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종(마태복음12:14-21)
사람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그것을 위해서는 죽기 살기를 각오하고 덤벼듭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이 선점을 했다는 것입니다. 동물들로 말하면 자신의 영역입니다. 이 영역에 들어오면 절대로 가만두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세례요한과 예수님 때문에 입지가 위협을 받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고소할 틈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여간해서 그 틈을 찾지 못했습니다. 안식일논쟁에서 소득을 건지지 못한 그들은 직접 예수님을 살해할 음모를 찾기 위해 나갔습니다.
마가복음3:6-12을 보면 바리새인들이 헤롯당과 함께 연합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꼬 의논하니라” 헤롯당은 헤롯과 로마정부를 돕는 앞잡이들입니다. 우리나라로 말하면 매국노들입니다. 이들과 바리새인들은 철저하게 로마를 배척하던 사람들인데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서는 연합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에 전혀 신경을 쓰시지 않았습니다. 15절을 보면 저희 병을 모두 고치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병을 고침 받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고쳐주셨다는 말을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를 18절에서 21절까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이사야42장의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1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나의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신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공의를 베풀리라 2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로 거리에 들리게 아니하며 3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리로 공의를 베풀 것이며 4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공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
왜 이사야42장을 인용하셨습니까? 이사야42장은 여호와의 종에 관한 예언입니다. 여호와는 나를 종으로 불렀다고 했습니다. 종은 자신을 스스로 보기에는 무익하나(사49:4), 하나님 보시기에는 존귀한 자입니다(사49:5).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종으로 부르신 것은 이스라엘만 회복하고 구원시킬 뿐만 이니라 이방의 빛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땅 끝까지 이르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종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종처럼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했지만, 하나님이 여호와의 종을 인정하셨습니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미래에 이 사실을 알게 하십니다. 여호와의 종은 신실하십니다. 사람의 신분을 가리지 않습니다. 여호와의 종은 거룩하십니다. 그리하여 사단에게 잡혀 있는 자들을 구원하십니다. 그들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주십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정치계로 나갈 때에 마치 세상을 평정할 듯이 떠듭니다. 문화계나, 경제계 등에 나갈 때도 그렇습니다. 씨저나 알렉산더, 나폴레옹 등이 그랬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이름은 오늘날 술 이름으로 전락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들을 구원하러 오실 때 화려하게 오지 않았습니다. 마치 종처럼 조용하게 오셨습니다. 그러면서도 누구도 하지 못할 일을 하셨고,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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