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은 내 장자라(출애굽기 4:22-23)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말하기를 바로에게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 하라”하셨습니다. 예레미야31:9에도 “…이스라엘의 아비요 에브라임은 나의 장자니라”하셨고 호 11:1에도 “이스라엘의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내었거늘”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부자관계로 묘사했습니다. 이 관계를 바로에게 필히 전하라 하셨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을 놓지 않으면 바로의 장자들이 죽는다는 것입니다.
부자 관계는 여호와와 이스라엘의 관계를 묘사하는 중요한 은유가운데 하나입니다. 여호와와 이스라엘의 관계는 부자관계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을 그의 아들로 입양하시고, 그들에게 아들로서의 특권인 이름을 주시며, 상속자에게 돌아갈 땅을 주십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아들로서 아들 된 사명을 다해야 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출애굽 때에 처음으로 이스라엘을 아들로 부르십니다(출 4:22-23). 애굽에서 노예생활 하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내 아들 내 장자”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노예생활 하는 이스라엘을 주권적으로 그의 아들로 택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을 아들로 부르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에게 자신을 “나의 아버지”로 부르라고 말씀하십니다(렘 3:19). 왜 이스라엘을 아들 삼으셨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이름과 땅을 주시려고 아들로 삼았습니다. 여호와와 이스라엘 사이의 입양관계는 양부와 양자사이에 어떤 합의가 없습니다. 입양의 과정에서 양자는 거의 수동적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양자 삼는데 있어서 이스라엘로부터 어떤 동의나 승낙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예고없이 이스라엘을 “나의 아들”이라고 부르시고 그들에게 자신을 “나의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합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는 창조주의 특별한 보호하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바로는 강퍅해야 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대로 대답만 해야 했습니다. 그러면 신상이 편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고집으로 바로는 망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피해야 할 것이 자기고집입니다. 자기고집을 세우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자기고집을 피울 이유가 없습니다.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양자 삼으셨습니다. 우리역시 하나님께서 양자를 삼으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무조건 양자를 삼으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양자들에게는 특권이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보호하심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입니다. 하나님의 사랑하심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마귀가 우리를 건드리지 못합니다. 우리가 유혹을 받지 않는 한 누구도 우리를 해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며, 하나님의 장자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