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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사람들(사도행전28:7-10)

 

멜리데에 상륙하여 대접을 받고 있는 중에 누가는 보블리오라는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를 돌립니다. 보블리오는 멜리데에서 제일 높은 사람이라 했습니다. 마침 바울일행이 상륙한 근처에 보블리오의 토지가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보블리오는 바울일행을(276명) 사흘간이나 친절하게 대접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친절한 보블리오입니다. 276명을 3일간이나 먹고 재우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보블리오는 친절을 베풀었습니다.

Jan Hus/1374-1415는 교회개혁과 체코인의 민족주의의 대의를 위한 순교자로서 명성을 얻었습니다. Hus는 1401년 사제로 임명되었으며 프라하의 찰스 대학에서 가르쳤습니다. 대학 가까이에 있는 베들레헴 예배당에서 설교하면서 생애의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Hus는 wyclif/위클리프의 사상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당시 다른 사람들과 달리 그는 교회내의 권위로서 성경을 강조하였습니다. Hus는 설교를 교회 예배에서 중요한 위치로 끌어 올렸습니다. 그의 주저 교회론(On the Church)에서 그리스도를 유일한 머리로 한,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교회를 정의하였습니다. Hus는 성직의 전통적 권위를 옹호하였지만 오직 하나님만이 죄 사함을 줄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Hus는 교황이나 추기경이 성경에 어긋나는 교리를 만들 수 없으며 또한 어떤 그리스도인도 명백히 잘못된 자들의 명령에 복종해서는 안 된다고 믿었습니다. Hus는 성직자의 부패를 비난했습니다. 사람들이 彫像(조상)을 예배하고 거짓된 기적을 믿으며 “미신적 순례여행”을 비평하였습니다. Hus는 성찬식에서 잔을 평신도에게 허락하지 않는 교회를 비판했습니다. 면죄부 판매를 비난하였습니다.

당연히 Hus는 후스는 프라하에서 오랜 악전고투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의 문제는 Roma에 회부되었습니다. 1415년 Hus는 그의 신앙을 변호하기 위해 콘스탄스 공의회(CounciI of Constance)에 참석했습니다. Hus는 황제의 안전 통행증을 가지고 여행하였지만 그의 견해를 설명할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했습니다. 프라하의 대주교는 Hus의 입장을 강력하게 배격했습니다. 대주교는 위클리프의 저서와 Hus의 책들을 사제들의 Te Deum/‘하나님이여 당신을 찬양하나이다’의 노래 속에서 들으면서 불에 태웠다. 그리고 그들은 Hus에게 교황의 명령들에 복종할 의사가 있는가 라고 물었다. 그러나 교황의 명령들이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일치할 경우에는 복종하겠지만 ‘모순될 경우에는’ 안한다고 했습니다. 결국 교황은 Hus를 파문시켰습니다. 콘스탄스에 도착하자마자 감옥에 가두고 Hus를 심문했습니다. 그러나 그 심문은 일방적이었습니다. Hus가 말하려고 하면 마귀들의 조종을 받는 자들이 사방에서 소리를 질러댔습니다. 그들은 Hus를 화형시켰습니다. 재를 모아서 흔적이 남지 않도록 기둥의 주변 땅속에 묻고, 나머지 재는 라인 강에 뿌렸습니다.

그 회의에 참석했던 보헤미아의 총대들은 복수를 다짐했습니다. 곧 후스주의자들(Hussites)이었습니다. 그들은 돌아오자 종교적관용과 옥에 갇혀 있는 동료들의 석방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거절당했습니다. 그들은 시의회의원들 가운데 마귀 같은 13명을 의회당 창문 밖으로 던져버렸습니다. 이로써 15년이나 교황주의자들과 전쟁을 했습니다. 많은 후스주의자들이 믿음을 지켰습니다. 그들은 처음에는 다볼파/Taborites라고 불렸습니다. 후에는 보헤미아 형제단이라고 불렸다가 또는 모라비안 형제단(the Moravian Bretheren)이라 불렀습니다.

모라비안 형제단들은 진젠도르프 시대에 교황주의자들에게 매우 심한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들 중의 일부는 진젠도르프가 자기의 할머니로부터 구입한 작센(Sachse) 구역에서 피난처를 구하려고 했습니다. 진젠도르프는 그들을 자신의 구역으로 불러들였습니다. 작센 구역에는 모두 300명이 넘는 피난민들이 정착하였습니다. 이곳은 모라비안파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루터교도와 칼빈주의자들 그리고 후스파들도 거주하였습니다. 진젠도르프는 그들을 그리스도 안에 있는 형제들로 여기고 사랑하였으며 한 몸의 지체들로서 그들과 함께 살기를 원하였습니다.

오늘날 교회들이 신학생이 왜 이렇게 많으냐고 말을 합니다. 자신들도 신학교를 나왔으면서 말입니다. 그러면서 교회에서 신학생들에게 자리를 주지 않습니다. 대형교회에서 신학생들이 들어갈 자리가 많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신학생들이 과잉생산되고 있다고 말합니다. 친절하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개구리가 올챙이적 생각못한다고 자신들의 안위만 걱정합니다. 교회의 미래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교회야 어떻게 되든지, 자신의 욕심만 챙기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자신들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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