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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외 없는 심판(로마서2:4-16)

 

12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13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14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15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16 곧 내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날이라

 

성경해석은 조심해서 해야 합니다.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다가는 잘못된 길로 인도하거나 그리로 같이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예로 아버지가 방에 들어가신다.’를 띄어쓰기를 잘못하면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신다.’가 된다. 글자 수는 틀림없는데 띄어쓰기를 잘못함으로 엉뚱한 해석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방에 들어가는데, 가방에 들어가는 것으로 오해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14절에서 15절을 언뜻 보면 이방인들도 양심으로 인해서 구원을 받을 수도 있다는 nuance로 볼 수도 있습니다. 만일에 그렇다면 복음이 완전히 흐트러져버립니다. 굳이 양심에 의해서 구원을 받는다면 복음을 전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이 땅에 들어오실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교회의 존재도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종교를 가지거나 가지지 않아도 양심에 거리끼지 않는 삶을 살기만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땅 끝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려고 하는 바울사도가 왜 이런 구절을 썼습니까?

 

독일성서공회해설 성경은 율법을 소유하는 것이 결정적인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결정적이다. 모세의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들도 역시 선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그들도 그것을 행할 수 있으며, 그들의 양심에 의거하여 스스로를 고발하기도 하고, 변명하기도 하면서 그들의 생각이 둘로 갈라져서 싸우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이야말로 인간의 삶의 실상이 어떠한지를 밝혀 줄 것이다.고 했습니다.

 

Thompson 성경은 구체적조항인 율법은 없어도 본성의 양심이 율법의 기능과 목적을 대행할 것이다. 사람들의 양심이 스스로에게 증거하듯이 인간은 구원을 받을 수 없는 죄인임을 각성시킨다고 했습니다.

How주석에서 최갑종은 율법의 소유와 할례가 유대인들에게 특권이 될 수 없다는 점을 심화시키기 위하여 이방인들이 설사 할례를 받지 않았다 하더라도 만일 그들이 율법을 행한다면 오히려 그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수사학적 표현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의 자리에 들어간다는 주장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Calvin은 우리가 취한 행위의 바른 경로를 옹호해주는 어떤 논증들이 있는가 하면, 반면에 우리의 악한 행실들로 인하여 우리를 비난하고 유죄선고 하는 논증이라고 했습니다.

 

Matthew Henry는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때 그 심판이 공정하다는 점을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인간의 순종의 법칙이 하나님의 심판의 법칙이라는 원칙에 입각해서 진행될 것이다. 이방인들은 자연의 빛이 있고, 유대인들은 율법의 빛이 있다는 것입니다.

 

William Hendriksen은 사도바울은 어떤 사람이 율법을 모르고 죄를 범하든, 또는 율법을 알고 죄를 범하든(이방인이든 유대인이든)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을 거스르는 자는 범죄한 자로 판단을 받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행위에 상응하는 형벌이나 상급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이방인에게 과연 공정한 것일까? 이방인은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희미한 개념조차도 갖고 있지 못하다. 그런데 왜 그가 심판을 받아야 하는가?라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14,15절에서 보는 바대로 이러한 반론은 근거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방인이 본래 돌판에 기록한 율법을(24:12) 알고 있지 못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이방인의 마음에 율법이 요구하는 행위들을 기록해 두셨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방인에게 옳고 그름에 대한 지각을 주셨던 것이라는 것입니다.

 

William Barclay문장의 의미로 볼 때 16절은 13절 다음에 와야 한다고 했습니다. 14,15절은 괄호 안에 들어 있다. 바울은 책상에 앉아서 단어 한 마디 한 마디 그리고 문장 하나하나를 생각하며 써 내려간 것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더디오(16:22)에게 불러 주면서 방을 이리 저리 왔다 갔다 하였고, 더디오는 받아쓰느라고 애를 썼다고 상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긴 괄호가 왜 있게 되었는지를 설명이 된다는 것입니다. 13절에서 16절로 직접 연결하고 14-5절은 부가적으로 설명하면 그 내용의 뜻을 바로 이해하기가 더 쉽다는 것입니다. 1

 

2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13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16 곧 내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날이라 14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15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바울사도가 이방인들에게로 눈을 돌렸다는 것입니다. 그는 유대인들이 그릇 생각하는 특권과 편애의 주장을 다루었는데,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특권이려면 그것은 율법이었다. 그래서 이방인들은 하나님은 율법을 가지고 선악을 분별할 줄 알았을 유대인을 벌할 것이고, 우리 이방인들은 율법을 알 기회도 없었으니까 선악을 분별할 줄도 몰랐기 때문에 심판을 확실히 면하게 될 것이다라는 주장에 대답하기 위해서 바울은 두 가지 대 원칙을 내세웠다고 했습니다.

 

첫 번째로 사람은 그에게 알 기회가 주어진 것에 의해서 심판된다. 만일 그가 율법을 알고 있었다면 그는 율법을 안 자로서 심판될 것이고, 만일 그가 율법을 몰랐다면 그는 율법을 모르는 자로서 심판될 것이다. 하나님은 공정하시다. 여기에 예수가 이 세상에 오시기 전에 살았던 사람과 기독교 메시지를 들을 기회가 없었던 사람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까 하고 질문하는 사람에 대한 대답이 있다. 기독교적인 대답은 사람은 그가 알 수 있었던 최고수준에 대한 성실성에 의해 심판된다는 것이다. 만일 사람이 그가 알고 있었던 최고표준에 진실했다면 하나님은 그에게 더 이상 요구할 수도 없고 하시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더 나아가 글로 써진 율법을 모르는 사람들도 그들 마음 속에 불문의 율법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한다. 우리는 이것을 선악에 대한 본능적 지식이라고 부르고 있다. 스토아파 철학자들은 우주에는 사람들이 위험을 무릅쓰고도 범하려는 법칙들이 있는데 그것은 생명과 생활을 지배하는 법칙, 건강의 법칙, 도덕률 등이다. 바울에 의하면 사람의 본성에는 우리가 꼭 해야 할 것에 대한 선천적이고 천부적인 그리고 본능적 지식이 심겨져 있다. 바울은 세계가 두 가지 종류의 사람들로 나뉘어 있다고 보았다. 즉 유대인들은 그들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율법이 직접 주어지고 씌어져서 누구나 읽을 수 있게 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른 민족들은 이 씌어진 율법은 없으나 그들 마음속에 하나님이 심어주신 선악에 대한 본능적인 지식을 갖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이러므로 유대인이나 이방인들이 심판에 대해 변명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심판은 특권을 가졌다고 하는 유대인이나 특권이 없는 이방인이나 예외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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