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게 보아라(마태복음6:22-23)
예수님은 눈을 몸의 등불이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눈이 성하면 온몸이 밝을 것이라 했습니다(22). 하지만 눈이 나쁘면 온몸이 어두울 것이라 했습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으로 인해서 많은 영향을 받는다 하셨습니다. “성하다”aJplou'"는 뜻은 “천진난만한”이라는 뜻입니다. 나쁘다는 ponhrov"로서 “나쁜 상태에 있는, 사악한”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병든 눈으로 볼 때는 소경인 상태입니다. 소경이 아닌 상태에서 나쁘다는 말은 일부로 좋은 것을 보지 않는 눈입니다.
구약성경에서 눈(@yI[')은 “눈, 샘물, 샘”이었습니다. 따라서 구약성경의 “아인”은 눈 그 자체 이상의 것을 암시하였습니다. 그래서 “아인”은 전체 보는 과정과 나아가 이해하고 순종하는 전체과정을 나타냈습니다(렘5:21). 눈은 지식, 성격, 태도, 성향, 견해, 열정 및 반응을 표현하는데 사용했습니다. 눈은 인간의 내적 생각의 좋은 지표라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에서 눈(ojfqalmov")은 구약의 “아인”을 번역하는 말로서 시력의 기관(눈)을 의미했고(눅6:20), 눈의 기능은 형상을 파악하는 것입니다(마6:22-23). 예수님의 말씀은 눈의 도덕적 언급과 더불어 눈이 건전할 수도 있고 건전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악하고 시기적인 눈이 있으며(마20:15, 막 7:22), 죄를 범하도록 유혹하는 눈이 있습니다(요일2:16, 벧후2:14). 눈은 범죄의 원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마5:29). 우리에게 있어서 눈은 감각적인 지각이 아니라, 영적인 지각이라는 것입니다. 항상 하나님께서는 마음의 눈에 빛을 주십니다.
눈에 대해서 예수님은 몸의 등불이라 하셨습니다(마6:22-23, 눅11:34). 자기의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빼고 형제의 눈 속에 티를 빼라고 했습니다(마7:3-5). 자신의 잘못을 먼저 회개하고 남을 정죄하라는 것입니다. 또한 범죄한 눈을 빼어 내버리고 했습니다(영적으로/마18:9).
눈을 밝히는 방법으로 기도하라 하셨습니다(왕하6:17, 시119:18, 엡1:8). 하나님의 말씀이 눈을 밝혀줍니다(시19:8). 여호와의 지혜로 눈이 밝을 것이라 하셨습니다(전2:14).
우리들은 빛을 받아서 어떤 물체들을 보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들에게 어떤 것을 시사해줍니다. 즉 어떤 빛을 받느냐에 따라서 보여지는 것이 달라집니다. 예로 붉은 빛을 받으면, 우리의 눈이 붉은 빛을 보게 되고, 푸른빛을 받으면 보아야 할 것이 푸르게 보여집니다. 따라서 우리의 눈이 제대로 보려면, 어떤 빛을 받느냐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성도이면서 세속적인 것만 본다면 신앙에 아무런 발전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들의 감정을 다스릴 수가 없어서 마음의 눈을 소홀히 한다면, 바른 성도가 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확실한 목표에 집중하려면 올바른 목표를 바라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들이 이 세상의 쾌락만 추구한다면, 기독교가 발전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눈을 제대로 떠서 한발자국, 한발자국 옮길 때마다 주의해야 합니다.
전북 완주군 구이면 원기리 695/예수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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