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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에 이르는 순종의 종(로마서6:15-23)

 

면역성이 있다는 것은 어떤 개체가 면역을 가지고 있는 성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죄는 죄인을 자기의 종으로 만들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예로 어떤 사람이 처음 거짓말을 했을 때, 자학하면서 공포를 느낍니다. 그러나 두 번째 거짓말을 할 때는 첫 번째보다 덜 양심의 가책을 가집니다. 세 번째 거짓말에 가서는 아주 자연스럽습니다. 마침내 거짓을 말하는 죄가 그를 꼼짝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여타 다른 죄들에 있어서도 인간들은 이와 같기 때문에 죄 가운데 살아가며 그것의 종노릇을 하고야 맙니다. 죄에 이미 면역이 된 인간은 자신이 죄를 짓고 있는지, 짓고 있는지조차 모릅니다.

즉 사람은 어떤 주인에게 속하느냐에 따라서 센 주인을 섬기게 되어 있습니다. 즉 자신에게 있어서 죄가 그 자신을 잡고 있으면 죄의 종으로 전락되고 맙니다.

죄의 노예에서 ‘노예’란 개념은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피상적인 종이 아닙니다. 오늘날 거의 모든 사람들이 직장에 속해 있습니다. 대체적으로 낮에는 즉 정해진 시간에는 직장에서 일합니다. 이 일은 하기 싫어도 합니다. 돈 때문입니다. 살아가는데 필요한 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입니다. 돈이 필요 없으면 굳이 직장에 예속되지 않습니다. 어쨌든 직장에 근무하다가 근무시간이 끝나면 내 시간으로 돌아옵니다. 이 시간은 직장에 예속된 시간이 아닙니다. 내 시간으로 얼마든지 다른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당시의 종은 24시간 중 단 일초라도 자기시간은 없었습니다. 노예에게 지위란 전혀 없었습니다. 종의 시간은 주인의 독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두 주인을 섬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랬던 그들에게 바울사도는 말했습니다. 이제는 너희가 과거에 섬겼던 주인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났다. 그러니 새 주인에게 순종해야 하지 않겠는가? ‘과거에 순종했던 지독한 죄를 주인으로 삼든지, 아니면 영생에 이르는 하나님을 주인으로 삼든지 해야 할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바울사도의 이 말은 죄를 주인으로 삼으면 멸망이라는 말이고, 순종의 종으로 즉 그리스도에게 순종하면 의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밖에는 다른 주인을 가질 수 없습니다. 우리 생의 일부는 하나님께, 다른 일부는 이 세상에게 바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에게 있어서는 전부 아니면 안 됩니다. 크리스천이 자기 생의 얼마만큼은 하나님 없이 살게 하려하는 것은 진정한 그리스도인 아닙니다. 바울사도가 계속 로마서에서 논증하고 있는 것은 죄가 사람에게서 왕노릇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필경은 사망에 이르게 한다는 것입니다.

15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16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그리스도인은 엄한 율법아래 있(엄하면서도 구원할 수 없는)지 않고 은혜아래 있다. 그래서 너희들은 진정한 자유인이 되었다. 그러나 그 자유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유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유란 방종하라는 자유가 아니라 너희를 살리는 자유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함부로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이 이것에 걸려있습니다. ‘나는 구원받았다. 그러므로 이런 죄쯤 짓는다고 해서 뭐 어쩔라고…’하면서 말입니다. 죄의 폭군휘하에서 벗어났다 할지라도 얼마든지 그 안에 다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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