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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에 들어가시는 예수님(마태복음21:1-11)

예수님의 일행이 예루살렘에 가까워졌을 때, 주님께서 두 제자에게 벳바게 맞은편 마을에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 마을에 매여 있는 나귀와 새끼나귀를 끌고 오라고 했습니다. 왜 가져 가냐고 하면 주께서 쓰시겠다고 하라고 했습니다. 제자들은 그것을 끌고 왔습니다. 제자들이 나귀위에 겉옷을 폈습니다. 예수께서 타셨습니다. 무리들은 길에 겉옷을 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나뭇가지를 베어서 길에 폈습니다. 따르는 무리들이 소리를 지르기도 했습니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고 찬송을 불렀습니다. 이로 인해서 예루살렘 온성이 소동했습니다. 사람들이 무리들에게 물었습니다. 이에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고 했습니다.

스가랴9:9을 보면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찌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찌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역사적으로 수없이 배반했어도 이스라엘을 시온의 딸(@/YxiAtB'), 예루살렘의 딸(!Il'v;Wry] tB')이라 하십니다. 이스라엘이 아들을 죽이려고 해도 내 백성이라 하셨습니다. 내 백성, 내 아들이 아니라고(호1:9) 말씀하실 때도 있었습니다. 다시는 이스라엘을 긍휼히 여기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실 때도 있었습니다(호1:6). 내가 이스라엘을 꺾을 것이라고 말씀하실 때도 있었습니다(호1:4).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딸이라 부르실 때에는 이스라엘을 지극히 사랑할 때의 표현입니다. 그렇게 귀한 딸들이 크게 기뻐하고, 크게 소리를 지르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왕이 임하신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임하는 것이 아니고, 나에게 나의 왕이 임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왜 그가 오심을 사람들은 대망해야 합니까? 그는 공의로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는 구원을 베푸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겸손하셔서 나귀를 타시는데 그것도 작은 나귀새끼를 타십니다. 왜 나귀새끼를 타는 것이 겸손입니까? 세상 사람들은 이동할 때 말을 탔습니다(슥9:6,20). 그러나 주님은 나귀를 타셨습니다. 나귀는 고대 사회에서 부와 권세를 나타내는 말과 달리, 겸손함과 나약함을 상징합니다. 이 예언대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실 때에 나귀를 타고서 입성하셨습니다. 그래서 메시야는 겸손하신 분입니다.

그의 통치방식은 무력이 아니라 평화의 정책입니다. 그는 말을 끊고, 화살을 끊습니다. 병거를 제거합니다. 온갖 전쟁무기를 제거하시는 통치방식입니다. 즉 복음이 가는 곳마다 전쟁은 없습니다. 그의 나라는 평화의 나라요, 의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통치방식을 표방하는 말씀입니다. 바다에서 바다까지 즉 먼 곳까지 그의 통치는 임하겠고, 전하는 메시지는 화평인데, 그 화평은 실재인 화평입니다. 어느 누구도 그를 방해하지 못합니다. 그의 오심도, 그의 가심도 방해하지 못합니다. 그는 자의로 오시고, 아버지의 보내심에 순종하심으로 오십니다. 그는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온 인류를 위해서 오십니다. 우리가 그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우리가 그의 사랑을 입었습니다. 그의 은혜를 입는 자마다 그의 통치를 받고, 그의 사랑을 입는 자마다 그의 나라의 백성이요, 자녀입니다. 눌린 자, 억울한 자, 힘없는 자를 구분하지 않고 구원하십니다. 우리가 그 안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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