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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명령/주님께 합당한자(마태복음10:34-39)

종교다원주의자들은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도록 전도하는 것은 신구약성경에 위배되는 것이며, 신앙은 역사적 경험적 열매로 사람에게 강요되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즉 불교를 믿으나 힌두교를 믿으나 어떤 것을 믿어도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말합니다. 종교다원주의자들은 많은 종류의 사람들과 그들이 믿는 신앙으로 그들은 우리와 함께 살아가기 때문에 기독교만 고집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종교에 근거하여 절대주의를 고집하는 것은 정치 이데올로기에 기초한 절대주의만큼 그 결과가 위험하다고 했습니다. 꼭 기독교만 고집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종교다원주의가 나온 이유는 W.C.C. 때문입니다.

원래 W.C.C.의 종교대화는 전도의 목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전 세계사람들이 모이다보니까 어렵게 사는 나라들과 전쟁이 많더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W.C.C.는 본연의 임무를 저버리고 인류의 평화와 복지라는 세속적 목적과 종교다원주의로 발전했습니다.

피터 버거는 피터 버거는 현대 사회는 종교도 시장경영의 원리를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종교 다원주의자 존 힉은 종교다원주의를 “첫째는 존재론적으로 많은 신들이 있다는 가설, 둘째는 한 종교만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반면 다른 종교는 잘못된 우상을 섬긴다는 가설, 셋째는 하나님은 한 신으로, 그가 만물을 창조하였고 만물의 주가 되는데 다른 모든 종교는 궁극적으로 이 한 하나님을 섬긴다는 가설이다. 힉은 이상의 세 가설 가운데 현대는 부득이 세 번째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주장하는 것은 이젠 모든 나라들이 평화와 번영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화평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복음이 들어가면 불화한다는 역설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인간의 영혼의 모든 충동들과 상반될 것이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분열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이때 제자들(성도들)은 어떤 액션을 취해야 하느냐는 말씀입니다. 육신적인 혈연관계라고 해서 하나님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거나, 자기 십자가가 있는데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결국 주님께 합당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복음은 가족의 힘을 뛰어넘고, 주님의 복음은 세상의 어떤 곳보다 우선한다는 것입니다. 소위 기독교 밖의 사람들이 무어라고 해도 하나님의 복음에 우선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제자들, 주님의 사람들은 세상의 어떤 이념도, 육신적인 평안함도, 육신의 안락함도 아닌 고난의 길을 걸어가야 함을 말합니다. 자신의 목숨이 누구에게 속해 있는가를 생각하며,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육신적인 목숨을 내놓고 주님과 함께 동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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