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리는 것 (창16:2)
아브람 부부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기한이 십 년을 넘기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사래는 조급했습니다. 초조했습니다. 견딜 수 없었던 사래는 전면에 나서서 아브람에게 제안을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나의 생산을 허락지 아니하셨으니 하나님의 시간과 사람의 시간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는 아주 급한데 하나님께서는 전혀 급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하나님께서는 급하신데 우리는 전혀 급하지 않습니다. 서로 싸인이 맞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가 싸인이 맞으면 역사가 나타나는데 싸인이 맞지 않는 것입니다. 누가 시간을 맞추어야 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시간을 맞추어야 되겠습니까? 그렇다면 이 지구는 무질서의 연속일 것입니다.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시간에 맞추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의 부부에게 출산을 허락하지 않은 것에는 어떠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이것을 아브람이 기다려야 했습니다. 사래는 자신이 이미 단산상태이니 여호와께서도 자신에게 자녀를 주실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에게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모두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때가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리는 것이 믿는 자의 도리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기 때문에 못하실 일이 없음에도 그들에게 아이가 없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시간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못하신 것이 아니고 허락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못했다는 것은 무능력입니다. 허락하지 않았다는 것은 보류입니다. 하나님은 억제하시기도 하시고 뜻대로 행하시기도 하십니다. 사래의 생산은 주께서 보류하셨거나, 막으셨음으로 불가능했습니다. 그런데 사라가 아브람에게 제안하지 않아야 할 것을 제안합니다. 원컨대 나의 여종과 동침하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하매 사래는 자기의 젊은 여종 하갈을 아브람에게 첩으로 주었습니다. 사래는 하나님의 약속을 만들고자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도록 한 것이 아니라 약속에 도움을 가미코자 하였습니다. 그의 여종 하갈을 통해서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코자 한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실패를 하는 원인중의 하나가 내 생각대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묻지도 않고 내 멋대로 처리해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을 신앙 안의 불신이라 합니다.
사래는 약속을 더 기다려야 했습니다. 아브람에게 제안을 하지 않았어야 합니다. 그러나 사래는 아브람에게 제안을 했습니다. 그 때 아브람의 반응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는 의외였습니다.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 우리는 아브람을 곧잘 믿음의 조상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끝에 가서야 붙어야 할 수식어입니다. 사래의 제안에 아브람은 하나님께 묻지도 않고 선뜻 받아들였습니다. 그들 부부의 소견이 일치를 본 것입니다. 이들 부부가 믿고 있었던 것은 아브람에게 아직 출산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출산력이 있는 아브람과 젊은 여자의 결합이라는 것은 기발한 아이디어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이나 사래 모두가 완전히 단산 상태를 기다린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을 나타내시려 한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이러한 뜻을 모르고 전혀 엉뚱한 쪽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했습니다. 그들은 기다려야 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수없이 포기하라고 하십니다. 네 힘으로는 되지 않는다 오직 내 힘으로 하라고 하십니다. 베드로가 자기의 생각을 포기하지 못하고 그물을 내렸을 때 잡은 고기가 모두 달아났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다메섹 길에서 자신을 포기했을 때 위대한 사도가 되었습니다. 스데반이 자기의 목숨을 포기하였을 때 예루살렘과 온 유대에 순교의 피가 흘러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습니다.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자만심을 가지는 자는 모두 망하고 맙니다. 사래와 아브람은 어리석게도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믿었습니다.
'창세기새벽강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브라함과 사라의 고통 (0) | 2012.07.12 |
---|---|
하나님의 뜻 (0) | 2012.07.07 |
믿음의 장애물은 우리 곁에 있습니다 (0) | 2012.07.04 |
믿음의 장애물은 우리 곁에 있습니다 (0) | 2012.07.04 |
등기 이전하시는 하나님 (0) | 2012.07.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