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고한 인간(로마서7:18-25)
18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19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20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22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아마도 이 말은 생각 있는 사람들은 반드시 할 법한 말입니다. 정말! 내 자신이 그래? 그것밖에 안 돼?라는 말입니다. 곤고한 사람이라는 말은 비참한 사람입니다. 육신적인 생활상에서 비참한 사람이 아니라 영적인 면에서 비참함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비참한가?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상태입니다. 여기서의 죽음이란 이 세상에서의 숨끊어짐만의 죽음이 아닙니다. 영원한 죽음이란 이세상+다음세상에서의 죽음입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믿든지, 믿지 않든지 이 죽음은 필연코 어떤 사람들에게 적용이 됩니다. 그 사람들이 자신의 종교를 가졌다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았다 하면 홀연히 임합니다. 필연코 임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이를 믿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미래의 세상이 없을 것 같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우연히 Big-Bang에 의해서 저절로 생겨난 것 같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면 가끔씩 자신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신다면 믿겠는데 그렇지 않으시고 다만 성경으로 사람들에게 말씀하시니까 전혀 믿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필연코 그 말씀들은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자신들의 비참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자신의 곤고함을 인지해야 합니다. 바울사도가 Roma에 있는 교회에게 편지를 쓸때는 57년이나 58년도로 추정합니다. 바울사도가 그의 제3차 전도여행을 끝마칠 때쯤입니다. 바울사도가 예수그리스도를 만난 직후가 아닙니다. 점점 원숙해진 때입니다. 순교의 날이 그렇게 많은 날이 남지 않은 때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만난 이후로 줄곧 여생을 주님과 함께 했었던 사도입니다. 그가 ‘오호라 나는 비참한 사람이로다!’고 탄식했습니다. 이 상황을 오늘날의 사람들에게 대입시키면 정말 심각한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비참한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알지 못하고 능력이 없는 대상들에게 우리들을 맡겨야 할까요? 절대로 그럴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영원히 멸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사람이라고 하면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 영원히 멸망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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