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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룟유다가 자신을 팔 것을 말씀하심(마태복음26:20-25)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기 1일전입니다. 밤에(저물 때) 예수님이 유월절식사를 하시기 위해서 열두 제자와 함께 식탁에 앉으셨습니다. 이 식탁은 제자들과 다시는 같이 먹을 수 없는 마지막 식탁이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 사실을 몰랐을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만 아는 사실이었습니다(20). 그때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이 말을 들은 제자들은 서로 심히 근심했습니다. 많지도 않은 제자 중 한 사람이 예수님을 판다는 사실에 그들은 무척 근심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모두 질문을 합니다. ‘주여 접니까?’ 왜냐하면 혐의를 벗어야 함은 물론이고 말도 안 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서로 자기냐고 물은 것입니다.

Hendrikson은 이에 세 가지 질문이 있다고 했습니다. 제자들의 건전한 자기 의심과 혐오스런 위선의 질문, 어린아이와 같은 신뢰의 질문입니다.

건전한 자기의심은 가룟 유다를 제외한 모든 제자들의 반응과 질문입니다(22). 이 질문에 주님께서는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자이며, 차라리 태어나지 않음만 못하다는 것입니다(23,24절). 이 제자들은 주님으로부터 그 말씀을 들었을 때 무척 황당했었습니다.

위선의 질문은 모든 것을 숨긴 질문입니다. 가롯 유다 한 사람의 질문입니다. 번연히 알고도 ‘랍비여 내니이까?’ 가룟 유다는 이 질문을 하기 위해 많이 머뭇거렸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질문할 수도, 안할 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질문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질문을 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말하였도다’.

어린 아이와 같은 질문은 ‘주여 누굽니까?’ 베드로의 독촉을 받자 요한은 그의 복음서에 기록했습니다(요13:23-30). 베드로가 요한에게 묻습니다. 요한이 주님께 묻습니다. 그때 주님께서는 “내가 한 조각을 찍어다가 주는 자가 그니라”하셨습니다. 그가 바로 가룟 유다입니다(요13:26절).

가룟 유다는 예수님과 함께 다니면서 회개할 기회도 많았을 것입니다. 자신을 성찰할 기회가 많았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회개하지 않았고,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음이 훨씬 나았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어차피 예수님은 기록된 대로 이 지상에서 사셔야 했습니다. 고난 받고 죽으셔야 했습니다. 예수님의 이 일은 이미 정해져 있었습니다(창3:15/사53장/시22편 등). 하나님의 작정 속에서 예수님은 이 땅의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가셔야 했습니다. 죽음으로 죽음을 이기셔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죽음은 이미 정해진 것입니다. 하지만 가룟 유다는 가장 좋은 위치에 있을 뻔했다가 한없이 낭떠러지로 추락한 것입니다. ‘주여 내니이까?’ 전능한 주님 앞에서 물어보는 뻔뻔함은 아마도 자신일 것이라는 사실을 예수님도 모를 것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이제주님의 고난은 가속도가 더 붙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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