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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왜곡/사르디카 회의(로마서 9:18)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

 

항상 회의라는 것은 사람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회의(council)에 거는 기대가 크기 때문입니다. 예로 國會(국회)라 하면 사람들이 거는 기대가 만만치 않습니다. 그러나 잘못된 회의는 나라를 망칠 수도 있습니다. 4대강을 하자고 못된 회의를 해서 산죽이고 강죽이고 바다를 죽이며 사람들을 죽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마어마한 돈을 전혀 조금치도 필요 없는 곳에 쏟아 붓고서 결국은 파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이것을 하자고 주재한 會議體(회의체)는 전혀 못들은 척 하고 있습니다. 이토록 잘못된 모임의 회의는 두고두고 가슴을 치게 합니다. 사르디카 회의가 그렇습니다. 사르디카는 불가리아의 수도Sofia입니다. 불가리아에서는 Sofia를 Sredetz , Serdica 또는 Sardica라고 부릅니다. 문제는 제국 내 삼위일체 논쟁이 발생하자 교회는 정통성확립을 위해 일관된 창구가 필요했습니다. 보다 엄격한 치리와 중앙집권화한 통솔의 필요성을 실감했습니다. 자연히 교회내의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교회 법령(cannons)을 제정하기 위한 지방회의가 개최되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니케아회의(Council of Nicaea)입니다. 가이사랴의 바실은 지금까지 있었던 법들을 한데 모아 일관된 교회법을 제정하는데 대단한 관심을 가졌습니다. 로마교회의 문서 기록부에서도 당시까지의 기록을 수집 정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세르디카(Serdica) 서방회의에서는 로마 교구를 다른 교구의 상급 법원으로 지정하였습니다. 로마교구의 우월성을 합법화시켜 준 것입니다. 세르디카 회의 법령에서는 밝히지 않고 자신들의 법령의 출처를 니케아회의에서 제정된 법령들과 合致(합치)시킴으로 5세기에 이르러서는 세르디카 법령들이 니케아 회의의 결과인양 인용하는 경우도 생기게 되었다. 세르디카 법령들을 니케아 회의 법령들과 동등하게 다루게 된 이면에는 로마교회의 위치가 니케아 회의의 위치와 버금간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서방교회에서는 동방교회처럼 소위 에큐메니칼 종교회의가 그리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이면에는 “서방에서 유일한 사도가 세운 교회라는 면에서 로마 교구는 헬라세계의 어느 감독교구에도 비길 수 없는 월등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확신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로마 못지않게 당대 예루살렘도 후광을 입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감독들은 정치에 있어서는 처음부터 영향력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교구가 로마교구보다 우월한 지위를 차지하지 못했습니다. 고울이나 스페인 지방의 감독들이 문제가 있을 경우 자신들의 대감독들에게 문제의 자문을 구하기보다는 직접 로마 감독에게 자문을 구하였습니다. 문제가 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Damasus 감독은 다른 교구의 감독들이 자문을 구하기 위해 보내오는 편지들을 마치 황제가 지방장관들의 서신들을 다루듯이 가볍게 다루었습니다. 그의 교만함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Damasus는 자신만이 베드로의 역사를 계승한 유일한 감독이라는 주장을 하기시작했습니다. 그 근거로 마태복음16장을 붙들었던 것입니다. 문제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다는 Roma감독에게는 사법적인 권한이 동시에 부여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라고 하셨는데 지역이 조금 다른곳보다 크다고 하는 것으로 자신이 이 세상의 왕이나 된 것처럼 행세를 하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이것을 또 인정해주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로마 감독의 편지는 교령(decretals)의 성격을 지녔습니다. 로마교회는 모든 교구의 대표적인 성격을 띄게 되었습니다. 다른 교구에서 찬성을 한다해도 로마교회의 찬성이 없으면 헛일이었습니다. 로마교회에서 시행되는 예배모범은 다른 교구에서 자연스럽게 수용되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성지순례였습니다. 콘스탄틴 대제와 그의 모친 헬레나가 예루살렘과 베들레햄에 거대한 성전을 짓고 성지순례를 행하자 많은 사람들이 그 전례를 따랐습니다. 348년경 Egeria라는 스페인 귀족부인이 남긴 기록에 의하면 팔레스틴의 성지의 명소들이 “유려한 구어체 라틴어”로 기술되었습니다. 이것은 로마의 라틴예식이 당대에 얼마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는가를 짐작할 수 있는 근거입니다. 감독 이노센트1세는 416년에 “오직 로마교회에 의하여 다른 서방지역의 교회에까지 복음이 전파되었으므로 모든 라틴계 교회들이 로마교회의 예배의식을 쫓아야만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교회에 못된 것들이 또아리를 틀었던 것입니다. Damasus외에 로마의 우월권을 확립하는데 영향을 미친 인물은 Milano의 감독 Ambrose입니다. Ambrose나 Augustine과 같은 당대의 감독들은 Africa에서 로마의 예식이 그대로 행해지고 관습화되고 있는 것에 대해 달갑지 않게 생각했지만, 그것은 하나의 관례처럼 일반화되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의 영향력이 모든 지역에까지 균형있게 미치지는 않았습니다. Italy 지역에서 로마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지만, 헬라어 통용지역에서 로마의 영향력은 제한적이었습니다. 대표적인 지역이 Greece와 Macedonia였습니다. 이 지역은 379년까지 서로마 제국에 속해 있었지만, 379년에 이들 행정관할권을 동로마에 인계하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2년 후 381년에 헬라측이 주축이 되어 모인 Constantinople 종교회의에서는 “종교적 지역 구분은 단순히 세속정부가 구분한 경계를 따르도록 결의”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Constantinople 회의에서는 하나의 종교법(fateful cannon)을 작성했습니다. 곧 Constantinople이 새로운 로마(New-Roma)이므로 이곳의 감독은 로마감독에 버금가는 권위를 지닌다고 규정했습니다. “Constantinople의 감독은 Constantinople이 새 로마이기 때문에 로마의 감독 다음의 영예를 갖는다”고 명문화했습니다. 이런 결정은 제국에서 제2의도시라고 자처해왔던 Alexandria가 강하게 반발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 회의의 결정을 필사적으로 반대한 것은 로마교회였습니다. 따라서 Roma교회 Constantinop, Alexandria가 서로 누가 크냐 다투었습니다. 로마교회의 감독 Damasus는 Constantinop회의의 결정을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그 결정에 대하여 강력한 이의를 제기하였습니다. 451년에 개최된 Chalcedon회의에서는 이전에 로마교회에만 부여했던 호칭인 “가장 거룩한 도시”를 Constantinop에도 부여하여 그 도시를 “가장 거룩한 도시 새 로마 콘스탄티노플”이라고 명문화했습니다. 이런 와중에서 로마의 영향력을 헬라지역에 확대하기 위해 Damasus는 데살로니가 감독들을 그들의 사도적 권위의 대리인들(vicars apostolic)로 임명하여 이것을 후대에 제도화시켰습니다. 이것은 한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로마는 이 제도를 통해 동로마권에 자신의 영향력을 유지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최초의 기독교황제는 Roma의 기독교박해를 멈추게 했습니다. 그런데 콘스탄틴의 통치는 부조리한 일이 많았습니다. 곧 Roma의 주교를 크게 만들어버렸습니다. Roma교회는 박해에서 벗어났을 뿐만 아니라 교회들과 토지를 황제로부터 선물을 받았습니다. 콘스탄틴은 바티칸 언덕에 있는 베드로의 예배실을 덮는 바실리카 양식의 교회당을 짓도록 명령했습니다. 오스티안(Ostian) 도로에 있는 바울의 예배실외에도 다른 교회당을 짓게 했습니다. 또한 황후 파우스타(Fausta)의 라테란 궁전은 로마주교의 관저로 주었습니다. 이런 일들이 계속 있다가 보니 자연히 자신들이 하나님인양 거들먹거리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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