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호와라(창세기15:7)
인간은 하나님을 아는 만큼 행복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사화복을 쥐고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대단한 뉴스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정식으로 자기소개를 하십니다. 이 일은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은 직후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 알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배려이십니다.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할 때에 하나님께서 자기소개를 하십니다. 아브람이 하나님께서 내미시는 명함을 받아보니까 “나는 여호와”라고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람은 하나님을 아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습니다.
구약에 있어서 하나님의 이름을 아는 것은 그와의 교제를 위해 중요했습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확보하기 위해 사람은 하나님의 이름을 알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그와 씨름한 강력한 존재에게 이름을 물었습니다. 또한 사사기 13:17을 보면 마노아가 신비한 신적 사자에게 그들의 이름을 알기 위해 물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인격적인 이름을 가지셨습니다. 그 이름에 의하여 그를 부를 수 있습니다. 지정된 전에서 여호와께 호소할 때 그는 가까이 오셔서 복을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하늘에 거하시지만 땅에 그의 “이름”이 거할 장소를 선택하셨습니다. 그의 이름이 성전에 거한다는 점에서 여호와의 임재가 보증됩니다(왕상 8:13). 여호와의 이름은 그 자신과 마찬가지로 주권성을 가집니다.
아브람에게 자기를 소개하시는 목적은 아브람과의 언약관계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나는 여호와로라”라는 말씀은 우주의 실권을 가지고 있으신 하나님의 권능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아브람에게 하셨을 때는 아브람이 어떻게 하든지 언약을 지키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갈대아 우르에서 아브람을 출발시키신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을 굉장히 사랑하고 계십니다.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에 들어가서 기근이 들자 아브람은 곧바로 애굽으로 갑니다. 거기에 어떠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서 애굽으로 갑니다. 애굽에 들어가서야 자기들이 크나큰 위험에 처해진 것을 압니다. 그러나 위에서 하나님이 지키신다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애굽이나 갈대아 우르는 하나님의 자비가 제한된 곳입니다. 거기는 우상숭배지역입니다. 그곳에서 자리잡고 있으면 영원히 멸망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거기에 있습니다. 이 때에 하나님께서는 안타깝습니다. 결국 이끌어 내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이십니다. 많은 사람 중에서 우리를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끌어 내실 때는 준비를 해놓으시고 부르십니다. 이 세상의 일도 보장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영혼까지 보장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끌어 내시는 것은 내 인생이 새롭게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나의 인생의 기초가 새롭게 놓이는 부르심입니다. 하나님의 특정한 계획에 들어가는 부르심입니다. “나는 너를 이끌어 낸 여호와로다” 이것은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를 주시려는 특별한 부르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