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으로는 안 되는 우리의 구원(로마서7:1-25)
인터넷설교신문에서 따온 이야기입니다. 젊은 부부가 귀농을 했습니다. 농사를 지어 그것을 가공하여 부가가치를 높이기로 했습니다. 그들이 선택한 작물은 참깨였습니다. 신통치는 않았지만 참깨를 어느 정도 수확하였습니다. 그들은 그 참깨로 100% 진짜 참기름을 만들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진짜 참기름을 만들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부부는 그 참기름이 잘 팔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생각과 달리 얼마 후에 손님이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이유인즉슨, 그 참기름이 진짜 참기름이라는 걸 믿지만 그 참기름 맛이 입맛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동안 가짜 참기름 맛에 길들여진 입맛 탓에 정작 진짜 참기름이 맛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참깨농사를 직접 지어 진짜 참기름을 만들어 팔겠다는 부부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착향제와 조미료를 가미한 강력한 가짜 참기름의 강력한 맛은 본래 참기름의 맛을 잠식하였습니다. 사람들의 입맛이 가짜에 중독된 것입니다.
우리가 참으로 신앙생활 한다는 것이 정말 쉽지 않습니다. 여러 가지의 장애물과 훼방이 수없이 앞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신을 차리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못된 새가 와서 깃들이거나 잘못된 누룩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신앙을 잘못된 방향으로 발효시키고 잘못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더 이상 율법에 종속되어 있지 않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 속해 있다(4절)는 사실을 바울은 1절 하반절에서 증명합니다. 율법은 어떤 사람에게 오직 그가 살아 있는 동안에만 법적 구속력을 미친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혼인법(2-3절)을 예로 들어 이것을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결론을 끌어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상의 죽음은 세례와 성만찬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 現在化(현재화)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현재화된 것입니다. 로마서6:3-6을 보면
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였고 고린도전서10:16-17을 보면
16 우리가 축복하는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함이 아니냐 17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예함이라
라고 했습니다. 즉 예수그리스도의 죽음이 우리의 죽음으로 되었습니다. 이로써 그들은 율법에 대해서는 죽어서 율법의 효력 영역으로부터 벗어난 것입니다. 인간이 자기힘으로 삶을 규정하는 한 율법은 계명에 복종하게 하는 대신에 바로 정욕과 범죄에로 誤導(오도)하며 정욕과 범죄는 죄와 죽음으로 인도합니다(7-11절). 율법이 그 영향력을 상실한 곳에서 하나님의 영이 작용하셔서 속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게 합니다.
율법과 죄의 관계는 바울사도가 3:20, 5:13, 7:5에서 서술했습니다. 그러나 7-13절에서 상세하게 기술합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선한계명입니다(10,12절). 그러나 율법이 인간에게 긋는 경계선은 인간에게 矛盾(모순)과 犯法(범법)을 觸發(촉발)시킵니다. 즉 죄는 하나님께 반항하는 숨은 적대감으로서 알려지지 아니한 채 사람 속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계명을 통하여 깨어나 작용을 하게 됩니다(8-9절). 율법과 그 작용을 왜곡시켜서 죽음을 가져오는 연장으로 바꾸어버립니다(10-11절). 그러나 바로 이 점에서 율법은 하나님이 지정해 주신 목표에 도달하는데 그것은 죄의 치명적 성격을 백일하에 드러냅니다(13절). 바울은 이것을 “탐내지 말라”는 계명을 들어서 확실하게 설명합니다(7-8). 이렇게 함에 있어서 바울은 일인칭 단수 어법의 형식으로써 특별히 자기 자신의 경험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아담의 역사를 모형으로 하여 각 사람이 율법과 미주치는 것을 서술합니다. ‘율법 아래 있는 사람’이 율법과 이렇게 마주침은 주관적으로 전적으로 달리 체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바울은 빌립보서3:3-9에서 자기 자신의 실례를 들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3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당이라 4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만하니 만일 누구든지 다른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5 내가 팔일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6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 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7:7-13절이 율법과 결부된 인간의 역사를 묘사했다면, 14-20절과 21-24절은 율법 아래 있는 인간의 삶을 서술합니다. 14절은 근본문제를 지적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율법의 실제적 의도를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율법은 신령한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율법은 하나님께 근원을 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율법 아래 있는 인간, 곧 화자인 ‘나’는 이것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육적이어서 죄에 팔렸기 때문입니다. 15-17절과 18-20절은 하나의 병행적 사상구조에서 이 분열의 결과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율법이 명하는 바를 하고자 하며, 선과 구원과 생명을 이루고자 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自我(자아)는 실제로는 하나님께 맞추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맞추어져 있고, 죄에 지배를 받기 때문에 그 자아는 오직 파멸과 죽음을 일으키면서도 실제로는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실정은 단지 개개의 過誤(과오)에서 그리고 계명을 지킬 수 없는 무능력에서 드러나는 것이 아닙니다. 경건한 사람이 겉모양으로 율법을 성취하는 것처럼 보이는 곳에서도 역시 그 사람은 그의 목표에서 빗나가게 됩니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에게 사로잡힌 그의 자아는 하나님께 이르는 길을 그에게 왜곡시키고 그를 죄의 꼭두각시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21-23절은 구원받지 못한 인간의 분열, 즉 그가 그 아래 서 있는 불가피한 율법(21절)을 다시 한 번 개진합니다. 속사람 즉 그가 본래적으로 그러해야만 할 그 인간과 그의 마음, 즉 그의 속생각과 감정은 하나님의 율법에 기꺼이 찬동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그의 지체 즉 구체적으로 영위되는 삶의 실존에서는, 죄가 지배하고 罪가 律法을 惡에 惡用합니다. 그에게는 죽음에 떨어진 이 현존(24절)으로부터 구출을 갈구하는 부르짖음이 있을 따름입니다. 25절 상반절은 한 쪽에 이 구조 절규와 다른 한 쪽에 구원에 대한 간략한 감사를 대칭시킵니다. 이 감사는 8장에서 근거가 제시됩니다. 25절 하반절은 다시 한 번 21-23절을 요약합니다. 그렇지만 역점은 약간 다른 곳에 놓습니다.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섬기면서도 말입니다. 7-25절의 전체 단락에서 바울은 구원받지 못한 인간의 목소리를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그런데 이 구원받지 못한 인간은 그리스도를 만나고 하나님의 영을 받은 후에야 비로소 그의 상황을 명백하게 인식하며 서술할 수 있습니다. 이 단락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로서도 여전히 죄인인 그리스도인의 목소리를 듣는다고 생각하는 주석가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바울이 8장에서 성령 안에서 사는 삶에 관하여 말하는 바에 비추어 볼 때에 이런 주석가들의 주장은 성립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의 주장에서 옳은 점은 그리스도인도 역시 그리스도와 맺은 결속으로부터 떨어져 나와서 다시금 죄의 지배 아래 빠지는 위협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독일성서공회해설성경).
법은 사람을 어느 정도 통제는 할 수 있어도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지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법을 지킨다는 것은 자발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법은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그런데 법은 그 많은 법을 지켜야만 정의로운 자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 많은 법을 지킬 자는 한 명도 없습니다. 우리 모두 죄인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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