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람의 생각(창세기15:3)
생각이라고 하는 것은 날개가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지역적인 제한을 받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디고 갈 수 있습니다. 생각은 묶어둘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자유자재로 할 수 있습니다. 파스칼은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 했습니다. 생각 속에서 많은 것들이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신앙인의 생각은 조심해야 합니다. 아브람이 생각하고 말했습니다. “주께서 내게 씨를 아니 주셨으니” 이 말은 하나님께서 아직까지 나에게 약속하신 후사가 아직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보십시오. 주님께서 아시다시피 저에게는 주님께서 자식을 주시지 않았기 때문에 저는 할 수 없습니다. 아브람은 사람들에게 자손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주시겠다 하신 자손이 없음을 하나님께 호소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잡아주시므로 우리들이 살고 있고 하나님께서 보호하시는 은혜로서 살고 있음을 철저하게 알아야 합니다. 아직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여러 가지 씨를 주시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가장 적절한 때에 하나님께서 반드시 주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람은 3절에 “내 집에서 길리운 자가 나의 후사가 될 것이니이다” 라고 아브람은 하나님께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브람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많은 설교자들이 창세기 12장부터 아브람의 믿음에 칭찬을 아끼지 않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아브람 같이 믿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목사나 장로 그리고 교회를 오래 다닌 사람들은 무조건 믿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피차간에 우리들 모두 그렇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알고 있을 때 복병이 여러 곳에서 나타납니다. 전혀 이해하지 못할 일들이 나타나 신앙생활이 힘들어지게 됩니다. 믿음이 좋은 줄 알았는데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연륜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후손을 약속하셨지만 지금까지 저에게는 아무런 이상도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후사는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내 집에서 동고동락한 자 중의 하나가 나의 후사가 될 것입니다. 이것이 아브람의 믿음이었습니다. 아브람은 하나님께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는데도 그 말씀을 믿지 못했습니다. 아브람은 하나님께서 조금 전에 상급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도 하나님의 말씀을 확증하지 못했습니다. 아브람은 하나님께서 개입하시기 전까지는 믿음이 형편없었습니다.
우리가 착각하고 있는 것이 교회의 직책에 믿음을 두는 것입니다. 목사, 장로, 권사는 물론 믿음이 좋다는 것입니다. 저 사람은 교회를 오래 다녔기 때문에 믿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믿음이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그것이 아닙니다. 어제 갓 교회에 출석한 사람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자가 믿음이 있는 것이지 교회를 오래 다녀서 직책이 있어서 믿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은 신앙의 한 도구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가능한 것만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것은 철학입니다. 기도도 신앙의 도구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길을 여시는 통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