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열의 시비(마태복음18:1-4)
사람들은 서열의식이 대단합니다. 이런 서열의식은 동물들에게도 있지만 사람들이 더 치열합니다. 이규태의 한국인의 의식구조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기차의 3등간 앞자리에 50대와 60대로 보이는 서로 모르는 두 노인이 앉았다. 이 노인들은 공손히 통성명을 했다. 통성명을 하다 보니 성이 같은 김씨였다. 본을 묻자 그 또한 같음을 알고 서로 놀라며 반가워하는 것이었다. 동성동본의 다음 차례는 항렬대비였다. 항렬을 대비해 보니 60대 노인은 50대 노인보다 두 항렬이나 낮은 손자벌이었다. 확인된 순간부터 이 노인들의 태도는 돌변하고 50대 노인은 말을 놓고, 60대 노인은 경어를 썼다. 젊은 사람이 늙은 사람에게 말을 놓고, 늙은 사람이 젊은 사람에게 경어를 쓰는 이 광경은 무척 이질적일지 모르나 한국인의 서열의식의 단적이고 보편적인 표현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한국사람은 서로 낯선 사람과 처음 만났을 때 그 둘 사이의 인간 설정을 서열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무한히 모색한다. 이를테면 옛 어른들이 반상(班常)을 따지고, 족보를 따지고, 항렬을 따지듯이 현대인은 학벌을 따지고 학년을 따지고, 직업이나 직책보다 직위를 따진다. 그리하여 그 사람과의 서열 차이를 확인해 놓고야 성이 풀린다.
왜 이런 서열의식을 가질까? 그것은 열등감 때문입니다. 많은 열등감속에서 우위를 찾지 않으면 자신이 살아남을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두 번이나 고난을 받고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듣고서도, 누가 우위를 차지할지를 노중에서 다투었습니다. 마가복음9:33을 보면 이들이 길에서 쟁론을 했다고 했습니다. 제자들은 서로 자기가 크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특히 베드로, 요한, 야고보는 더했을 것입니다.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불림을 받았던 세 제자들, 그보다 못하지만 나머지 제자들도 나름대로 자기들이 크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한 어린 아이를 앞에 세우고 이 어린아이와 같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낮추는 사람이 오히려 천국에서 큰 자라고 하셨습니다. 어린 아이가 천국인격의 전형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높아지려고 합니다. 이런 말씀을 들으면서도 목사를 비롯해서 웬만한 성도들마저 높아지려고 애를 씁니다. 자신이 없으면 총회가 잘못되어가는 것처럼 말하고, 자신의 아들이 교회를 담임하지 않으면 교회가 곧 망하는 것처럼 세습 운영하는 사람들이 무엇을 성도들에게 가르치겠는가? 서로 총회장을 하려고 감투싸움을 밥 먹듯 하는 사람들이 사회에 어떻게 이바지하겠는가? 내가 남보다 크다 하는 잘못된 의식을 가지고 있는 한 주님의 요구는 말씀을 통해서 꾸준히 전달되어야 할 것입니다. 성도들은 우열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냥 성도입니다. 계급을 매기고, 계급적으로 교회일은 할 수 없습니다. 천국은 교만한 사람이 가는 곳이 아니고 겸손한 사람이 가는 곳입니다. 교만한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고 겸손한 사람이 예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새벽강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나님의 관심 (0) | 2010.05.21 |
---|---|
실족케 하는 죄 (0) | 2010.05.20 |
성전세를 내시는 예수님 (0) | 2010.05.18 |
주님 왜 또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0) | 2010.05.17 |
실패한 이유 (0) | 2010.05.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