된 태풍이었습니다.
창세기4:26을 보면 “…그 때에 비로소 사람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고 했습니다. 아담-셋-에노스로 이어지는 인간의 족보에서 에노스를 낳고서 사람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 것입니까? 셋 시대에 하나님의 자기 계시로 인해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담의 최초의 죄로 인해서 세상이 점점 어두워지고 인간도 점점 무능해지고, 무력해지며, 연약함을 인정했습니다. 그래서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 나아가 언약을 맺고 성취하시는 여호와께 기도하고 찬양하는 공동예배를 드렸습니다. 인간은 한없이 나약하기 때문입니다.
현 세대의 인생은 길어야 100년입니다. 그 안에 모두 유명을 달리합니다. 그것이 인생의 항해입니다. “인생의 항해”란 출생으로부터 무덤에 이르기까지 세상을 통과하는 생애입니다. 이 항구에서 저 항구로 항해하는 것 같이 고통의 항해와 슬픔의 항해와 기쁨의 항해가 있을 뿐 영구적인 항해는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 인생의 삽화적인 사건들 때문에 방향을 전환하는 경우들이 너무도 흔합니다. 우리 인생에서 절대로 변하지 않아야 할 사항도 일시적인 환경과 변하는상황과 당일의 사정이 우리의 시계(視界)를 제한하여 우리로 하여금 정화한 것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궁극적으로는 ‘유라굴로’라는 태풍을 만나게 되는데 순한 남풍의 삽화적인 것 때문에 얼마나 잘못된 시계(視界) 내지 결정을 하는가? 따라서 우리는 오직 한 길만 응시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쾌청할 때나 폭풍 등 외적환경의 온갖 변화 속에서도 오직 그리스도만을 바라보고 가야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지하고 있어야 할 것은 사람마다 비전이 있고 확정된 계획이 있을지라도 즉 인생의 목적과 지혜와 재능과 결의가 있다고 하지만, 그것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불가피한 방해물들과 장애물들도 있습니다. 계획을 변화시키고 기회를 놓치게 하며, 온갖 흥망성쇠와 절망적인 일들, 장애물들과 불안하게 하는 일들이 불청객처럼 찾아옵니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으로 대비해야 합니다. 아무것도 우리의 믿음을 흔들리지 않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말씀을 믿고, 그의 뜻대로 움직여야 합니다. 모든 것들을 실제적으로 하나님께 맡겨야 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입니다. 실제적으로 우리가 살아보니 우리의 계획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지난날의 항해를 뒤돌아보고 하나님의 은혜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바람직한 것입니다. 우리의 일을 정확히 아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에 그분의 은혜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