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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이 유대인에게만이냐?(로마서4:9-12)

 

그런즉 이 행복이 할례자에게뇨 혹 무할례자에게도뇨 대저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 하노라 그런즉 이를 어떻게 여기셨느뇨 할례시냐 무할례시냐 할례시가 아니라 무할례시니라 저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저희로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또한 할례자의 조상이 되었나니 곧 할례 받을 자에게 뿐아니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의 무할례시에 가졌던 믿음의 자취를 좇는 자들에게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어떻게 표현할까? 사람은 하나님의 가없는 사랑을 끊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끊어버린 인간으로서는 어떤 방법이 없었습니다. 창세기3장에서 이미 사람들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어버림으로서 어떻게 할 바도 몰랐습니다. 여기에서 사람들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모색해보려고 갖은 애를 다 썼습니다. 그런 것들이 소위 종교적인 제의들이나 신화들입니다. 이런 것들로는 하나님께로 갈 수 없는데도 사탄의 계략으로 사람들은 속아 넘어갔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보다 더 좋은 나라라고 사람들을 끝없이 속였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대등한 관계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보다 더 좋은 나라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과 우주의 주관자가 누구냐는 것입니다. 소위 종교의 창시자들은 누구냐는 것입니다. 그들은 스스로 있는 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피조물들입니다. 그런데 대등하거나 하나님보다 더 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틀린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교리는 어떻습니까? 표준적인 유대의 교리는 오직 할례자들을 위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같은 사상은 깊이 뿌리가 박혀서 초대교회당시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인들에게서 조차도 민족적인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사도행전15:1을 보면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니

 

라고 했습니다.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가 없다고 한 것입니다. 따라서 바울사도가 할례에 대해서 말할만합니다. 왜냐하면 할례 그 자체에 구원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소위 우주가 스스로 존재한다고 하는 사람들, 진화론자들이 말하는 소리를 들어보면 인간의 기원이 600만 년 전이라고 하든지, 우주폭발이 몇 백억 전이라고 할 때에 단위가 100억 또는 100만년입니다. 정확한 기원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말합니다. 그럼에도 과학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믿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14:1).

 

유대인들도 아브라함의 할례와 의로 여김을 받았던 때를 혼동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목전에서 의롭다고 선포된 것은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기 이전입니다.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은 때는 99살 때였습니다.

창세기17:24 아브라함이 그 양피를 벤 때는 구십 구세이었고

아브라함과 같은 날 이스마엘도 할례를 받았습니다. 당시 이스마엘은 13살이었습니다.

창세기17:25 그 아들 이스마엘이 그 양피를 벤 때는 십 삼세이었더라

아브라함과 같은 날 아브라함의 집에서 태어난 자들과 돈으로 산 모든 남자들도 할례를 받았습니다.

창세기17:23 이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자기에게 말씀하신대로 이 날에 그 아들 이스마엘과 집에서 생장한 모든 자와 돈으로 산 모든 자 곧 아브라함의 집 사람 중 모든 남자를 데려다가 그 양피를 베었으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시고(15:18), 아브라함이 여호와의 의로 여김을 받은 때는(15:6), 아직 이스마엘은 잉태되지 않았습니다.

창세기15:2-3 아브람이 가로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나는 무자하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 아브람이 또 가로되 주께서 내게 씨를 아니주셨으니 내 집에서 길리운 자가 나의 후사가 될것이니이다

창세기16:4 아브람이 하갈과 동침하였더니 하갈이 잉태하매 그가 자기의 잉태함을 깨닫고 그 여주인을 멸시한지라

 

William Hendriksen에 의하면 아브라함을 의로 여기시고 선포된 순간과 할례를 받은 때 사이는 적어도 14년이라는 기간의 갭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굳이 유대인들은 할례를 들고 나옵니다. 그 의도는 자신들만 하나님의 특권을 받았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입니다. 구원은 오직 유대인에게만을 강조하고자 함입니다. 그러나 바울사도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라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오늘도 구원을 다르게 해석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가 아니라 어떤 행위에 의해서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을 말하고자 함입니까? 자기의 의를 들어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인간의 공로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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