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작정(뜻/계획)(로마서5:1-11)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해서 이렇게 질문합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앞으로 일어날 모든 것을 예정하셨다면, 우리가 논리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유일한 결론은 인간들이 실제로 자유롭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양립할 수 없는 어떤 행동의 상황에서 인간이 실제로 자유롭지 않고 오히려 그들이 어떠한 선택을 내리도록 하나님에 의해 결정되었다고 한다면, 인간의 죄악 된 선택의 원인은 궁극적으로 하나님께로 돌려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어떻게 해서 하나님이 ‘죄의 조성자’라는 비난을 피할 수 있겠습니까? 인간의 불신앙과 불순종이 그들의 책임이라고 정당하게 주장할 수 있으시겠습니까? Arminius 신학자들은 이 문제 하나만으로도 개혁주의 사상이 비성경적 특징을 보여준다고 주장했습니다. J. Kenneth Grider는 Arminius의 말을 인용하면서, 이 문제에 관한 개혁주의적 생각이 “하나님의 지혜롭고 정당하며 선하신 본성과 인간의 자유로운 본성에 위배되며, 하나님을 ‘죄의 조성자로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Robert L. Reymond).
인간들이 저지르고 있는 행위는 심히 악합니다. terrorist들이 행하고 있는 일들은 가히 사람이 할 수 없는 일들을 자행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계속 이어져 왔습니다. 어떻게 저렇게 할 수 있을까? 할 정도로 잔인하고 잔학합니다. 그런 일들을 서슴없이 자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인간들은 그 허물을 다른 데로 돌리고 있습니다. 자신들에게 돌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데로 돌리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파렴치(破廉恥)합니까?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그가 창조되고 의존된 존재의 영역 안에서 특정한 행위들을 행할 능력이 부여되어 있었습니다. 사람의 행위는 가공(架空)의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포괄하는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그는 행동으로 표출되는 작인(作因)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행위는 비난받거나 인정받을 가치가 있습니다. 의무의 법인 도덕법이 사람에게 적용됩니다. 사람의 행위는 당위(當爲)와 금지의 영역 안에 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았습니다. 그의 행위는 그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하나님의 형상에 합치해야 하기 때문에 이것은 유효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사람의 행위가 따라야 할 방식입니다. 행위를 규정하거나 금지하는 법은 하나님의 속성을 묘사한 것이고, 하나님의 屬性속성은 그에 합치하는 행동의 규제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사람은 행위를 원하거나 선택합니다. 바로 인간행위의 자유입니다. 인간이 어떤 행위를 하려 하지 않거나 또는 그 행위가 그의 의지에 반하는 것이라면, 그가 도구가 되어 일으켜진 결과는 사실상 그의 행위가 아닙니다. 그는 그가 어찌할 수 없는 어떤 다른 힘 또는 행위 주체의 희생물입니다. 우리는 종종 “나는 그것을 나의 의지에 반해서 행했다”라는 표현을 씁니다. 그러나 이것은 옳지 않습니다. 우리는 마지못해 어떤 것을 하거나 몹시 싫어하는 것을 행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행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그것을 행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행하려고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싫은 일을 행하려한 것입니다. 어떤 것이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 행해질 때, 엄밀히 말하면 우리는 행위 주체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것을 행할 때, 그것은 언제나 우리가 그 어떤 것을 의도했기(willed)때문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의지작용의 결과이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행위에 대하여 책임이 있습니다. 의지작용이란 그렇게 행할 것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의도할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의도한다.’라고 말하는 것은 진부(眞否)합니다. 그러나 의지작용의 능력은 우리가 이 능력을 특정한 방향으로 행사하는 이유를 설명하지 못합니다. 예를 들면 두 사람이 생계를 영위해 나가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 사람은 존경할 만한 노동에 의해서 생계를 영위해 나가고, 다른 한 사람은 절도에 의존합니다. 무엇이 그 차이를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의지작용은 그것을 설명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두 사람 모두에게 그 자질이 부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의지작용의 능력과 실제적인 의지작용에 의한 이 능력의 행사에서 더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능력과 그 능력의 행사의 배후에 있는 것은 성품입니다. 성품의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에 의지작용이 전적으로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성품은 욕망들, 동기들, 性癖성벽들, 도의절조(principle)의 전체적인 복합체로서 인격의 체질(habitus)입니다. 이것은 편의상 성벽의 복합체로 불립니다. 그 복합체는 구별되는 도덕적 종교적 경향, 뜻, 목적, 성벽을 구성하는 모든 것을 포괄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것을 마음이라고 합니다. “생명의 근원이 이(마음에서 남이니라”(잠4:23).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마12:34,35).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흘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니”(막7:21,22). 성경은 도처에 선과 악의 근원으로서의 마음에 대한 강조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므로 의지작용은 내적성벽에 의해 결정됩니다. Shedd는 후자를 내재적 의지작용(immanent volition), 전자를 실행적 의지작용(executive volition) 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어떠한 용어들을 사용하든지, 결과는 사람에게 형이상학적 구성과 일련의 의지작용보다 더한 어떤 것이 있습니다. 이것이 사람의 행위와 인생이력의 도덕적 종교적 특성을 결정하는 요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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